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처벌 입시 연계땐 학교는 소송 판 될 것…‘공동체 회복’이 우선”

이종규 2023. 3. 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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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이종규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학폭 원인은 입시 경쟁 등 복합적…손쉬운 해결책 없어
징계와 별도로 관계 회복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필요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언급하며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내놓은 주문이었다. 며칠 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엄벌주의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의 이런 기류에 비춰 보면 교육부가 이달 말 발표할 학교폭력 종합대책에는 가해 학생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기만 하면 학교폭력이 사라질까?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엄벌주의는 학교폭력의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를 법적 다툼의 장으로 만들고 교육적 해결의 여지를 축소시키는 등 부작용이 클 거라고 우려했다. 좋은교사운동은 ‘교실 붕괴’ 담론이 무성하던 2000년, ‘좋은 교사 되기’를 목표로 출범한 교원단체다. 전국 유·초·중·고 교사 40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16일 좋은교사운동 사무실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에 출석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징계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리고 징계 전력을 대학 입시(정시 포함)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담은 ‘학교폭력 근절대책 추진방향’을 보고했습니다. 근절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면 참 쉽죠. 현실에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교육 현장은 학교폭력 징계 기록을 학생부에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학생부 기록은 입시와 직결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사법적 다툼으로 번지는 일도 늘어납니다. 만일 정시까지 징계 기록을 반영하면 교육적 해결의 여지가 더욱 줄어들게 될 겁니다.”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학교폭력과 입시는 둘 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인데, 둘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게 되면 법적 분쟁이 늘어 학교가 유사 사법체계처럼 움직이게 되고 학교의 교육적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폭력이 사법을 통해 해결될 경우 누가 더 유리할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쪽이 더 잘 활용하겠죠. 이번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요.”

―교육부는 가해·피해 학생 즉시 분리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차 피해 방지 등을 위해 즉시 분리는 필요합니다. 다만, 이 제도와 관련해 강화해야 할 것은 분리 이후 피해 학생을 어떻게 더 잘 보호하고 지원할지, 피해·가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할지 등입니다. 예컨대 ‘안정실’과 같은 별도의 공간, 심리 상담 등 교육적 조치를 위한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외면한 채, ‘분리 제도 강화’가 학생 간 대화 등 교육적 해결을 시도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학생부 징계 기록과 입시 반영 여부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국민들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응분의 처벌을 받지 않고 버젓이 명문대에 입학한 것에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피해 학생은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했는데 가해 학생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분에는 저도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응보적 정의’가 사법체계에선 필요할 수 있죠. 그러나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온전한 피해 회복,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 교육공동체의 복원입니다. 지금과 같은 처벌 중심의 대응체계에서는 이런 것들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학교폭력 중에는 언어폭력과 사이버폭력이 많아서 가해와 피해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그동안 학교폭력이 이슈가 될 때마다 정부는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해온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그게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쉬운 방식이고, 성난 여론을 빠르게 달랠 수 있으니까요. ‘교육적 해결’을 얘기하려면 복잡해지고, 뭔가를 바로바로 내놓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처벌 중심의 대응체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학교를 유사 사법체계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이런 상황에선 오류 없이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사건’을 처리했는지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면 사안이 종료되는 시스템이죠. 그런데 예를 들어 가해 학생이 처분대로 사회봉사 20시간을 하고 오면 피해가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반성이 이뤄지나요? 앞으로도 계속 엄벌주의가 강조된다면 학교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으로 기능하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2019년 발표된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안에 따라 2020년부터 일선 학교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폐지되고, 관련 업무가 교육청으로 이관됐습니다. 개선된 점이 있나요?

“일선 학교가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해 보고하면 교육청이 어떤 조치를 할지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학교는 수사기관, 교육청은 사법기관 역할을 나눠 맡는 거죠. 제가 보기엔 유사 사법체계가 오히려 더 견고해진 것 같습니다. 2019년 발표 당시 교육부는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학교장이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는데, 프로그램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오래전부터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주장해 왔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 개념을 교육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가해자 처벌을 목표로 삼는 ‘응보적 정의’와 달리, ‘회복적 정의’는 관계 회복, 피해 회복, 공동체 회복을 중시합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는 갈등을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여기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서클’(대화모임)입니다. 피해·가해 학생, 주변 친구들까지 둘러앉아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뭘 원하는지, 가해 학생과 친구들은 뭘 해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피해 학생의 동의가 있어야 서클이 진행됩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고 해서 잘못을 덮어주자는 게 절대 아닙니다. 징계를 하더라도, 대화를 통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한 뒤 책임을 묻자는 것입니다. 그냥 벌로 받아들이는 거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는 거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교육적 해법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긴 하지만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2011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작했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게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한국 사회가 다른 대안을 찾았나요? 학교폭력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원인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전문교사들을 양성하고 사회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면 지금쯤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교육 현장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나요?

“저희 단체에서 연수를 받은 선생님들이 실제 학교에서 학교폭력 대응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관계 회복적인 학급 운영 등을 위해 많이 활용하고 있고, 교육청 여러 곳에도 ‘관계 회복 지원단’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해 12월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한 ‘학생생활지도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다수 학생의 학습권, 그리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신고인데, 이 부분은 변화가 없습니다. 지금은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학생을 뒤에서 붙잡거나 다른 학생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학생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가는 자칫 아동학대로 신고가 될 수 있거든요. 학교에선 아동학대법을 좀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로 이어지기 쉬운 정서·행동 위기 학생들을 지도할 전문교사 양성 등의 대책도 필요합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교권 침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은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만드는 방안이 될 수 없습니다. 교권 침해 사항까지 학생부에 기록하게 한다면 학교가 더욱 법적 분쟁의 장이 되고 교육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학생부는 학생의 성장과 배움의 과정들을 기록하는 문서지, 징계기록부가 아닙니다. ‘교권 침해 학생 즉시 분리’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분리 절차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분리 과정에서 제2, 제3의 교권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분리된 학생의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등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도 우려스럽습니다.”

―교권 보호의 필요성도 있지 않나요?

“교육 현장에서 교육활동 침해가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 매뉴얼이나 지도 방안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육활동 침해의 대부분이 정서·행동상의 위기에 처해 있는 학생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분노 조절이 안 되거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학생들이 꽤 많거든요. 이 문제는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서·행동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사 연수 외에, 지도 매뉴얼 마련, 전문교사 배치, 위기학생 지원 인프라 구축 등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은 갈등의 교육적 해결을 위해 ‘교육공동체회복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제안해왔습니다.

“일선 학교에는 세 개의 분쟁 해결 기구가 있습니다. 생활교육위원회, 학교폭력 전담기구, 교권보호위원회입니다.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인데, 대응이 이렇게 분절적으로 이뤄져서는 온전한 해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학생이 교권을 침해할 수도 있고, 알고 보니 그 학생이 정서·행동상의 위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공동체 회복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학교 내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저희 단체의 제안입니다.”

―회원들이 학년 초 학부모에게 편지 보내기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도 교육공동체 회복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교육공동체는 ‘신뢰’라는 기반 위에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교사가 먼저 학부모에게 손을 내밀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년 초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불안해하잖아요. 교사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교육철학, 학급운영 계획 등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면 신뢰의 첫발을 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학교폭력 문제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 풍토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배움은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입시 경쟁은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학업 스트레스와 낙오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 쌓이면 공격적인 행동이나 언어폭력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밖에 폭력을 정당화하는 신념이나 미디어, 사회 불평등 같은 것들도 학교폭력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학교폭력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늘 한계에 직면한 것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이 펴내는 월간지 <좋은교사>는 지난해 10월호에 학교폭력을 특집으로 다뤘다. 당시 이 단체 정책위원장이던 한성준 대표는 제언 꼭지에 이렇게 썼다.

“좁은 우리에 수많은 닭을 넣으면, 닭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서로를 쪼기 시작하고 상처를 낸다. 그러면 주인은 닭의 부리를 잘라 버린다. 닭의 부리를 잘라 버리면 문제는 해결되는 걸까? 문제의 시작은 좁은 우리에 수많은 닭을 밀어 넣은 데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 문화 속에 경쟁 중심의 입시 체제가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 안으로 학생들을 수없이 밀어 넣고 있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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