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아, 골든타임 놓치지마”...욕 먹어도 이것만은 알리고 싶어요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3. 3. 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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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학생 엄마’ 경험한 후
책 내고 상담사 된 정승훈씨
1년간 경찰서·법원 등 오갔던
자전적 경험 담은 책의 저자
정승훈 작가 [이승환 기자]
드라마 ‘더 글로리’의 복수 참교육이 통쾌한 건 많은 사람이 학교폭력(학폭) 가해자 ‘박연진’보다는 피해자 ‘문동은’에게 공감해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도 대개 비슷하다. 자신의 자녀가 가해자가 될 걸로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정승훈 상담사(54·사진)도 2015년 6월 중학교 3학년 아들에게 전화를 받기 전까진 그랬다. 작은 다툼이라 생각했던 아들의 학폭은 집단폭행으로 분류되면서 갑자기 ‘사건’이 됐다. 엄마는 1년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오가면서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그로부터 2년 후 정씨는 1년간 학폭 가해자 엄마로 배운 경험을 글로 옮기며 치유의 글쓰기를 체험했다. 또 다른 학폭을 막고 같은 일을 겪는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같은 해 아들 사건 때 도움을 받았던 푸른나무재단의 전화상담 자원봉사 모집에 지원해 선발됐다. 그때부터 주 1회 학폭 전문 상담사로 봉사하고 있다. 푸른나무재단은 학폭으로 아들을 잃은 김종기 명예 이사장이 만든 시민단체다. 정씨는 2020년엔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란 제목의 책을 냈다.

책 출간 전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글쓰기 과정을 지켜본 지인은 가해자 이야기를 책으로 냈을때 어떤 반응이 올지 걱정했다. 아직 아물지 않았을 피해자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실명을 걸고 쓴 글이니만큼 아들이 공격당할까 두렵기도 했다. 정씨는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경험담에 많은 독자가 공감해주면서 용기를 얻었다”며 “법원까지 간 사건이기에 구체적으로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학폭 가해자 부모의 나쁜 대처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많은 부모는 처음엔 자녀의 학폭 사건을 부정한다. 그 다음엔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 혹은 은폐해 처벌을 줄이는 데만 골몰한다. 그래도 안 되면 피해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억지로 만든다. 그 사이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다. 그는 “피해 학생 측에 일단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게 먼저”라면서 “이 시기를 놓치면 피해 학생 측에서는 서운함과 분노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학폭 사건 해결의 궁극적 목적은 누군가를 학교에서 내쫓는 게 아니라 모두가 온전히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정씨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최근 법조계서 대두하고 있는 ‘회복적 정의’의 개념을 학교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복적 정의란 응보적 정의와는 다른 개념으로 가해자에 대한 벌이나 비난보다는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우선시한다.

그래서 몇몇 드라마나 자극적인 학폭 보도가 그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만을 자극해서다. 언론에 보도된 극단적 학폭은 전체의 2~5%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복잡 미묘한 갈등과 심리·언어적 폭력이 더 많다. 상담 요청을 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비중은 비슷하다. 이런 학폭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씨는 “선진국에선 학폭이 벌어지면 관계된 모든 사람, 학교 수위 아저씨도 모여 토론한다”며 “우리 사회의 처벌이 아닌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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