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색색이 조화 이루니…‘아네모네’ 피었네

박준하 2023. 3.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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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하 기자의 하루만에 고수되기](18) 보태니컬 아트
식물 특징 세밀하게 묘사하는 미술 뜻해
연필·색연필·펜·수채화물감 이용해 그려
먹지 대고 도안 따라 그리면 밑그림 완성
직접 색 혼합·농도 조절해 칠하는게 좋아
수술처럼 세밀한 부분은 붓끝을 세워 그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이다. 어릴 적 길가에 핀 이름도 모르는 꽃과 풀을 보고 자랐다. 집에 한권쯤 꽂혀 있던 식물도감을 펼쳐놓고 오늘 본 꽃·나무가 무엇인지 찾는 재미에 밤새는 날도 있었다. 지금은 농촌 아니면 일부러 나가야 들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국이 도시화됐지만 식물도감이 주던 낭만은 여전히 가슴속에 있다. ‘보태니컬 아트(식물그림 그리기)’는 식물도감에서 유래한 미술이다. 요즘같이 따뜻한 봄날 이만한 취미가 어디 있을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화실 ‘봄날에스케치’에서 보태니컬 아트를 배워봤다.

화실은 따뜻한 장소다. 아름다운 꽃그림 아래에서 송신화 원장(오른쪽)이 기자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봄날에스케치 화실은 이름처럼 따스한 장소다. 군데군데 수채화·유화로 된 꽃 그림이 놓여 있고, 테이블에도 봄꽃이 핀 화병을 가져다뒀다. 회화를 전공한 송신화 원장은 이곳에서 수강생들을 맞이한다. 수강생들은 수채화·오일파스텔·아크릴화·유화 등 다양한 재료로 작품에 도전할 수 있다.

“붓 한번 잡아보지 않은 분도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쉽게 알려주고 원하는 재료도 모두 갖추고 있어 화실에 몸만 오면 되거든요.”

보태니컬 아트란 ‘식물’을 뜻하는 보태니컬(Botanical)과 미술·예술을 뜻하는 아트(Art)가 결합한 말로 식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게 특징이다. 도구에 제한은 없으나 주로 자세한 묘사가 가능한 연필·색연필·펜이나 수채화물감을 이용해서 그린다.

식물을 유심히 관찰하면 많은 색으로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자가 꽃도안을 두고 색을 살펴보며 따라서 칠하고 있다.

그릴 그림은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3∼5월 꽃이 피는 대표적인 봄꽃으로 흰색·분홍색·보라색 등 색상이 다양하다. 또 꽃잎이 크고 구분이 분명해 초보자가 그리기 쉽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그림으로 시작하면 미술에 흥미를 잃기 쉬워요. 그리기 수월한 꽃이 있죠. 개나리나 데이지·아네모네는 색 변화가 크지 않고 꽃잎 경계가 분명해서 그리기 편해요. 반대로 장미나 벚꽃은 상대적으로 그리기 까다롭죠. 장미는 꽃잎이 겹쳐 있고 벚꽃은 색을 표현하는 게 어렵거든요.”

도안은 송 원장이 준비해준다. 준비한 그림 아래 먹지와 빈 종이를 순서대로 놓고 연필로 도안을 따라 그리면 빈 종이에 도안이 그대로 옮겨진다.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복사하는 원리와 같다. 집에 먹지가 없다면 얇은 종이를 연필로 까맣게 칠해 먹지 대신 써도 좋다. 보고 그렸으면 어려웠을 작업이 먹지를 대고 그리니 금세 완성됐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다음은 채색이다. 수채화는 물감에 물을 조합해 그리는 그림이다. 유화는 물감에 기름 성분이 들어가 물 없이 그때그때 짜서 그림을 그린다. 수채화로 채색하려면 물감·붓·물·팔레트·휴지가 필요하다. 팔레트는 수채화나 유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도구다. 도자기·나무 등으로 만들고 물감을 조합할 때 쓴다.

밑그림을 잘 그려놓고 칠하려니 겁이 난다. 미술 시간에 수채화를 그리다가 너무 물을 많이 묻혀 망친 기억이 있어서다. 송 원장은 수채화를 그릴 때는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 칠하라고 조언했다. 물 양을 조절해 그러데이션(번지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 또 꽃잎을 A·B·C·D 순서로 둔다면 A 꽃잎을 칠한 다음에 C 꽃잎을 칠하는 게 좋다. 바로 이어진 B 꽃잎을 칠하면 물이 덜 말라 경계가 사라질 수도 있다. 먼저 칠한 꽃잎이 충분히 마르도록 기다리는 셈이다.

“붓끝을 세워 경계선 부분을 잘 그리는 것이 좋아요. 그림을 그릴 땐 확실하게 표현하세요. 물감 쓰는 것을 두려워 마세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농도 조절법을 알 수 있거든요.”

붓은 1호와 2호를 사용한다. 붓끝은 줄기나 꽃잎 끝을, 붓 몸통은 꽃잎을 칠할 때 쓴다. 팔레트에 펼쳐진 갖가지 색을 보니 눈 둘 데가 없다.

완성된 아네모네 그림. 봄맞이 인테리어로 제격이다.

이런 다양한 색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더구나 색에서 농산물 이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보라색도 검은색과 가까운 보라색은 오디색, 이보다 밝은 건 가지색, 좀더 밝으면 포도색이라고 한다. 꽃 색깔을 붙이기도 한다. 진한 보랏빛이 도드라지면 제비꽃색, 자줏빛에 가까운 보라색은 붓꽃색, 청색이 감도는 연한 보라색은 도라지꽃색이다.

수채화에선 오디색 한가지만 가지고도 물을 섞어 가지색·포도색·제비꽃색을 만들 수 있다. 이보다 과감한 시도도 괜찮다. 자연물이 어디 한가지 색만으로 이뤄진 게 있던가. 아네모네 잎은 보랏빛뿐만 아니라 분홍빛이 감돌기도 한다. 붉은빛도 보인다. 줄기를 칠할 땐 선명한 연두색만 칠하지 말고 여린 녹색인 어린잎색, 짙은 녹색인 아욱색, 이보다 푸른 녹색인 파색을 칠해보자. 줄기에 초록색만 있는 건 아니다. 붉은색이나 갈색을 살짝 칠하면 훨씬 그림이 자연스럽다.

“흔히 수채화에선 색 조합법이 가장 어렵다고 하죠. 외우듯 공부하기보단 직접 색을 섞어가며 공부하는 게 좋아요. 또 식물을 유심히 보면 정말 많은 색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서툰 붓질을 몇시간 한 끝에 빈 종이에 어느덧 아네모네가 피어났다. 수채화 색칠이 아쉽다면 색연필로 살짝 마무리 작업을 해도 좋다. 꼬박 2시간 반을 넘긴 작업이다. 신사임당이 꽃 그림을 그리니 그림이 생생해 나비가 앉았다던데, 볕 좋은 날 소풍 가서 꽃 그림 펼쳐놓고 나비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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