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곳 없는 지역화폐 무용지물”…사용처 제한에 주민 ‘분통’

황송민 2023. 3.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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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30억 넘는 사업장 못써
상권 부족한 농촌에선 불편 커
지역경제 ‘찬물’ … 지자체 반발
“문턱을 높이는 정책 이해 안돼”
행안부 지침 반대 서명 운동도
충북 옥천 로컬푸드직매장에서 고객이 연매출 30억원 이하 사업장으로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을 제한하는 행정안전부 지침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연매출 30억원을 초과한 사업장에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사용을 제한하는 지침을 내놓으면서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지역주민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역 농·축협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없게 된 곳이 많아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농촌에선 주민 불편도 커질 우려가 나온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당분간 행정안전부 개정안을 따르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지역화폐 순환에 문제가 생겨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쓸 곳 없는 지역화폐, 무용지물 될 수 있어= “여기도 못 쓴다, 저기도 못 쓴다, 차 떼고 포 떼면 누가 불편한 지역화폐 쓰려고 하겠어요? 이럴 바엔 쇼핑하기 좋은 대전 가서 돈 쓰는 게 낫다고 다들 아우성이에요.”

충북 옥천에 있는 한 로컬푸드직매장에 장을 보러 온 연금자씨(60)는 최근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협 하나로마트나 로컬푸드직매장 말고는 마땅히 장 볼 곳이 없는 농촌에서 지역화폐 사용에 제약을 두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연매출 30억원을 넘는 사업장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농촌을 중심으로 주민의 반발이 거세다. 행안부는 최근 업체 연매출액을 기준으로 지역화폐 사용을 제한하는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지침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전국 시·군·구에 통보했다.

강원 춘천에서 로컬푸드직매장에 얼갈이배추·열무 등을 출하하는 이봉근씨(69)는 “농민수당도 지역화폐로 주는데 사용 문턱을 높이는 정부 정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농민수당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곡성에 사는 조용래씨(73·석곡면)는 “교통편도 별로 없어서 읍내 나가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인근에 하나로마트가 있어 우유도 사고 반찬도 산다”면서 “앞으로 하나로마트에서 지역화폐를 못 쓰면 나 같은 노인들은 상품권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전남권 농촌지역에서는 농·축협 사업장의 지역화폐 사용 비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에서 조사한 결과 전체 지역화폐 발행액 가운데 로컬푸드직매장·농협자재센터 등 지역 농·축협에서 사용하는 비율이 함평 54.3%, 신안 51.8%, 영암 46.5%로 도시권인 순천(15.2%)·여수(8.6%)와 견줘 월등히 높았다.

전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생활 시설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농협 사업장 말고는 딱히 지역화폐를 쓸 만한 곳이 없다”면서 “사용처에 제약이 생기면 유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화폐로서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전남 강진군이 제작해 배포한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 제한을 알리는 포스터.

지자체 반발…행안부 지침 따르지 않겠다는 곳도= 행안부가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지방의회와 지자체 반발도 거세다. 충북에서 지역화폐가 활발하게 쓰이는 옥천군의 의회에서는 ‘지역화폐 가맹점 제한 철회’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행안부에 제출했다. 여기에다 지역화폐 가맹점 곳곳에 건의문 내용을 담은 안내장을 붙이고 ‘행안부 지침 반대 서명운동’에 나섰다. 4년째 군내 로컬푸드직매장에 동물복지 유정란을 출하하는 조도순(61)씨도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조만간 직매장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곳 매장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고객이 줄면 그 피해는 농민에게 그대로 전가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행안부가 강제로 개정안을 밀어붙여서는 안되고 지자체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는다. 나광국 전남도의원은 “이번 개정안으로 지역 농민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지역 주민 편익이 감소하는 효과가 날 것”이라며 “무 자르듯 연매출 30억원 기준을 적용할 게 아니라 지자체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자유롭게 결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정책 일관성과 이용자 편의 보장을 이유로 당분간 행안부 개정안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도 경제활력국 관계자는 “현재 지역화폐 ‘탐나는전’을 연매출 10억 이하 가맹점에서 쓸 때 최대 10%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미 소상공인에게 지역화폐가 돌아가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면서 “지난해 6월 모든 농협 하나로마트를 가맹점으로 허용한 만큼 현장에서 혼선이 없도록 가맹점 관리 방식을 지금과 같이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라 지역화폐 가맹점에서 제외되는 업체의 경제적 손실도 문제로 떠오른다. 강원 동춘천농협 학곡지점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양명진 차장은 “주유소에서 결제할 때 지역화폐를 쓰는 농민이 상당수”라면서 “행안부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유소 매출이 급감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전했다.

전남 순천시와 시민이 각각 50%씩 출자해 만든 순천로컬푸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직매장 3곳 모두 매출 30억원이 넘어서 가맹점에서 제외될 위기에 놓여서다. 순천로컬푸드 담당자는 “지역화폐가 차지하는 매출액이 30%가 넘는데 행안부 개정안을 적용받으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시와 시민이 운영하는 우리 같은 회사는 예외를 둬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박찬혁 행안부 지역금융지원과 사무관은 “사업자등록증을 토대로 한 매출액 30억원 기준이 타당한지, 시민 출자기관이나 협동조합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면서 “현재 의견 수렴 과정에 있지만 가능하면 개정안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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