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자전거, 집에서 가르쳐도 되는데...초등학생 예체능 사교육비 47% 뛴 이유는

최효정 기자 2023. 3.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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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 13% 늘 때 예체능 47% 증가
2004년 도입 ‘줄넘기 인증제’ 전국 확대, 이젠 수행평가도
맞벌이 부부 증가·코로나 교육 결손에 ‘돌봄 외주화’

김모(42)씨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줄넘기 과외에 등록시켰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쌩쌩이(2단 뛰기)’와 ‘X자 뛰기’를 평가하는데 아이가 두 가지 모두 스스로 하지 못해서 과외를 통해 가르치기 위해서다. 김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은 줄넘기가 필수”라면서 “줄넘기도 과외받는 아이들이 은근히 많다”고 말했다.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의 1인당 평균 예체능·취미 분야 학원비가 약 21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46.9% 증가했다. 증가율이 초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 13.4%를 훌쩍 뛰어 넘었다. 예체능 사교육비 증가 속도가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포함한 전체 사교육비를 넘어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한국의 사교육 광풍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학부모들과 교육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없고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줄넘기나 자전거 타기 등은 그동안 가정 교육의 영역 이었지만 맞벌이 부부 증가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교육 결손 때문에 ‘돌봄의 외주화’가 가속화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원=뉴스1) 김영운 기자 =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1학년 신입생들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2023.3.2/뉴스1

◇ 줄넘기 과외 받는 초등학생들... 양발모아 뛰기 등 수행평가 항목

예체능 사교육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것이 줄넘기다. 인천교육청이 2004년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높인다며 도입한 ‘줄넘기 학년별 급수제’가 전국으로 확대된 후 줄넘기가 체력장을 대체하는 수행평가 항목 중 하나가 됐다.

줄넘기 급수제를 시행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급수를 올려가며 실력을 늘려야 한다. 양발모아 뛰기, 제자리 달리며 뛰기, 2중 줄넘기, 오래 줄넘기 등 여러 종목별로 점수를 주고 총점을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한 뒤 인증서를 수여한다.

줄넘기 과외업체 강사 김모(30)씨는 “학부모들이 줄넘기를 못할까 걱정에 등록하는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줄넘기를 배우고 싶어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초등학교에서 줄넘기는 필수인 상황이라 아이들이 동작을 잘 못 따라하는 경우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일에 치이는 부모들...돌봄 공백, 체육 학원서 메운다

체육 학원이 맞벌이 부부 증가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모(39)씨는 고민 끝에 최근 7살 자녀에게 자전거 강습을 받게 했다. 부인과 자신 모두 일로 바빠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일일이 가르쳐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원래는 부모가 찬찬히 알려주면 되는 것들인데 일에 치이다보니 여유있게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코로나로 대면수업이 중단된 기간 아이들의 운동 부족 문제가 심화한 것도 체육 사교육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살이 찌거나 우울해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어린이 수영장을 운영하는 임모(45)씨는 “코로나 기간 동안 아이들이 활동이 줄어들어 소아비만이 늘었다”면서 “건강 문제 때문에 자녀 수영을 등록하는 경우가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9년 세계 142개국 청소년 160만 명을 대상으로 운동량 조사를 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권장 운동량 미달 비율은 94%에 달했다. 세계 청소년 운동량 최하위다. 교육부 조사 결과, 신체활동 감소에 따른 저체력 학생(PAPS 4·5등급) 비율은 2019년도 기준 12.2%에서 지난해 17.7%로 더 증가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공적 돌봄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결국 학부모들은 돌봄을 모두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체육 사교육 증가도 이런 측면을 반영한 것”면서 “이번 정부가 공적 돌봄체계를 확충하겠다고 했는데 문제는 이 공적 돌봄체계가 학생과 부모에게 얼마나 신뢰를 주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다. 민생 차원의 제공이 얼마나 되느냐가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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