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수퍼볼?… 엄마들은 왜 ‘학부모총회’에 올인할까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3.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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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코로나 이후 첫 대면 개최
‘학총 룩’ 마케팅까지 등장

올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학부모 A씨는 “3월 셋째 주로 잡힌 ‘학부모총회’에 어떻게 하고 가야 할지 긴장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친한 언니가 ‘입학식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본게임은 학부모총회’라면서 ‘너무 튀지는 않지만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한다. 엄마들이 안 보는 척하면서 서로 전신 스캔한다’고 충고하더라고요. ‘엄마의 첫인상이 아이의 첫인상’이라며, 본인은 총회 한 달 전부터 피부과에 다녔고, 다이어트하는 엄마들도 있대요. 학부모총회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행사인가요?”

일러스트=유현호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3월 초 학부모총회 참석 여부를 묻는 가정 통지문을 받는다. 학부모총회는 학교 운영계획을 알고 담임교사를 만나는 공식 행사로, 대개 3월 중순 이후 열린다.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을 할 것인지, 1년 동안 어떤 행사가 계획돼 있는지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를 학부모에게 알려주는 자리다. 학부모 대표·부대표와 학교폭력위원회 임원을 선출하고 학교 운영위원회도 구성한다. 아버지들의 참석도 과거보다 많아졌다.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를 위해 주말에 열리는 경우도 늘었다.

강제성이 없는 행사이고, 참석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불이익이 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직장맘’들은 학부모총회에 꼭 참석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된다. 대부분의 ‘선배 맘’들은 “새 담임 선생님을 대면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인 데다, 한 해 운영과 학습 계획, 학교의 연간 행사 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니 월차를 내고서라도 참석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올해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주부 B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엄마들 모임이 결국 아이들 친구 관계로 이어진다”며 “입학식 때는 너무 어수선해서 다른 아이 엄마들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학부모총회에서 친해지고 싶은 엄마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워킹맘 C씨는 “학총에 불참하면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반차를 내고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는 언니 아들이 ‘나를 빼고 반 친구들이 축구팀을 만들었다’며 울었대요.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니 학총 때 만든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축구팀을 만들었대요. 제 아들도 축구 좋아하는데,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돼 직장 상사에게 눈치 보이지만 반차를 내기로 했죠.”

문제는 패션. 3월 초부터 지역 맘카페 게시판에는 “학부모총회인데 뭘 입고 가나 걱정”이라는 글이 속속 올라온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온라인이 아닌 대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옷차림에 더욱 신경 쓰인다는 학부모가 많다. 일명 ‘코로나 세대’로 올해 4학년이 된 자녀를 둔 학부모들까지 온라인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 대면으로 이뤄지는 학부모총회는 처음 경험하는 것.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학부모총회 룩(look)’ ‘학부모총회 패션’을 검색하면 ‘3월 학부모 총회 가셔야죠? 너무 예쁘셔요 소리 들으실 거예요’라며 옷 사진을 올리는 인터넷 판매업자가 수두룩하고,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교사들 계정에는 “적절한 학부모총회 옷차림을 알려달라’는 질문이 줄지어 달린다.

어느 정도가 ‘학부모총회 룩’의 적정 수준인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주부 D씨는 “다들 편안한 차림으로 온다. 나는 청바지 입고 가는데 옷차림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반면, 직장맘 E씨는 “청바지는 좀 아닌 것 같다. 본인 자신은 모르겠지만 보기 별로 안 좋더라. 내 경우 세미 정장은 항상 갖춰 입고 머리는 미장원 가서 꼭 하고 갔다”고 했다. 또 다른 직장맘 F씨가 “정장까지는 예의를 차렸구나 하겠는데 미장원까지는 좀…”이라며 의아해하자, 주부 G씨는 “미용실 가면 안 되나?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머리가 부스스하면 정말 눈총 주고 싶더라”고 맞섰다.

의견이 갈렸지만, 학부모들은 ‘너무 튀지는 않으면서 고급스럽게’, 이른바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 꾸민)’가 가장 이상적인 학부모총회 룩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주부 H씨는 “학부모총회에 뭘 입고 가느냐는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고 했다. “입학식 날 계단을 올라가는데 위에 있던 엄마가 힐끗 제 가방을 쳐다보더군요. 로고 장식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누군가 봤을 때 ‘오!’ 하고 감탄할 정도의 가방은 메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등생 자녀를 둔 한 패션스타일리스트는 “메이크업은 한 듯 안 한 듯 내추럴하게, 옷차림은 심플하고 단정하게, 신발은 검정이나 누드톤 플랫슈즈나 펌프스힐 등 미니멀하게 마무리하는 걸 추천한다”며 “학부형 연예인들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고 했다. 정혜영, 이요원, 김희선, 정시아, 김지우 등은 ‘꾸안꾸 스타일의 정석’으로 벤치마킹되는 엄마 연예인들. 반면 2019년 소매끝을 접어 올린 큼지막한 회색 재킷과 통 넓은 바지를 입고 검정 핸드백에 어글리 슈즈를 신고 학부모총회에 나타난 고소영을 두고는 “학총 룩으로선 완전 투머치(too much)”와 “요즘 30대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란 의견으로 갈렸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패션뿐 아니라 피부에 신경 쓰는 학부모도 상당수다. 올해 45세인 I씨는 “늦둥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에 가보니 엄마들 나이가 훨씬 어려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명품 백 들어도 늙어 보이면 뭐 하나. 학총 앞두고 다른 엄마들 모르게 피부과에 다닌다”고 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학부모 옷차림에 대한 암묵적인 룰이 있다. 감청(네이비블루) 색상 의상만을 입을 것! 검정도 안 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의상용이기 때문이다. 가방, 보조가방, 신발도 모두 감청색을 권장한다. 학교 방문 시 입을 옷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있다. 일본에서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냈던 J씨는 “누구 누군지 알 수 없는, 편견이나 차별 없이 모든 학부모를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취지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총회 참석률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떨어지지만 중·고등학교까지 참석하는 학부모도 있다. 두 자녀를 모두 대학에 진학시킨 한 50대 여성은 “학교 분위기도 파악하고 진학 상담도 할 겸 학부모총회엔 반드시 참석했다”고 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애가 최고더라고요. 1등 하는 아이와 그 애 엄마한테 최고 관심이 쏠리죠. 옷, 신발 다 의미 없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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