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vs 방과후 vs 학원… 선택 아닌 ‘복불복’, 언제까지? [초등생활탐구]

김희원 2023. 4. 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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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의 희망 ‘돌봄교실’…정원 적어 탈락자 속출
방과후 수업도 ‘복불복’…일부 학교선 ‘구색 맞추기’ 운영
선택지 없어, 결국 학원 ‘뺑뺑이’…“아이에게 너무 미안해”

“초등학교 간다고? 좋은 시절 끝났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많이 키웠다. 축하한다”는 말 대신 “좋은 시절 다 갔다”는 걱정의 말을 듣고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이유. 바로 ‘돌봄’ 때문이다.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닐 때 아이들은 보통 4시쯤 집에 온다. 맞벌이 부부라면 6∼7시까지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우리 아이만 늦게까지 남는 경우엔 눈치가 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맘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의 존재는 얼마나 고마운가.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초등학생이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1,2학년은 보통 1시 전후 하교를 한다. 학교에서 봐주면 참 좋으련만, 안전한 학교 울타리 안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운 좋은’ 몇몇 뿐이다.

많은 맞벌이 부부 아이들은 하루에 학원을 몇 개씩 ‘뺑뺑이’ 돌아야 한다. 이는 부모와 아이의 선택인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봄 절실한 맞벌이…추첨 탈락에 ‘막막’

경기도 신도시에 거주하는 양모(37)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지난 1월 ‘돌봄교실’을 신청했다. 직장 어린이집에 다닐 땐 6시에 하원했지만,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4시 반까지만 이용하고 이후 학원을 하나 보낼 생각이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나이가 되기도 했고, 초등 돌봄 친구들은 대부분 4시쯤 하교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돌봄교실에 있다가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학원 한 곳에 다녀오면 양씨 부부의 퇴근시간과 얼추 맞을 것 같았다.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도 돌봄교실보다 학원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들어서 추첨에서 떨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씨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20명 정원인 돌봄교실 추첨에서 대기 2번을 받았다. 양씨는 학교에 전화했다. ‘대기 2번이면 언제쯤 확정 전화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지난해엔 대기 1번도 돌봄교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양씨는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정원을 몇 명만 더 늘려줄 수 없겠냐고 사정했다. 학교에선 형평성 문제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사설 돌봄이나 셔틀버스가 있는 학원을 이용하더라”고 안내했다.

학교의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양씨는 너무 화가났다. 그는 “초등학생이 됐다지만 여전히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인데, 하루 아침에 오후 1시부터 혼자 있어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할 수만 있다면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운이 좋아 계속 맘 편히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데, 운이 나쁜 사람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설 돌봄이나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면서 “이러니 둘째는 생각도 안 하는 것이다. 아이를 안 낳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토로했다.

◆방과후 학습도 ‘복불복’

우리 첫째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양육을 도와주시는 모친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아이가 되도록 늦게 귀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돌봄교실도 후보에 올렸지만 신청하지 않았다. ‘돌봄은 보육이랑 비슷해서 활동적인 아이는 답답해 한다더라’라는 육아 선배들 조언이 맘에 걸렸다.

대신 방과후 수업을 매일 듣기로 했다. 그러면 다양한 과목을 배우면서 학교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 입학 전 미리 지난해 방과후 공지를 살펴봤다. 재미나 보이는 수업이 많았다. “제과제빵이랑 요리 중에 뭐 할까? 축구할까 농구할까? 생명과학이랑 드론도 재미있겠지?” 아이와 함께 계획을 짜며 꿈에 부풀었다.

방과후 수업을 마치면 3시다. 유치원 때와 비교하면 시간이 많이 남아 학원을 붙이기로 했다. 학원 한 곳을 다녀오면 둘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과 비슷하다.

학원은 과목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픽업 가능하고 하원까지 책임져주는 곳, ‘차량 선생님이 아이들을 꼼꼼히 챙긴다’고 소문난 곳으로 골랐다. 그리하여 방과후+예체능학원 조합으로 아이의 일과 계획을 완성했고, 2월에 미리 학원 등록을 마쳤다.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입학 무렵 초등 3학년 아들을 둔 지인 물음에 머리가 얼어붙었다. “방과후 수업 추첨이야, 아니면 선착순이야?”

아차, 방과후 수업도 원하면 다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알아보니 대부분 방과후 수업 신청자가 정원을 넘기고, 인기 과목은 돌봄 교실보다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꼭 되어야하는데….’ 며칠 밤 설치며 불안에 떨었다. 우리는 선착순 신청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모두 정원 안에 들었다. 주 5일 방과후 신청에 성공했다고 말하자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이 “신의 손”이라며 부러워 했다. 역시 방과후 수업 신청에 실패한 아이가 많은 것 같았다.

새삼 뿌듯하면서도 ‘2학기 때 한 두 과목이라도 못 듣게 되면 어쩌나’ 벌써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이통학차량. 연합뉴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학원 뺑뺑이

입학 전후 초등 신입생 엄마들은 안부 인사처럼 서로 ‘방과후 스케쥴 확정했냐’고 묻는다.

김모(39) 언니와도 이런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우리 아이는 주 5일 학교 방과후 수업을 듣는다고 말하자 언니는 “너무 부럽다”를 연발했다.

김 언니 아이네 학교는 방과후 수업 과목이 하루 1개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대한 학교에 오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신청하려고 했지만 정원도 너무 적었다. 방과후 수업 안내문을 보니 ‘구색 맞추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김 언니는 방과후 수업 신청을 포기하고 3월 초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봤다. 그는 “이미 늦었더라. 괜찮은 영어학원에 연락했더니 대기가 80번까지 있다고 해서 일단은 자리가 있는 소규모 학원을 등록했다”면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셔틀을 타거나, 시간이 뜨는 날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학원 차를 타도록 시간표를 짰다”고 말했다.

학원이 밀집한 상가에서는 아이들이 이동하지 않고 여러 학원을 다닐 수 있다. 김 언니의 아이는 일주일에 이틀은 학원 3개를 연달아 간다. 그는 “아이가 혼자 일찍 집에 오면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한 측면이 있지만, 엄마가 집에 없어 저녁까지 밖에서 돌아야하는 아이만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뉴스1
아이들의 방과후 일정 선택은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초등 어린이 인구가 많은 경기도 신도시에서는 돌봄교실과 방과후 수업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반면 서울 강남 초등학교나 사립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학교 방과후 수업보다 학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경쟁이 낮다. 다만 이 때문에 방과후 수업이 줄어 선택지가 적은 경우가 있고, 수요가 적어 돌봄교실 운영을 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들은 돌봄이든 학교 방과후 수업이든 학원이든 선택을 해야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공하는 돌봄이나 방과후 수업 공급이 적어 많은 맞벌이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은 월 최소 수십만원에서 100만원가량의 비용을 들이고, 그러면서도 아이가 걱정돼 불안해 하고, 미안해 한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늘봄학교’를 올해부터 시범 시행하면서 점차 늘려가기로 했다.

늘봄학교는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 수요를 모두 수용해 전일제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계획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한 터라 교육계에서는 벌써부터 잡음이 나온다. 하지만 ‘원하는 학생은 모두 수용한다’는 취지 만큼은 모든 부모들이 공감하며 지지하지 않을까.

걱정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적어도 부모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돌봄 걱정이 사라지면 마음의 여유는 물론 경제적 여유도 생긴다. 혹시 알까. 그렇게 되면 그중 일부는 아이를 더 낳고 싶을지. 행복해 보이는 부모들을 보면서 ‘딩크족’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게 될 지.

여성들이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돌봄’”이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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