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부족·전력 구멍… 거꾸로 가는 한국야구
추락한 한국야구의 현실과 과제
대회 3연속 1라운드 탈락 대참사
개최국 아닌 美 훈련지부터 삐걱
한달 5개 도시 이동… 컨디션 타격
아쉬운 투수운용 호주전 패인으로
볼넷 남발 투수진 日과 큰 실력차
‘투잡러 야구’ 체코엔 진땀승 거둬
2009년 이후 14년 만의 4강 이상의 진출을 노렸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13, 2017년에 이어 또 다시 본선 1라운드에서 조기탈락했다. 2023 WBC에서의 호성적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의 노메달 수모를 씻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KBO리그 위기론을 잠재울 ‘특효약’으로 지목됐지만, 오히려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겠지만, 2023 WBC 대표팀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전지훈련지가 미국 애리조나 투손이었던 것부터가 참사의 시작이었다. 대표팀 사령탑이 KT의 이강철 감독인 데다 상당수 구단이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치르기 때문에 소집의 편의성을 위해 애리조나 토손이 대표팀 훈련지로 선택됐다. 날씨를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지훈련 기간 동안 애리조나는 예년에 비해 훨씬 추운 날씨가 지속돼 선수들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한국행을 위해 LA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행기의 기체결함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악재가 겹쳐 850km의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투손에서 LA를 거쳐, 서울, 오사카, 도쿄까지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다섯 개 도시를 돌았다.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당초 대표팀이 WBC에서 그린 그림은 전력이 두세 수는 아래인 체코와 중국은 잡는다는 가정하에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일본에 패한다고 하더라도, 한 수 아래 혹은 대등한 전력인 호주만 잡는다면 3승1패 조2위로 8강에 진출한다는 시나리오였다. 자연스레 이 감독도 “호주전에서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회 전체를 지켜본 뒤 9일 호주전을 돌아보니 과연 총력전을 펼친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분명 이길 기회는 있었다. 4회까지 퍼펙트를 당하며 0-2로 끌려갔지만, 5회 양의지의 3점 홈런과 6회 이정후의 적시타가 터지며 4-2로 경기를 뒤집었다.
총력전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7회부터는 리드를 지키며 점수 차를 벌리기 위해 대표팀 내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들을 연달아 냈어야 했다.
대포 한 방을 언제든 날릴 수 있는 호주 타선에 대한 분석이 덜 됐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 감독으로선 아무래도 다음날 열릴 예정인 일본전에 대한 계산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무리 당초 시나리오엔 일본전이 ‘져도 괜찮다’라는 계산이 서 있더라도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에게 허무하게 무너질 순 없는 법. 결국 뒤를 생각한 투수 운용으로 호주전을 망쳤고, 갑자기 ‘절대 져선 안 되는 경기’가 되어버린 일본전도 4-13이라는 충격적인 대패로 끝났다.
◆야구 강국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변방과의 격차는 줄었다
한 두 수 정도 위인줄 알았던 라이벌 일본과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그래도 과거엔 만나면 접전을 펼쳤고, 불굴의 투혼이나 정신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를 비롯해 일본 투수들은 160km 이상의 강속구를 정교하게 컨트롤까지 해내는 모습이었다. 우리 투수진은 9일 호주전과 10일 일본전에서만 4사구 11개를 내주며 21점을 내줬다. 우리 대표팀에도 150km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파워피처는 있지만,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걸치는 제구가 동반되지 않는 150km는 결코 필요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메이저리거 하나 없이 마이너리거와 자국 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호주에겐 패했고, 소방관, 야구협회 직원, 회계사 등 ‘투잡러’로 구성된 체코도 우리와 대등하게 맞섰다. 연봉 총액 100억대 이상의 자유계약선수(FA)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KBO리그의 시장은 커졌지만, 세계 야구의 큰 흐름 속에서 분명 한국 야구는 뒤처지고 있음을 확인한 2023 WBC였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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