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까지 장사진…한국 전시문화 바꾼 '합스부르크'

성수영/이선아 2023. 3. 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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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600년'전
32만명 관람 '메가 히트'
지적 자극 바란 관람객 대만족
"인증샷 찍는 전시와 차원 달라
역사와 예술의 향연 제대로 즐겨"
유럽의 미술관처럼 꾸민 전시관
영상·음악 활용해 몰입감 높여
평균 90분 관람…타 전시 2배
누적 관람객 32만8000여 명을 기록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가 15일 막을 내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40일간 이어진 이 전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대표 소장품 등 약 100점을 소개했다. 전시 마지막 날 국립중앙박물관 매표소 앞에 합스부르크전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김범준 기자


“좋은 전시 하나 덕분에 관광객까지 늘어날 줄은 몰랐네요.”(오스트리아 빈관광청 관계자)

최근 오스트리아 빈은 뜻밖의 ‘전시(展示)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본 뒤 빈으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빈관광청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빈을 찾았고 일본과 한국이 그 뒤를 이었지만, 지난해에는 한국이 1등”이라며 “합스부르크 전시로 오스트리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는 게 우리의 분석”이라고 말했다.

‘신드롬급 인기’를 끌며 연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에 긴 줄을 늘어세웠던 합스부르크 전시가 15일 32만8961명에 달하는 총관람객을 기록하며 14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최근 10년 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중 관람객 30만 명을 넘어선 건 2014년 ‘오르세 미술관전’(34만 명), 2016년 ‘이집트 보물전’(37만 명) 등 두 건뿐. 관람객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해 관람 인원을 제한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역대 최대 수준의 성과다. 문화계 관계자들이 분석한 전시 흥행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배울 준비’된 관람객, 전시 지형 바꿔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를 보고 한국 미술의 ‘기초 체력’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손이천 케이옥션 이사는 전시 관람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미술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세계적인 미술시장 호황은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미술계에서 ‘대중의 관심이 다시 식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인스타그램 ‘전시 인증샷’이나 미술품 투자 등을 통해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이탈할 것이라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우로 판명됐다. MZ세대는 수준 높은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며 지적 자극을 받고 싶어 했고, 합스부르크 전시는 이런 눈높이를 충족시켰다. 손 이사는 “전시 관람 태도가 너무나도 진지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전시업계 관계자는 “이번 전시 성과를 보고 부랴부랴 합스부르크전 같은 ‘블록버스터급’ 전시 유치에 나선 회사가 많다”며 “국내에 다소 생소한 작가더라도 작품과 전시의 수준이 높으면 흥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 “한국 큐레이터 대단해요”

전시회가 요리라면 출품작은 재료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96점. 600년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계 전역에서 긁어모은 걸작들이다. 최고의 재료인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 빛난 건 국립중앙박물관의 ‘요리 솜씨’였다. 한국을 찾아 직접 전시장을 둘러본 사비나 하그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장이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을 해외에 전시한 것 중 역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을 정도였다.

주역은 양승미 학예사와 이현숙 디자인전문 경력관. 이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가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배치했다. 관람객이 미술품 감상과 역사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시 준비 기간은 1년이 넘었고, 빈을 두 차례 방문해 빈미술사박물관 특유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폈다.

이 덕분에 전시장의 조명과 벽 색깔,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의자 등을 유럽의 오래된 미술관과 흡사하게 꾸밀 수 있었다.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거대 천장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자체 제작한 영상,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꾸민 음악감상 시설 등도 관람객들의 몰입을 더했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 보니 이번 전시 평균 관람 시간은 1시간30분에 육박한다. 비슷한 규모 전시회 관람 시간의 두 배다.

(3) 오디오가이드 등 굿즈도 많이 팔려

배우고 즐길 준비가 된 관람객들과 최고의 전시 구성이 어우러진 덕분에 합스부르크 전시는 ‘여운이 오래 남는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 중 3분의 2 이상이 도록과 오디오가이드 등 관련 굿즈를 구입했다. 상당수 관람객이 집으로 돌아간 뒤 전시를 ‘복습’하거나 전시 관람을 추억했다는 얘기다.

20~40대 여성이 절대다수였던 이전과 달리 관람층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날 전시장 곳곳에서는 ‘역사 체험학습’을 위해 부모님 손을 잡고 전시장을 찾은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딸의 손에 이끌려 전시장을 찾았다는 중년 남성은 “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독일 도시 함부르크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문외한이었는데, 전시를 보고 나니 서양 역사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대중성과 전문성을 다 잡은, 전시 역사에 길이 남을 전시”(김선광 롯데문화재단 대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수영/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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