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이동원·박인수 ‘향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관리자 2023. 3. 2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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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박인수가 2월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이자 오페라 가수로 평생을 살았지만 한국인들은 대중가요 '향수'의 가수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그는 후속곡으로 정지용의 시 '향수'를 준비하던 중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팝가수 존 덴버가 부른 '퍼햅스 러브(Perhaps love)'가 히트한 것을 보고 본인도 성악가와 듀엣을 하고자 박인수를 소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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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수록한 이동원의 독집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테너 박인수가 2월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이자 오페라 가수로 평생을 살았지만 한국인들은 대중가요 ‘향수’의 가수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향수’를 같이 부른 가수 이동원도 2021년 생을 마쳤으니 이제 노래만이 남아 역사를 지킨다.

1989년 ‘향수’가 나오기 전까지 클래식계는 가요를 우습게 보며 협연을 금기시했다. 그러니 서울대 교수인 박인수가 가요를 녹음한 일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이동원은 1980년대 초반 정호승·고은 등이 쓴 시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후속곡으로 정지용의 시 ‘향수’를 준비하던 중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팝가수 존 덴버가 부른 ‘퍼햅스 러브(Perhaps love)’가 히트한 것을 보고 본인도 성악가와 듀엣을 하고자 박인수를 소개받았다.

이후 이동원은 작곡가 김희갑을 찾아가 곡을 의뢰했고 8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노래가 탄생한다. ‘향수’는 대성공을 거두며 클래식을 널리 알렸고 가요의 품격을 높였다며 호평받았다. 또한 박인수는 스타로 떠올라 각종 방송에 출연하는 등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클래식계는 박인수의 인기가 불만이었다. 그 여파로 그는 국내 최고 성악가 20명만이 될 수 있었던 국립오페라단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했다. ‘성악가로서 품위 손상’ ‘지나친 상업성’이 이유였다. 당시 언론은 클래식계를 비판했고 여론도 그의 편에 섰다. 이 일로 국립오페라단의 단원제는 폐지됐다. 결국 ‘향수’는 국민적 사랑과 함께 한국 음악계에서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

한편 노랫말인 시 ‘향수’는 정지용이 192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 쓴 것이다. 도입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묘사된 곳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시인의 생가 앞 풍경이다. 반복되는 가사인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는 옥천이겠지만, 노래를 듣는 이들에겐 각자의 고향일 테다. 미국에서 타계한 박인수에겐 조국, 이동원에게는 말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경북 청도 가 되겠다. 세 사람 모두 고향이 아닌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초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숲속에서 자유로운 사슴이 먹이를 구하러 가듯,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길만을 생각하면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지용·박인수·이동원 인생을 보면 그들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고독하게 신념대로 살아간 인물이 아니었나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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