'제주 4.3 왜곡하는 색깔론자들, 그 입 다물라'
제주시, '4.3 공산폭동 현수막' 강제 철거
제주 민주당 의원들 "득세하려 도민 트라우마 건드리지 말라"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제주 4.3 제75주년 제주 도민들의 한숨이 더 커지고 있다. 제주 전역에는 '역사 왜곡' 현수막이 내걸렸다. 극우 단체는 4.3 추념식이 열리는 4.3 평화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며 집회 신고를 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태영호 의원이 제주 4.3이 북한 김일성의 사주에 의한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제주 4.3을 왜곡하는 이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극성이어서다. 제주 지역구 민주당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제주 주민들의 상처를 헤집지 말라고 경고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제주 4.3으로 인한 공식적인 희생자 수는 2020년 기준 1만 4532명이다. 2003년 발간된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인명피해를 2만 5000명에서 3만 명(당시 기준 제주 인구 10분의 1 이상)으로 추정한다.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2000년 1월 여야의원 공동 발의로 통과됐다. 법안에는 △진상조사보고서 발간과 교육자료 활용 △대통령의 사과 △제주4・3평화공원조성 △4・3희생자추념일 지정 △생계비 지원 △유해발굴-유적지 복원 등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을 규명하고 관련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등이 명시됐다.
제주 4.3 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라고 대통령이 공식 인정한 것은 2003년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003년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노 전 전통령은 그해 10월 국가원수 중 처음으로 유족들 앞에서 국가 폭력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3 위령제에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참석해 제주도민들에게 다시 공식 사과하고 참배했다. 이후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4·3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위한 대통령령 개정안이 공포돼 4.3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제주4.3 희생자들에 대한 보(배)상금 기준을 담고 있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다.
4·3희생자 추념식은 2014년 국가기념일(4월3일)로 지정 고시되며 그해 4월3일 제66주년부터 국가기념일 희생자 추념식으로 봉행됐다. 문 전 대통령은 현직 당시 2018년, 2020년, 2021년 세 차례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2022년 4.3 추념식에 제주 현장을 찾은 바 있다.
보수 정당의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추념식을 참석한 것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다만 올해는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의 불참 의사에 이어 여당 지도부 인사들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주호영 원내대표는 도당에 일정 조율 문제로 4.3 추념식 불참 의사를 밝혔다. 다만 김병민 최고위원과 이철규 사무총장,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한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현장 최고위를 제주에서 열고 4.3 추념식에 참석한다.
최근 제주 전역에서 이른바 '4.3 김일성 지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권 교체 이후 국가원수와 여당 지도부의 불참은 도민들에게 더욱 아쉬운 행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3.8 전당대회를 앞둔 2월 당시 "4.3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후 일부 극우·보수 단체들이 태 의원과 유사한 주장을 담은 내용의 현수막을 제작해 제주 전역에 내걸어 논란은 더 커졌다. 우리공화당과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자유논객연합 등은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제주 전역 길거리에 내걸어 도민들의 공분을 샀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이 현수막과 내용은 통상적인 정당활동이고 역사적 사안의 정치적 입장이라며 공직선거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길에 걸린 현수막이 4.3을 왜곡하는 내용일지라 해도 '정당 현수막'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제지할 수단도 없다. 이에 제주 지역구 야당 의원들은 '맞불 현수막'을 걸고 나섰다. 김한규 의원(제주시 을)은 보수 정당 현수막 위에 '4·3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입 다물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4.3은 북한의 공산폭동'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제지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거론하며 "'정당 현수막이라 철거 못 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을 듣고 바로 분노를 담은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송재호(제주시 갑) 의원은 현수막 논란 당시 4.3을 왜곡할 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까지 희생된 희생자와 부상자를 합치면 보통 8만 명의 양민이 학살됐다고 한다. '4.3 진상 보고서'에도 4.3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의 대량 학살 사건'이라고 표기돼 있다. 그렇게 4.3을 추념한 지가 이제 10년 차가 되는데, 현재 역사 왜곡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자체가 과거사 청산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중대범죄다"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사실 보수 정부 대통령은 4.3 추념식에 한 번도 온 적이 없고,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엔 왔지만 이번에는 안 온다고 하더라. 대통령이 일본과의 과거사만을 관심 가질 게 아니라 당장 있는 제주에 있는 아픈 역사도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통화에서 "'4.3 특별법'이 전부 개정돼 도민들의 보상 조치가 이뤄지고, (4.3으로 유죄를 받았던 도민들도) 직권 재심에 의한 무죄 판결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4.3의 정의롭고 완전한 해결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보수 정권이 탄생하며 거기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4.3을 앞두고 제주의 봄을 더 냉혹하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은 4.3 당일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 4.3 평화공원 진입로에서 '맞불 집회'를 하겠다고 집회 신고를 해 둔 상황이다. 이들이 신고한 인원은 20명으로, '서북청년단'이 새겨진 대형 깃발을 흔들며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북청년단'은 4.3 당시 양민 학살에 가담한 단체로 분류된다.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들고 일어났다.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제주대학교 총학생회 민주노총 제주본부 등 20개 단체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를 왜곡하고 4.3을 폄훼하는 극우단체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4.3평화공원 앞 집회를 신고한 극우세력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 대응할 것을 결의한다"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극우단체의 집회와 관련해 "(태 의원과 극우단체 등은) 4.3의 역사적 과정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4.3을 이용하고 있다. 태 의원도 최고위원 표를 끌어올리려고 제주의 아픈 상처를 악용한 것 아니겠나. (4.3의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제주 도민들이 가진 가장 큰 상처인 '4.3 트라우마'를 자꾸 다시 건드려 또다시 상처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위성곤(제주 서귀포시) 의원도 통화에서 "'서북청년단의 후예'라고 하는 사람들이 4.3 추모공원에서 집회를 하겠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도 납득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집시법상 합법이라 현실적으로 제지가 불가능하다"며 "(작년에는 이들이) 이러지 않았는데, 보수 정권이 들어서며 자신들이 득세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역사적 진실까지도 왜곡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SNS에 추천하며 "더 이상 이념이 상처를 헤집지 말기 바란다"고 제주 4.3을 둘러싼 논란을 직격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주 4.3을 앞두고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가슴 속에 오래오래 묻어두었다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주는 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4.3의 상실과 아픔을 깊이 공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책 추천과 함께 "더 이상 이념이 상처를 헤집지 말기를 바란다. 4.3의 완전한 치유와 안식을 빈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3일 오후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개인 자격으로 희생자들에게 참배를 할 계획이다.
논란이 된 현수막은 결국 시 차원에서 강제 철거 집행에 나서기로 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31일 '4.3 왜곡 논란' 현수막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제주시는 4·3 희생자 추념일 전까지 철거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는 법리 검토 결과 해당 현수막들이 '4·3특별법' 제13조(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됨)를 어겼다고 판단했다.
제주도민들의 4.3 트라우마 회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4·3희생자 유족 등과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해 '찾아가는 4・3트라우마 치유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주1회 시범운영했던 '찾아가는 4・3트라우마 치유사업'을 올해 4월부터 주 5회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제주도와 재단은 서귀포시 읍면동, 제주시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4·3 유족 등을 대상으로 음악・미술 등 집단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개별 심리상담도 한다. 또 지역별 보건소와 협업을 통해 신체 치유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제주도당 위원장인 위 의원은 4.3을 앞두고 제주에 '회복과 상생'의 기운이 전파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피해를 입은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역사적 사건을 폄훼하며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화합하고 하나 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기본적으로 인권도 배려하는 고민도 충분히 하는 사회였으면 한다"며 "극단의 정치, 분노와 분열의 정치로 그 세력을 유지하려 하면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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