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맞은 '100분토론', 정준희가 말하는 '그래도 토론해야 하는 이유'

정철운 기자 2023. 3. 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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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100분토론' 진행자 정준희 "토론을 거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MBC

'토론의 시작과 끝'. 1999년 10월 시작한 MBC <100분토론>이 1000회를 맞았다. 제작진은 특집 3부작을 준비했다. 4월9일 밤 9시10분에는 '인기 논객' 홍준표유시민이 출연하는 <토론하면 좋은 친구>를 방송한다. 4월11일 밤 9시에는 다큐멘터리 <그래도, 토론>을 편성했다. 1000회 동안 나왔던 논객들을 만나고 여전히 <100분토론>의 상징적 존재인 언론인 손석희와의 인터뷰를 담았다. 4월18일 밤 11시30분에는 이탄희천하람이 출연하는 <토론의 미래>를 예고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익숙하지만 때로는 낯선 '토론'을 고민해볼 좋은 시간이다.

오늘날 '토론의 시작과 끝'에 언론학자 정준희가 있다. 그는 2년 7개월째 <100분토론> 진행자를 맡고 있으며, 이는 역대 진행자 중 손석희(7년10개월)를 제외하고 가장 긴 시간이다. 그는 2019년 4월부터 4년째 KBS 1라디오 <열린토론> 진행자도 맡고 있는데, 시사평론가 정관용(5년4개월)을 제외하면 가장 긴 시간이다. 20년 역사의 양대 공영방송 대표 토론 프로그램을 동시 진행 중인 사례는 정준희가 최초다. 29일 여의도에서 정준희를 만나 '1000회'를 핑계로 토론에 대한 그의 생각과 고민을 묻고 들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100분 토론> 진행자이자 동시에 언론학자다. 학자로서 1000회를 평가한다면.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MBC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적 토론을 위해 (편성) 공간을 할애해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 어떤 담론과 어떤 인물들이 우리 사회에서 토론이라는 장을 만들어왔는가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토론은 그 사회를 투영한다고 한다. <100분토론>도 마찬가지였나.
“최고 권력자가 토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100분토론>에 많이 반영됐다. 논객이 등장하며 토론이 부흥했던 때는 노무현 대통령 시기였다. 집권자가 토론을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한 걸로 생각했다. 스스로도 토론에 출연하고자 했다. 그 뒤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거치며 토론이 사그라들었다. 토론을 회피하는 일이 많아지고 토론을 통해 설명하려는 적극적 태도가 사라졌다. 불편한 진행자를 내쫓는 것과 별개로, 토론 자체가 무력화되는 기간을 겪기도 했다.”

▲MBC '100분토론' 1000회 특집 예고편 갈무리. 과거 '100분토론'에서 손석희 진행자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MBC

-요즘 시사 토론은 줄거나 인기가 없는 것 같다.
“불가피한 면도 있고, 안타까운 면도 있다. 시사 정치를 주된 재료로 삼는 채널이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편을 나눠 양쪽의 이야기를 듣는 포맷이 상당히 일반화되었다. 토론은 아니지만 토론을 대체하는 느낌을 준다. 사실 서로 다른 견해가 어떻게 갈려 나가는가를 제대로 대비시켜 주는 밀도 높은 토론이 필요한데 <100분토론> 시청자들은 이미 들은 이야기를 재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출연자 역시 여기저기서 단련된 레토릭을 가져와 풀어놓는 형식으로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100분토론>에 남아있는 차별성은 여전한 무게감이다.”

-토론을 진행하며 갖게 된 고민이 있다면.
“토론 자리에 앉힐 수 없는, 힘을 가지지 못한 매체 환경의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안 나오면 피하는 건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지금 그런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 나와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사정하고 판을 만들어주는 기술적 장치가 필요할 만큼 매체의 협상력이 떨어져 있다. 여기에 나와 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신 다른 곳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종편에서 토론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녹화해서, 예쁘게 포장해 슬쩍 대립하는 듯하나 각자의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는 공간이 늘어났고,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공간을) 편하게 생각한다.”

▲MBC '100분토론' 1000회 특집 예고편 갈무리. 정준희 진행자와 손석희 전 진행자. ⓒMBC

-지난주 일본에서 손석희와 토론을 주제로 인터뷰했다고 들었다. 어떤 고민을 나누었나.
“큰 (고민의) 줄기는, 토론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그래도 토론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였다. 손 사장은 사실은 예전에도 토론이 그렇게 성과적이진 않았다고 했다. 대게는 피로감을 주고 회피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비단 요즘만의 현상은 아니다, 토론의 숙명이다-라고 했다. 또, 세상은 쪼개진 진영의 어느 한쪽만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아직은 입장을 정하지 않은 다수가 존재하고 다수들이 토론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게 결국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지 않겠느냐-라며 합리적 시민사회를 믿는다고 하셨다.”

-과거 손석희가 “토론 진행은 '당신은 틀렸다'고 외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의 연속이다. 그래서 때로 '중립을 잘 지켰다'는 말은 '중립임을 잘 가장했다'는 말과 통하는 게 아닐까”라고 밝혔는데, 진행자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진영토론으로 일반화되어있는 형식을 바꾸자고 했다. 전문이슈도 다루고 팩트체크나 프레임 토론 등을 시도해봤는데 사람들은 기존 형식이 지겹다고 하지만 그걸 벗어나면 낯설어 한다는 걸 느꼈다. 나는 (토론 중) 명확하게 잘못된 부분들을 밝히고 제자리로 돌려놓는 적극적 역할의 진행자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행자가 잘못을 지적하면, (토론자는) 자기가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해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이 된다. (토론 과정에선)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내가 아무리 명확한 논리적 선과 근거에 대한 신념이 있어도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며 지속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진행자가 누구에게 유독 불리한 방식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토론의 가치가 떨어진다. 적어도 진행자의 선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올바른 일은 아니다. 진행자가 이미 어떤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게 발화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닌 척하는 건 안 된다. 나는 학자로 출발했고, 내가 발언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중 캐릭터를 갖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 내가 쓰는 방법은 내 입장이 있더라도, 적어도 사회자로 들어가는 순간은 일단 들어보자, 그리고 그 얘기가 충분히 설득력 있는지 귀를 기울이자, 내용에 몰입하면 형식이 무너지는데, 나는 내용에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최대한 설득력 있는 요소를 찾아내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나름대로 부딪힐 수 있도록 만들어본다.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처음 듣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건 가장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태도 같다.”

▲MBC '100분토론' 1000회 특집 예고편 갈무리. 정준희 진행자. ⓒMBC

-<열린토론>에 <100분토론>까지 토론에 진심인 것 같다. 왜 토론에 주목하나.
“영국 유학 시절 유럽의 토론을 지켜보니 토론이 그 사회의 정치적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구나, 특히 공영방송 토론은 그 사회의 정치적 수준을 굉장히 선명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정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좋은 토론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일조해보자는 생각을 해왔다. 토론 프로그램이야말로 공영방송의 의미와 정치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토론 진행) 제안이 왔을 때 그렇게 주저하지 않았다.”

-<100분토론>에서 의미 있었던 순간을 꼽자면.
“하나는 1000회 특집 하면서다.(웃음) 마침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의미가 컸다. 토론 중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기본소득 문제를 가지고 진행했던 특별토론이 떠오른다. 두 지자체장이 자기가 맡은 작은 정부안에서 진보적 대안과 보수적 대안으로 나름의 고민을 했다. 의사결정자가 내놓은 서로 다른 대안의 장단점을 비교해볼 수 있는 모범적 토론이었다. 이런 방식의 토론이 잘 되면 제일 좋겠구나 싶어 홍준표 대구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나오는 식의 토론을 기획하기도 했다.”

-<100분토론>에서 다루고 싶은 토론이 있다면.
“하루하루의 정치 이슈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정부나 입법부에서 중요한 나름의 이슈를 놓고 이때까지는 여기에 대해 결정하자, 이런 일정표가 없다 보니 툭툭 터지는 이슈에 달라붙게 된다. 국회 상임위 논의구조나 지자체 논의구조에서 정책적 의사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 시기를 보며 전문적 이야기를 충실히 할 수 있는 토론을 하고 싶다. 어제 <열린토론>에서 물 부족으로 토론했는데 단지 가뭄이 아니라 수자원 관리라는 이해관계의 문제가 있었다. 지역적 이해관계도 있고 농업과 공업 간 이해관계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잊힌 문제다. 토론이 이런 이슈에서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다.”

▲MBC '100분토론' 1000회 특집 예고편 갈무리. '100분토론'에 출연했던 유시민 전 장관의 모습. ⓒMBC

-'해장국 저널리즘',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이란 개념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에서 토론이 가능할까. 토론이 무의미한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진영화는 원인보다 증상에 가깝다. 민주주의 정치는 말의 힘으로 담론과 담론이 부딪히고 그 결과 투표 등으로 결론이 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불투명해 토론의 효능감이 안 느껴진다. 토론에서 누군가의 말이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켰는데 결론은 일치하지 않게끔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토론이 말 그대로 절차적 행위가 되거나 그 절차조차 필요 없는 상태로 가다 보니, 결국 권력자가 결론 내린다-이런 식의 경험을 누적하다 보면 토론의 효용성에 대해 기대하지 않게 된다. 토론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토론을 거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토론의 결과가 여론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결론으로 연결된다면 토론은 다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열린 토'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있을까.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 담화 상황이 있다. 권력이 작동해 발언의 기회나 내용을 억압하면 안 되고, 발화자는 윤리적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일단 들어보자', '내가 입장이 있더라도 내 입장을 일단 유보하자',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움직임이 생기면 그 움직임에 주목하자'다. 많은 사람이 (마음의 움직임을) 두려워한다. 내가 붕괴되는 것 같고, 그래서 (상대를) 박살 내 줄 근거를 요구하는데 이건 열린 토론의 성격에 맞지 않다. 토론을 지켜볼 때마다 느끼는데 (여기는) 검투사들의 전장이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누군가를 등에 업고 싸우고 피를 흘리는 대리전이다. 그런데 (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건, 쟤가 죽는다고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1000회 특집에선 <100분토론> 논객들이 과거 토론을 회상하며 예전에 던졌던 주제가 해결됐는지 이야기하고 지금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토론한다고 들었다. 돌아보면 2002년 1월18일 손석희의 〈100분토론〉 첫 주제가 언론사의 특정 후보 지지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이 안 나오는 주제인데, 언론학자시니 여쭤본다.
“독재 권력이 정치적 색깔을 죽이는 방식으로 언론을 순치했고, 민주화 이후 현재는 그 규제가 남아있는데 욕구는 올라오는 이중구조 상태다. 원칙적으로 언론사의 특정 후보 지지를 규제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런데 수많은 논의와 이러저러한 고민을 거쳐 누구를 지지한다, 이게 빠져 있는 채 우리는 언론사니까 지지할 수 있다고 할 문제도 아니다.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언론사가 특정 후보 지지를 밝히려면) 지지 이유를 오랜 기간에 거쳐 설득력 있게 밝혀야 한다. 언론인들의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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