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차이나]② 세계 디지털 화폐 경쟁서 가장 앞선 中…美 달러 패권 도전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위안화의 디지털 버전이다. 실물 위안화와 마찬가지로 법정 화폐 자격을 갖는다. 중국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은 2014년 디지털 화폐 개발 연구에 착수한 후, 2020년 중국 남부 광둥성의 기술 허브 선전시를 시작으로 일부 도시에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사용에 나섰다.
2020년 10월 선전시 뤄후구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첫 디지털 위안화 사용 실험이 시작됐다. 추첨에서 당첨된 5만 명에게 디지털 위안화 각 200위안(약 3만8000원), 총 1000만 위안(약 19억1300만 원)을 지급했다. 일종의 디지털 훙바오(紅包·돈봉투)다. 당시 참여 신청에 191만3800여 명이 몰려 당첨률 2.61%를 기록했다. 이어 중국 동부 장쑤성 쑤저우시가 2020년 12월 2000만 위안(약 38억2700만 원) 규모로 두 번째 디지털 위안화 사용 실험을 진행했다. 이때 중국 대표 이커머스 기업 징둥이 온라인 플랫폼 중 처음으로 디지털 위안화 결제에 참여했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사용처를 늘리면서 사용 건수와 거래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인민은행 발표에 따르면, 디지털 위안화 누적 거래액은 2021년 말 876억 위안(약 16조7000억 원)에서 2022년 8월 말 1000억 위안(약 19조750억 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15개 성·시의 시범 운영 지역에서 디지털 위안화로 3억6000만 건 거래가 이뤄졌다.
시범 운영 지역도 점차 늘고 있다. 2023년 2월 말 기준 26개 성·시가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했다. 성급 단위 중엔 광둥성·장쑤성·하이난성·허베이성·쓰촨성·저장성(항저우·닝보·원저우·후저우·샤오싱·진화)·푸젠성(푸저우·샤먼)·산둥성(지난·칭다오)·윈난성(쿤밍·시솽반나)·광시좡족자치구(난닝)에서, 시급 단위 중엔 베이징·톈진·상하이·충칭·다롄·시안·창사·충칭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다. 시범 운영 지역 거주자는 누구나 스마트폰에 디지털 위안화 앱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외국인도 사용 가능하다. 인민은행은 2022년 말 기준 유통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 금액이 136억1000만 위안(약 2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도입한 상점(온·오프라인) 수는 지난해 8월 말 560만 곳에서 지난해 12월 말 1120만 곳으로 두 배 늘었다.
◇ 국내 결제 데이터 확보하고 자금 흐름 통제
이미 중국 14억 인구의 64%(2021년 말 9억360만 명) 이상이 알리페이(알리바바)·위챗페이(텐센트) 같은 민간 기업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쓰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가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디지털 화폐 결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누구나 제약 없이 안전하게 결제·송금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판이페이 전 인민은행 부총재(2015~2022)는 “모바일 결제는 결제 범위, 포용 금융, 결제 효율, 사용자 개인정보 보호 등에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같은 중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은행 계좌를 연동시켜야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디지털 위안화는 은행 계좌가 없어도 휴대전화 번호 또는 신분증만으로 디지털 위안화 계정(지갑)을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 지갑이 있는 상대방이 내 디지털 위안화 지갑으로 돈을 보내면 받는 즉시 쓸 수 있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은행 계좌가 없는 중국인도 마침내 디지털 세상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쓸 수 있다는 것도 일반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의 차이점이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비행기 안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지갑이 있는 두 사람이 디지털 위안화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근본적으론 사용자 데이터 확보와 빅테크 영향력 견제가 중국 당국의 더 큰 목적이란 관측도 있다. 그동안 알리바바·텐센트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은 중국 인구 대부분의 개인정보와 신용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축적했다. 중국 당국이 민간 기업의 정보 우위에 위협을 느껴 금융 감독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양분한 알리페이·위챗페이와 디지털 위안화 연동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알리페이와 디지털 위안화 앱이 먼저 연동됐다. 알리바바그룹의 타오바오(쇼핑)·어러머(배달) 앱처럼 알리페이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던 플랫폼이나 앱에서 디지털 위안화로도 결제가 가능해졌다. 이어 올해 3월부터 텐센트의 위챗 미니 프로그램에서도 위챗페이 외에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게 됐다. 중국 당국은 알리페이·위챗페이 같은 민간 서비스보다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디지털 위안화가 사용자 데이터 보호 측면에서 안전성이 더 높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위안화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몰아내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게 중국 당국의 입장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민간 모바일 지급결제 시스템을 보완할 뿐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위안화는 주로 중국 국내 소비 결제용으로 사용됐다. 중국 주요 도시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봉쇄·격리 조치로 경제가 마비되자, 내수 활성화를 위해 디지털 위안화를 뿌렸다. 선전시는 지난해 5월 말 3000만 위안(약 57억2100만 원) 규모의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했다. 허베이성 바오딩시 슝안신구도 비슷한 시기에 디지털 위안화 5000만 위안(약 95억3300만 원)을 디지털 보조금 식으로 나눠주고 식품·전자제품 등을 살 수 있게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월 3일 발간한 중국 경제 전망 연간 보고서에서 중국이 지난해 12월 예상보다 빨리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폐기하면서 민간 소비 반등이 올해 경기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IMF는 중국 정부의 소비 촉진 정책 집행 과정에서 디지털 위안화가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예전엔 정부가 재정 자금을 지급할 때, 수령인에게 최종 전달되기까지 여러 복잡한 절차와 과정이 있었다. 연금이나 보조금을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하면 중간 과정 없이 직접 지급이 가능하다. 수령인이 자금을 어디에 썼는지 추적도 가능하다. 통화·재정 부양책의 속도와 투명성,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거란 분석이 있다. 반면 중국 당국이 자금 이동 통제와 감시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위안화 거래 흐름을 추적하고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 디지털 위안화로 美 달러화 패권 도전
디지털 위안화는 국내용만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위안화 국제화 야심도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상용화를 서두르는 배경이다. 미국과의 경쟁 속에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현재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 패권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국가 간 무역·투자 결제 통화 수단으로 위안화 사용을 늘리려는 것이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화 영향력을 줄이고 위안화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엔 중국이 새로운 규칙을 정하겠다는 얘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중국이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국제 규범을 선도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중국이 국내 소비 결제 시나리오 확대에 주력하는 것도 풍성한 생태계를 조성해 장기적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 총재(2002~2018년)는 지난해 9월 한 포럼에서 국내 소매 결제에서 디지털 위안화 사용 환경이 더 다양해져야 역외 결제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두 나라가 효율적이고 안전한 디지털 화폐 소매 결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국가 간 연결도 어렵다”고 했다. 저우 전 총재는 2020년 10월엔 헝가리 중앙은행이 주최한 ‘유라시아 포럼’ 화상 회의에서 “중국이 디지털 화폐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달러화 통용을 막기 위해서”라며, 달러화 패권 도전을 선언했다.
중국은 국제결제은행(BIS), 여러 국가와 함께 국제 결제에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를 쓰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지난해 9월 홍콩·태국·UAE 중앙은행과 함께 출범시킨 다자 CBDC 플랫폼 프로젝트 mBridge(엠브릿지)를 통해 첫 실시간 국가 간 결제 시범 테스트를 완료했다. 분산 원장 기술(DLT, 거래 기록이 담긴 원장을 거래 참여자 모두 공유하는 기술) 기반 단일 공동 플랫폼을 이용해 각국 CBDC로 국가 간 결제를 하는 것이다. 기존 국제 결제 시스템은 높은 비용, 느린 속도, 불투명성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국제 결제망에 DLT를 적용해 디지털 화폐 결제와 외환 거래 때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HSBC는 “CBDC는 환거래 은행을 거칠 때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더 경제적이고, 결제 처리 속도가 빠르고, 덜 복잡하고, 더 투명하다는 점에서, 실시간 크로스보더(국가 간) 결제와 외환 거래에 적절한 수단이란 게 확인됐다”고 했다. BIS도 보고서에서 “기존 상업은행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거래에 보통 며칠이 걸리지만, CBDC 결제는 단 몇 초 만에 완료됐다”고 했다.
인민은행은 2021년 1월 국제 결제를 처리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와 합작사도 세웠다. 디지털 화폐 시대의 국제 결제·송금 방식을 연구하는 게 설립 목표다. IMF는 지난해 7월 “디지털 화폐와 기술은 금융 포용을 촉진하고, 경제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국가 간 거래를 포함해 거래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가 가까운 미래에 CBDC를 공식 출범시킬 선두주자”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계획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다. IMF는 2016년 10월 1일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킨 데 이어, 그해 4분기에 처음으로 위안화를 공식 외환보유액 데이터베이스에 포함시켰다.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올라간 순간으로 평가된다. 이후 전 세계 공식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자산은 900억 달러에서 2022년 3분기 3000억 달러(약 392조 원) 규모로 늘었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 비중은 1.08%에서 2.76%로 높아졌다. 현재 80개 이상 국가가 외환보유액에 위안화를 포함시켰다. IMF는 지난해 5월 SDR 바스켓에서 위안화 비중을 기존 10.92%에서 12.28%로 높였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멀다. 전 세계 결제 중 위안화 비중은 1.9%(5위)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화(40.1%), 유로화(37.9%)엔 한참 못 미치고, 파운드화(6.6%), 엔화(3.2%)와도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의 여전한 자본 통제 정책이 위안화 국제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이 완전히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이동을 허용하지 않으면 신뢰 결여로 위안화 세계화에 한계가 있을 거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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