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보다 적립금 많은 서울국제학교…감시망 허점 틈타 위험자산 투자

이학준 기자 2023. 3. 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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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 1740억원 쌓은 서울국제학교, 적립금 사용 규정에서는 제외
”외국인학교 예외 규정 많아 애매…감사·조사 없으면 적발 못해”
경기 성남 수정구 소재 서울국제학교(SIS) 캠퍼스./서울국제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국제학교가 교비를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132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성남교육지원청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외국인학교 교비·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할 추가적인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학교가 투자한 것은 채권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으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어 개인이 투자하기에도 상당히 위험도가 높은 상품이다. 정부 관리감독을 받는 일반 학교라면 이런 펀드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국제학교는 2021년 기준 적립금이 1740억원에 달해 웬만한 사립대학교보다 많은데, 외국인학교라는 이유로 이를 사용할 경우 관할청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적용받지 않고 있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성남교육지원청은 지난달 서울국제학교 재무회계실장 이모씨를 업무상 횡령·배임과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7조 위반 등 혐의로 성남수정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씨는 2019년 4월과 같은해 11월 두 차례에 걸쳐 교비 220억원을 홍콩계 사모펀드 ‘젠투(Gen2)’에 투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국제학교는 펀드 환매 중단으로 현재까지 투자금 220억원 중 60%인 132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성남교육지원청은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해 손실이 발생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교비를 사모펀드에 투자한 행위 자체가 문제라고 보고 수사를 의뢰했다.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따르면 학교에 속하는 세출예산은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 외국인 개인이 설립한 국제학교, 적립금 보고 의무 적용 안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는 2019년 당시 서울국제학교 행정총괄처장 결재를 받아 교비 220억원을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6억원의 신탁이익을 보기 위해 고위험으로 분류되는 사모펀드 투자를 결정하는데, 학교 내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학칙상 등록금 등으로 조성된 교비와 관련한 수입·지출 사항은 이사회 심의·의결 대상이다. 그러나 학교는 사모펀드 투자는 교비 지출이 아니라, 보관·관리행위에 해당해 심의·의결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언제든지 손실을 볼 수 있는 사모펀드 투자 행위가 단순히 교비를 은행에 예치하는 보관·관리행위라는 것이다.

이씨가 사모펀드 투자 사실을 관할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조항에 따르면 학교법인은 조성한 적립금을 사용할 때 관할청에 보고를 하도록 돼 있는데 당사자가 법인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서울국제학교처럼 설립자가 법인이 아닌 외국인 개인일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외국인학교에 적용할 규정은 ‘학교에 속하는 회계의 세출예산은 목적 외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뿐이어서 교육청이 감사·조사에 나서지 않는 한 사모펀드 투자 등 교비 유용 행위를 적발해내지 못하는 구조가 된다.

애초 대학교육기관이 아닌 서울국제학교 등 외국인학교가 적립금을 조성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없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적립금을 조성할 수 있는 주체는 대학교육기관장과 대학교육기관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 이사장이다. 교육계에서는 외국인학교도 적립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성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향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관할청이 일종의 모니터링을 해서 문제를 찾아낸다기보단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돼 조사를 해봐야 관련 내용을 알 수 있다”며 “조사를 진행해도 명확한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지적해야 하는데, 굉장히 애매한 규정이 많다. 관련 입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중등교육법상 관할청이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예외규정이 많고 외국인학교 자체가 (법률상) 애매한 위치에 있어 감사에 따른 판단을 할 때도 애매한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 소수 교직원이 교비 사용 권한 독점하는 구조

학교 안팎에서는 외국인학교에 대한 감시망이 느슨한 탓에 소수 교직원들이 교비 사용 권한을 전횡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학교 관계자는 “서울국제학교가 돈이 부족한 학교가 아닌데, 무리하게 220억원을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성남교육지원청 조사 결과, 행정총괄처장인 지씨는 중도정산퇴직금 명목으로 5억6463만원을 추가로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은 1일 평균임금을 산출한 뒤 학교 규칙에 따라 3배 요율을 적용해 산정해야 하는데, 4배로 적용해 더 많은 돈을 받아낸 것이다. 또 자신의 소득세 1억1192만원도 교비로 대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은 지씨가 챙긴 금액을 학교 교비로 환원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상태다.

학교 수입·지출 등을 담당한 회계직원은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손해를 끼쳤을 때 정도에 따라 각각 변상의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지만, 학교는 교비를 사모펀드에 투자한 이씨와 지씨 등의 처분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려 ‘귀족학교’라 불리는 외국인학교에 대한 감시망이 느슨한 탓에 매번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국인학교 이사들은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국내에 외국인학교를 설립하고 교비 약 74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8년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바 있다. 2021년에는 수원의 한 외국인학교 관계자가 교비를 불법으로 전용해 재판에 넘겨졌고, 경기도 의정부의 한 외국인학교 관게자도 2010년 교비 수십억원을 횡령해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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