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사람의 마음은 늘 서성이는 게 아닐까요?

한겨레 2023. 3. 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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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 │ 서성이다

골목책방 서성이다 외부 모습.

“왜 책방 이름이 ‘서성이다’에요?” “박노해 시인과는 어떤 인연이 있어요?”

책방을 처음 찾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질문이다. 동네책방은 쉼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누구나 길을 서성이다가 훅 문을 열고 들어와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하고 물을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편안하게 만나고 정답게 인사 나놀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서 강압적이지 않고 편하게 들리는, 밖에서 서성이다 맘 내키면 들어와 쉴 수 있는 곳이었음 해서 그렇게 책방 이름을 지었다. 순천시 ‘문화의 거리’는 수많은 공방과 갤러리, 다양한 예술활동, 카페와 맛집을 품고 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겨우내 얼었던 날이 풀리면 다양한 문화제와 마을 행사가 수시로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그래도 여전히 책방의 팬들은 문화의 거리에 서성이다가 없으면 문화의 거리가 아니란다.

2018년 10월9일, 책방 열기에 딱 좋은 날이어서 글을 모시는 한글날 문화의 거리 골목 안쪽에 책방 문을 열었다. 성호씨와 로운씨가 운영하던 ‘그냥과보통’이 책방의 전신이다. 좋은 인연으로 책방을 인계받고 그 자리에서 1년 6개월을 보내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 3년을 보내고 있다. 길을 서성이는 따뜻한 마음들을 불러들이며 다섯 살이 되어가고 있다. 책방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다. 전자책과 수많은 인터넷 플랫폼 속에서 책방이라니. 그것도 11평도 안 되는 공간에. 지인들은 걱정부터 했고, 그 걱정은 5년째 유효하다. 여전히 아침 11시면 문을 열고 책방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서성거리다 문을 열고 들어올지 궁금하다.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용감하게 잘 운영하고 있다.

책방은 책이 개인의 서가를 넘어 타인과 사회로 확장되는 공간이다. 책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공간이 바로 책방이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11평의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인문학콘서트, 달영화제, 페미니즘 북클럽, 고전북클럽, 소설북클럽, 북토크, 심야책방, 시낭독회 등으로 책방의 독자들과 끊임없는 수다를 생산해 내고 있다. 특히 지역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5·18재단과 함께하는 오월학교, 오월 엽서만들기,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달영화제, 지역잡지인 <전라도닷컴> 읽기 모임 등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책방과 독자, 지역민이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그 걸음이 비록 한걸음일지도 모든이의 한걸음은 지역의 변화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골목책방 서성이다의 팻말.
골목책방 서성이다 내부 모습.
골목책방 서성이다 내부 모습.
골목책방 서성이다 행사 모습.
골목책방 서성이다 행사 모습.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서성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려 노란의자와 빨간 우체통이 놓인 곳을 바라보면 그곳에 서성이다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그곳을 지키는 책방지기를 만날 수 있다. 그 순간 당신은 책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로 편입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책방의 공간이 당신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서성이다 책방은 손이다. 함께 내밀어 주는 손, 애썼다 다독여 주는 손, 충분하다 쓰다듬어 주는 손, 언제든 반갑게 환대해 주며 맞잡아 주는 손.” “서성이다 책방은 나에게 삶의 좌표다. 책을 통해 책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좌표.” “책방 하나 만났을 뿐인데 삶이 전환됐어요.”

서성이다 들어선 책방에 남겨진 글들이다. 그동안의 작당모의가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병률·허연·김이듬 시인과의 인연, 김탁환 작가, 이상우 한의사, 이해모 공익활동가, 정혜윤 피디, 박정미 작가와의 인연 등 수많은 인연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책방에서 책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 생각이 확장되고 변화된 생각이 각자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책방이 하나의 틈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바람의 세기에 따라 소리의 빛깔이 달라지는 풍경소리가 들린다. 길을 가다 그 소리에 멈칫하며 고개들 돌려 책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문 앞을 서성일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오늘 날씨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고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책 한권을 집어 들고 여리고, 혹은 소란한 마음으로 변화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책방의 고군분투는 유효하다.

순천/글·사진 조태양 서성이다 대표

서성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길 15(행동)
instagram.com/walking_with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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