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 원 유지 vs 1억 원 상향" 예금자보호한도 놓고 '갑론을박'
SVB 파산으로 국내 예금자보호한도 주목
여야, 1억 원 이상 상향 조정 한 목소리
금융권 일각 의견 엇갈려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로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예금자보호액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 안팎으로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과 저축은행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뱅크런을 사전에 차단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SVB 파산 충격으로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되자 여야를 중심으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예금자보호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으로, 대부분의 금융사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앞서 파산한 SVB의 경우 유동성 위기가 알려지자 하루 만에 55조 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특히 SVB의 초고속 파산 원인으로 '디지털 뱅크런'이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는 지난 2001년 1인당 GDP를 고려해 5000만 원으로 오른 이후 제자리다.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 1만5736달러에서 지난해 3만5003달러로 과거보다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예금자보호한도는 22년째 동결돼 있으며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25만 달러(약 3억2700만 원), 영국 8만5000파운드(약 1억3500만 원), 일본 1000만엔(약 1억 원) 등이다.
또 예금자보호한도를 넘어서는 은행과 저축은행 예금 비율이 상승하면서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금보험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 예금의 비율은 2017년 61.8%(724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65.7%(1152조7000억 원)로 상승했다.
실제 금융당국도 '예금자보호한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4일 신한은행에서 열린 '상생금융 간담회'에서 "예금자보호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시 '부작용 vs 저축은행 인식 개선' 등 주장 엇갈려
우선 금융권 안팎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될 경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권익증진이라는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면서 "예금자보호한도가 늘어나면 과도한 예금금리 경쟁으로 높은 금리로 한꺼번에 자금이 이동하는 뱅크런의 새로운 형태가 발생하는 등의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적은 비중의 고액 예치자를 위해 인상된 예금보호료를 전체 소비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을 소비 이익 증진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1997년 11월부터 2000년 말까지 은행 등의 모든 예금에 대해 원금과 이자 전액 지급을 보장하기로 했으나, 도덕적 해이 문제 등이 불거지며 해당 대책은 1998년 7월 조기 종료됐다.
미국에서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현지 시각) 미국은행연합회(ABA) 콘퍼런스를 통해 "소규모 은행에서 위험이 확산되면 예금을 보호해 주겠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은행이 망해도 예금을 전액 보장할 경우 은행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늘리고, 예금자들도 위험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높은 수익을 주는 은행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들은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낮으며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 개선, 한도 상향에 따른 수신고 확대 등을 위해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정상화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아직 고객 중에 '저축은행에 돈 맏겨도 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 있다"며 "만약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된다면 대중들이 인식하는 저축은행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것이고 충성 고객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도 "최근에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5000만 원에 맞춰 예금을 넣어 놓는다"며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면 수신고 확대 등 긍정적인 요인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여야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뱅크런을 사전에 차단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예금자 보호 한도의 최소 금액을 1억 원으로 상향하고 예금보험공사가 매년 금융업종별로 한도를 결정하도록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24일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SVB 파산 사태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민주당은 현재 5000만 원인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역시 지난 21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2001년 기존 2000만 원 한도에서 상향된 이후로 20년 넘게 그대로 묶여있는 것으로 시대에 맞게 예금보호 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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