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김미영 팀장' 있다면 필리핀 무역 사기 주범 '박동수 이사' 있다

장슬기 기자 2023. 3. 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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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유명 몰 입점 미끼로 수출거래 유도한 뒤 운임료만 갈취
거래과정서 무역 전문용어 확인하는 등 피해자 시선 다른곳 유도
범행수법 온라인서 수년간 공유됐지만 피해 사례 이어져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온라인몰에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는 A씨는 최근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IMCD CORPORATION'이라는 필리핀에 위치한 무역회사의 '박동수 이사'라면서 A씨가 다니는 회사의 물건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한국 회사의 물건을 필리핀에 있는 IMCD에서 수입해 필리핀 내에서 유명 쇼핑몰인 SM몰에 입점해준다는 내용이었다. SM몰은 한국의 E마트 같은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상 온라인쇼핑 업계에서는 자신의 상품을 유명 몰에 입점하게 하는 것이 큰 기회이기 때문에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실제 IMCD라는 곳을 검색해보면 영어로 된 회사 홈페이지가 등장한다. 이들은 무역허가증, 필리핀 사업자 등록증 등을 A씨에게 보냈다.

IMCD 박 이사는 수입을 FOB 조건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FOB(Free on board)는 매수인 즉 박 이사 쪽이 물건을 선박에 싣고 화물 인도를 마칠 때까지 모든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는 거래 방식이다. FOB라는 무역용어가 낯설 수밖에 없는 A씨는 해당 용어에 대해 검색해봤고 A씨 측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거래를 하기로 한 뒤, 박 이사는 '필리핀 세관이용' 문제를 근거로 FOB 조건이 아니라 CFR 방식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CFR(Cost and Freight)은 한국에서 필리핀까지 도착하는 운임을 수출자 즉 A씨 측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보통 한국인이 그렇듯, 필리핀의 세금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박 이사는 일단 A씨 측이 비용을 부담하면 바로 돌려주니까 FOB 방식과 사실상 다를 바 없었다.

박 이사는 자신들이 거래하는 물류업체가 있는데 거기 A씨 회사의 물건을 보내면 필리핀까지 운송을 처리해준다고 알려줬다. 국내배송으로 예를 들면 자신들이 거래해온 택배업체가 있으니 그 택배회사에 물건만 보내면 알아러 배송해준다는 뜻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씨는 무역업계에서 물류 업체를 수입업자가 지정하는 경우가 있는지 물었다. 그런 일이 관행적으로 있다는 답을 얻고 A씨는 '다들 이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

▲ A씨가 IMCD 박동수 이사를 사칭한 이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박 이사는 물류회사 정보라면서 케이원로직스틱스 김성근 과장이란 사람을 A씨에게 알려주면서 “필리핀 마닐라공항까지 항공운임 견적받으면 된다”고 했다. 케이원 측과 연락을 하면 A씨 측의 물건을 보내는데 필요항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고 그러면 박 이사 측(IMCD)에 물건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A씨는 박 이사에게 세금계산서를 발급해달라고 요구했다. 박 이사는 모든 절차가 다 완료되면 세급계산서를 발행해주겠다고 답했다. A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 분야에서 일해본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세금계산서를 미리 발행해주는 곳도 있지만 보통 일이 다 진행된 이후 발행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답을 얻었다.

박 이사는 자신이 SM몰 관계자를 곧 만나러 가는데 항공물류 예약 확정서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 예매권을 빨리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A씨는 물류업체인 케이원 측 김 과장에게 항공 예매권을 빨리 알아봐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원 김 과장은 항공물류 예약 확정서를 받으려면 먼저 운임비용을 입금해달라고 했다. 코로나 등을 이유로 입금이 안 되면 확정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케이원 측 사업자등록증을 국세청에 확인해봤는데 정상적인 사업자로 나왔기에 불안을 거두고 항공운임 300여만원을 입금했다. 케이원 측으로부터 항공예매권이 왔고 이를 IMCD 박 이사에게 전달했다. 이후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A씨는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케이원 김 과장에게 환불처리를 요청했지만 환불받을 수 없었다.

▲ A씨가 받은 케이원로지스틱스 사업자 등록증

A씨는 미디어오늘에 “은행과 경찰에 전화해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으니 송금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보이스피싱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은 범죄자에게 속아 피해자가 개인정보를 넘기고 이를 이용해 돈을 빼가는 수법인데 이런 범죄는 개인정보를 넘긴 것은 없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관계를 악용해 상대로 속여 금품을 갈취하는 사기 범죄다.

A씨는 “'필리핀 수출'이라고 포털에 검색해보면 '필리핀 수출 사기' 등의 게시물이 나오는데 수법이 똑같아서 '당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업자등록증도 짜깁기한 가짜 서류이고 IMCD나 케이원 모두 사칭이며 이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됐다.

▲ 피해업체 수출사는 A씨. 무역업체 수입사는 IMCD 박동수 이사, 물류 포워딩 업체는 케이원 김성근 과장인 셈이다. 사진=필리핀 수출 사기 피해사례를 다룬 블로그 글 갈무리

당장 수출계약을 진행하면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거래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고, 또 유명 몰에 입점한 상품이라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거래를 진행하는 와중에 큰 의심만 제거되면 믿고 거래할 수밖에 없다.

A씨 사례에서 보듯 실제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거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지만 무역거래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악용했기에 범행수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꿰지 않는 이상 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와 비슷하다.

유튜브나 네이버 등에 '필리핀 수출 사기' '필리핀 무역 사기' 등을 검색하면 같은 수법의 범죄를 다룬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A씨는 피해자들이 올린 게시글의 수법도 동일하고 수입사나 물류업체 상호명이 바뀌긴 하지만 A씨가 당한 피해사례와 같이 IMCD 박동수 이사를 사칭한 또 다른 피해사례도 있었다.

이들 일당은 주로 기본적인 녹음기능이 없는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일부 피해자들이 올린 게시글에는 녹취음성이 있는데 이를 들은 A씨는 “목소리가 똑같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피해사례가 공유되고 있지만 지난 2021년부터 똑같은 수법의 범죄가 계속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300여만원의 피해금액이 큰 돈이지만 사실 소규모 인력으로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범인을 잡으러 다닐 만큼 큰 금액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범죄자들이 이를 노렸을 가능성도 있다.

A씨는 “온라인 거래를 하는 회사들이 무역의 전문용어를 잘 모르고 이들이 무역업계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관행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며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잡히지 않고 돈을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크진 않지만 그럼에도 같은 피해사례가 계속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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