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촉발 OTT 저널리즘 원칙 적용 숙제 남기다

윤유경 기자 2023. 3. 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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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부터 웨이브 '국가수사본부'까지…지상파 방송사가 만든 OTT 다큐멘터리 파급력 확산
'선정성 부각 아닌 공익성 늘리는 방향으로' OTT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 필요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저널리즘 : 보도 영역에 있는 OTT 콘텐츠에도 저널리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최근 논의에서 나온 단어. 현직 PD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OTT에 유통하며 기존 지상파에서의 제약을 극복해 기존 PD저널리즘에 심층성을 더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선정성 논란이 따라오고 있다.

지상파 방송 감독이 제작한 OTT 다큐멘터리 콘텐츠 두 편이 같은 날 공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일 공개되자마자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다큐멘터리 콘텐츠에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 규제에서 벗어난 OTT라는 플랫폼에서 발생한 선정성, 폭력성 논란도 함께 이어졌다. 이에 OTT 콘텐츠에도 저널리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넷플릭스 다큐

두 콘텐츠는 모두 지상파 방송사인 MBC, SBS PD가 만들어 OTT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다. <나는 신이다>는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피디수첩'을 연출한 조성현 PD가, <국가수사본부>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그알)'의 배정훈 PD가 기획·연출했다. 그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통적으로 'OTT여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상파 규제를 벗어나 더 깊게 취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새로운 유통의 길을 찾았다는 의미도 있다.

▲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 '국가수사본부'. 사진=웨이브 제공

사건 고발의 측면에서 파급력은 컸지만, <나는 신이다>에서 기독교복음선교회(일명 JMS) 총재 정명석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1~3회는 성폭력 범죄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해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정씨의 실체 고발을 위해 그와 피해자의 실제 음성이 담긴 녹취록과 피해자의 증언, 영상 등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통을 못 이겨 울거나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등을 클로즈업해 보여줬다.

5회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편에서는 피해자들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뺨이 부어오를 때까지 스스로를 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씨가 어떻게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했는지를 배우들의 재연을 통해서도 보여줬는데,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피해 장면 재연도 지나치게 세세했다는 지적이다.

편집 기법도 도마위에 올랐다. 1화 첫 장면은 정씨의 성폭행 상황 녹취를 그대로 재생하며 시작한다. 피해자들이 강요나 세뇌 상태에서 찍었을 나체 영상과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여성 신도들이 나체로 앉아 정씨에게 손짓하는 영상은 반복해서 보여줬다. '170cm 넘는 키'와 같은 피해자들의 신체 특징은 지속적으로 거론됐고, 카메라는 재연 배우 다리의 실루엣을 비췄다. '정명석의 범죄 혐의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제작진의 설명에도, 피해자를 대상화하고 성폭행 피해를 음란물처럼 '전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3월10일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성현 MBC PD. 사진=넷플릭스 제공.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의 '성희롱·성폭력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성폭력 사건보도 실천요강)'에 따르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다룬 보도는 사건의 가해 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전혀 지키지 않은 <나는 신이다>의 연출은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성현 PD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주 명백하게 보여줘야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이 한두명이라도 그 소굴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피해자들이 인터뷰와 증거물 공개에 동의했다고 말했지만, 실제 온라인 상에서는 피해 재연이나 노출 장면만을 모은 선정적인 부부만 편집한 2차 가해 영상물이 끊임없이 유통되고 있다. 실명과 얼굴을 드러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상 파헤치기와 2차 가해성 글들도 무수히 올라오고 있다. 범죄를 지나치게 묘사해 모방범죄 우려를 낳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보도 실천요강은 '실명이나 얼굴을 공개하는 보도방식은 2차 피해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외의 방식은 신뢰성을 얻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실명이나 얼굴을 공개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피해자의 신분과 얼굴을 공개하기보다 취재를 철저하게 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로 규정되지 않는 OTT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OTT 다큐멘터리에도 저널리즘 원칙 적용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을 고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연출한 최진성 PD는 “직접 인터뷰가 또 다른 가해가 될 수도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 인터뷰를 넣지 않았다.

▲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사진=넷플릭스 제공

<나는 신이다>가 다룬 사이비 종교는 한국 사회가 특히 취약한 문제로 구조적 문제 해결이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는 정씨의 형량이 왜 징역 10년에 그쳤는지, 정씨가 문제없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구조적 문제를 짚지 않는 한 사이비 종교와 성폭력 피해자들의 문제는 가해자인 정명석 등 개인에 대한 분노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성폭력 사건보도 실천요강에 따르면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신이다>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유발하거나 피해를 확산하는 조직문화 및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도 주목하여 보도해야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적나라한 수사현장 묘사가 아닌, '수사과정' 보여준 <국가수사본부>

<국가수사본부>는 강력계 형사들의 24시간을 따라가는 '형사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을 택했다. 부산 양정동 모녀 사건, 평택 강도 마약 사건 등 실제 사건의 발생 시점부터 수사 전 과정을 밀착 취재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현실감을 보여줬다. 제작진이 경찰서에서 형사들과 수개월 간 함께 지내며 기록하는 제작방식으로 종결된 사건을 경찰에게 전해 듣고 영상을 재구성하는 기존 시사 프로그램보다 생생하다.

▲ '국가수사본부' 1~2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편. 사진=웨이브 제공

국가수사본부가 <그것이 알고싶다>(그알)와 다른 부분은 시간 제약 없이 현장출동부터 체포, 수사, 기소까지 모든 과정에 카메라가 따라다녔다는 점이다. 그알에서는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을 경찰 인터뷰를 통해서 다룰 수 있지만 국가수사본부에선 체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시청자에게 공유한다. 기존 시사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던 박진감 넘치는 수사드라마와 같은 구성이다. 배정훈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목표를 가지고 촬영에 임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리얼 수사 다큐'라서 그에 따른 촬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다 보니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메라가 공권력 행사 전반에 동행하면서 국민들이 경찰을 친근하게 생각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사건마다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머리를 쓰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동안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말 안 통하는', '폭력적인' 형사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한 것이다. 실제 <국가수사본부>를 본 시청자들은 댓글을 통해 '형사들이 고군분투하는 게 보여서 감사하고 안심된다', '내가 직접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느낌이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현실감이 느껴져서 재밌다'고 말했다. 배 PD는 “현장에서 형사들이 가진 진솔한 고민이나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각 회차마다 성격이 매우 달라서 사건별로 관전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수사본부>가 경찰서 내부에서 피의자가 조사받는 영상을 다수 사용한 점에 대해 '인권 침해' 논란도 일었다. 경찰은 지난 19일 제작진에게 피의자 조사장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고 제작진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영상에서는 경찰이 체포·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해 경찰청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공권력의 권력 행사과정 전체를 보여주면 부당한 권력 행사를 감시하는 효과도 발생하고, <국가수사본부>에 등장한 경찰의 수사 과정 전반은 전국의 다른 경찰들에게 모범이자 반면교사로도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OTT 저널리즘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는 OTT시대, 'OTT저널리즘' 논의 필요하다

OTT 저널리즘의 핵심은 '밀착취재의 가능'에 있다. 기존 지상파 한계를 보완해 취재시간과 제작비 지원 등을 통해 사건과 더 밀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PD는 영화감독과는 다르게 밀착취재를 통해 실제 현장을 보여주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역할을 해내고 기자들과는 다르게 취재 과정에서의 재미 요소를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심의 규제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OTT와 협업에서 선정성을 부각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 ⓒgettyimagesbank

앞으로 OTT 저널리즘이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은 많다. 오랜 기간 풀지 못한 미제사건, 그동안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중요한 사건, 언론에서 단편적으로는 자주 보도가 됐지만 그 사건들 이면에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취재할 수 있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은 이런 면에서 피해자의 인터뷰를 싣지 않고,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의 말을 통해 사건을 구조적으로 파헤친 사례다. <나는 신이다>도 그간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짚어보는 작업을 통해 충분히 피해 사실을 드러내면서 형사·사법 시스템에도 메시지를 낼 수 있었다.

OTT 콘텐츠는 아니지만 영화 <다음소희>에서도 형사(배두나 분)가 콜센터 실습 고등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된 학교, 현장 실습 업체, 교육청, 경찰 등 인물들을 만나며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고 모두의 책임을 나열했다. 규제에서 벗어나 더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아닌, 시간의 제약에서 뛰어넘어 지상파 영역에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OTT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일 수 있다. 앞으로 주 콘텐츠 생산·유통 경로가 될 OTT에 긍정적 측면을 확대하고, 위험한 요소들은 경계하는 방향의 OTT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 영화 '다음소희' 포스터.

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들의 책임있는 자세도 중요하다. 유튜브처럼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닌만큼, 자사에서 유통하는 다큐멘터리 콘텐츠가 공익적 방향으로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서 촉발된 'OTT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가 자칫 가짜뉴스가 판치는 지형이 돼버린 유튜브 콘텐츠의 방향을 따라 가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나는 신이다>에 대해 당초 선정성 우려를 표했으나 제작진이 참담한 현실을 알려야 한다고 설득해 콘텐츠가 유통되기도 했다. OTT 플랫폼 자체적으로 성범죄나 아동관련 콘텐츠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도 있다.

▲ OTT 앱 이미지 ⓒgettyimagesbank

한편, OTT에 대한 규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OTT는 언론사가 아니기에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OTT 콘텐츠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온라인비디오물'로 분류돼 지상파 방송사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OTT를 통해 공개한다면 방송법에 따른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도 이후 피해자가 겪을 추가 피해를 막은 수단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당장 OTT를 규제하기 어렵더라도, OTT 저널리즘을 실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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