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기자 초강수] 귀신보다 무서운 명지산 오르막

조경훈 2023. 3. 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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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당일치기 연인-명지산 연계 산행 16km
산장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건드려보는 성예진·조수연씨.

달력은 입춘이 지났다지만 산 위엔 아직도 눈이 가득하다. 2월엔 꽃보다는 눈이 더 흔하다. 꽃 산행은 다음달을 기약한다. 이왕이면 덕유산처럼 멋진 상고대가 피었으면 좋을 텐데….

기존 '초보기자의 초강수' 코너는 개척 산행기를 다뤘다. 누군가의 기록이 없는 오지 산으로 떠나 지도와 등고선만 보고 오르는 산행. 내겐 무리다. 선배들에 비하면 내 등산 지식은 새 발의 피다. 하지만 내겐 튼튼한 두 다리와 쓸 만한 체력이 있다. 몸으로 고생하는 건 자신 있다.

지도를 켜 이번 산행지를 탐색한다. 조건은 두 가지 첫째, 높이 1,000m 이상의 산일 것. 둘째, 운행거리 15km 이상일 것. 서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평에 적당한 곳이 보인다. 연인-명지산 연계산행. 이번엔 여기다.

산행 전날 청량리에서 성예진·조수연씨를 만나 가평으로 향한다. 땅거미가 깔린 국도는 어색하기만 하다. 두 시간 가까이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액셀을 밟는다. 편의점에 들러 내일 먹을 음식을 산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 일출을 보기 위해선 새벽부터 산에 올라야 한다.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힘차게 오르고 있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눈을 뜬다. 어젯밤 예보는 흐리다고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가 보니 반짝이는 하늘은 짙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오늘 일출 보기는 글렀군.'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고 연인산으로 향한다.

연인산 제1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공간도 넉넉하고 화장실도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곳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웃옷을 입고 헤드랜턴을 켠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며 들머리로 향한다.

캄캄한 어둠 속 랜턴에 비친 눈이 하얗게 빛난다. 초입부터 눈이 덮여 있다. 미끄럽지 않아 아이젠 없이 올라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잣나무 군락을 지난다. 기분 탓일까? 거목들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으스스하군.' 무서운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겨울이라 텅 빈, 어둠이라 적막한 소망 철쭉터널을 지나 동굴로 향한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만 허풍처럼 작다.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간다. 자그마한 역고드름은 도저히 이무기와 용이 연상되지 않는다.

'용의 흔적을 믿은 내가 바보지…'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연인산장 전경.
연인산장 내부는 무인산장임에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인적 드문 산장의 수상한 사람

지평선 너머 해가 뜬 지 한 시간이 지날 때쯤, 몇 그루의 구상나무를 지나 정상에 도착한다. 잘생긴 정상석과 깔끔한 나무 데크가 우리를 맞이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연인산장. 곧바로 발길을 돌려 정상 아래 아홉마지기로 향한다.

겨울의 연인산장은 왠지 쓸쓸해 보인다. 떠나기 전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인산에서 백패킹 하는데 귀신을 봤어… 아재비고개가 왜 아재비고개인지 아니?… 귀목고개에는 대낮에도 귀신이 보인대…."

제길! 나는 정말 무서움이 많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산장의 문을 연다. 그 순간! 누군가가 안에서 튀어 나왔다! 고라니 같은 비명소리가 사방에 퍼진다. "으아악!!!"

"아이고 깜짝이야! 나는 짐승인 줄 알았네."

"선생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귀신인 줄 알았어요.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근데 여기 산장은 많이들 모르는데 젊은 친구가 특이하네요."

"하하. 인터넷을 뒤져보니 특이해 보여서 왔어요."

산장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산장을 찾는다고 한다.

"쓸쓸한 산장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어요. 사람 발길이 끊기면 금방 망가져요. 저라도 돌봐야죠."

며칠 전 내린 눈이 나뭇가지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산장을 떠나 명지산으로 향한다. 산장 앞 물푸레나무가 인사를 건네고 눈 덮인 나뭇가지가 터널을 만들고 있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태양빛에 눈이 녹아내린다. "푸드덕…" 두툼한 눈은 어느새 물이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연인산 정상에서 아재비고개로 향하는 길은 완만하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길을 헤맬 일도 없다. 지난번 덕태산에 비하면 선녀다. 이런 겨울산이라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는 말을 삼킨다. 편하다고 하면 매번 난코스가 나타나 괴롭혔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호젓한 내리막을 지나니 아재비고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테이블에 앉아 웃옷을 입고 빵을 먹으며 생각한다.

연인-명지산을 등산하다 보면 거대하고 특이한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정말 여기서 굶주린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먹고 미쳐버렸을까?'

찬기가 느껴지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옛날에 선생님이 옆에 귀신이 있으면 닭살이 돋는다고 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허겁지겁 빵을 우겨넣고 짐을 챙겨 떠난다.

빈 나뭇가지에 겨우살이가 매달려 있다. 고개를 살짝 내린다. 어라? 나무줄기가 아닌 가파른 경사가 시야를 가린다. 아뿔사! 드디어 명지산 세 봉우리로 향하는 악명 높은 오르막길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쉽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투에 임하는 장수가 되어 장비를 정비한다.

길을 막고 있는 쓰러진 나무를 넘어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오르막

명지 3봉까지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나마 누군가가 다져놓은 눈길과 낡은 계단이 위로가 된다. 마른침과 함께 숨을 삼킨다. 세 사람의 헐떡이는 소리만 들린다.

"힘들면 좀 쉬어갈까요?"

"괜찮아요~ 봉우리에 올라서 쉬죠."

돌아온 대답은 NO. 하긴 백두대간, 불수사도북, 한북정맥 등 훨씬 더 힘든 곳을 다녀온 그녀들에게 이까짓 언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힘든 건 나뿐이었다. 살얼음이 낀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단전에서부터 온 힘을 끌어낸다.

명지 3봉에서는 연인산 능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명지 3봉에 오르니 오른편으로 아름다운 연인산의 능선이 보인다. 오전과 달리 하늘도 쾌청하다. 절반 이상 왔다. 명지 2봉을 지나 1봉에 가기만 하면 남은 건 내리막뿐이다.

명지산은 밀당의 귀재다. 서희와 담판을 지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기세다. 그렇게 진을 빼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한 능선길을 내어준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상고대 못지않게 아름답다. 신기한 모양의 나무들도 가득하다.

"이 나무에는 혹이 있네요. 왜 그런지 아시나요?"

"누군가는 인간의 딱지처럼 상처를 낫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경훈씨는 아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혹시 아실까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찾아보니 나무에 병이 나면 혹이 생기는데, 혹이 난 부분은 단단하고 특이한 문양을 가져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처음 듣는 나무 혹 이야기에 금세 매료됐다.

입춘이 지났지만 산은 아직도 하얀 눈으로 가득하다.

특이한 나무, 얼어붙은 폭포

그러고 보니 오면서도 특이한 나무를 많이 봤다. ㄴ자 모양으로 줄기를 뻗은 나무, 춤을 추듯 꼬여 있는 나무도 있었다. 산의 특별한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귀신이 들려서 그런 걸까?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 무성한 추측만 늘어놓을 뿐이다.

명지 2봉에 도착한다. 양옆의 높은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명지 1봉을 본다. 생각보다 멀게 느껴져 당황스럽다. 그때 수연씨가 어깨를 두드리며 약과를 나눠준다.

"멀어 보여도 금방 가요~ 여름엔 잡목과 해충이 많아 힘들었는데, 겨울이라 길도 잘 보이고 벌레도 없어 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더 힘냅시다!"

혹시 투시법 능력자이신가?! 걱정스러운 마음은 물 맞은 촛불처럼 사그라진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오다 몇 번을 넘어졌다. 예진씨는 이런 나를 보고 웃는다. 낮아진 시야에 그녀의 신발이 보인다. 어라?! 아이젠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예진님! 어떻게 아이젠도 없이 다니시는 거예요?"

"서울과 제주도에서 5년 정도 산악구조대로 활동했어요. 구조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아이젠 없이 산행하는 거예요.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아이젠 끼고 걷는 거랑은 전혀 다른 감각이 필요해요. 반복과 숙달. 조금만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물론 힘든 곳에서는 저도 아이젠을 낍니다."

예진씨는 눈 쌓인 바위에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놀라운 스킬이다. 산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 보니 어느덧 명지 1봉이다. 분명 여기가 정상인데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요! 여기!"

뒤편의 바위에 올라간 수연씨가 정상석을 발견했다며 소리친다. 그녀 덕분에 힘을 아낀다. 명지 1봉 정상석은 연인산 정상석에 비해 아담하다. 다윗과 골리앗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정상석에 마음이 간다. 오래된 친구 같은 익숙함을 느낀다.

아까부터 울리던 배꼽시계를 빵으로 잠재우고 하산한다. 완만한 능선길은 이윽고 너덜길로 변한다. 지칠 대로 지친 두 다리는 지진이 난 것처럼 덜덜 떨린다. 무릎에 손을 대니 한결 편하다.

"저 다리 뭐지?"

꽁꽁 언 명지폭포의 모습. 녹음 짙은 여름 명지폭포를 상상하게 한다.

새로 지은 듯한 다리가 시야에 든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공사 중이다. 다리 옆의 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간다. 바위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니 얼어붙은 명지폭포가 보인다. "빠드득!"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바위 위로 뛰어오른다.

"경훈씨 이제 그만 가요."

예진씨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은 명지산에서 귀신에 홀린다던데, 나는 폭포에 홀렸다. 얼음 밑으로 쏟아지는 경쾌한 물소리. 푸른 녹음 아래 시원한 계곡물을 토해내는 여름의 명지폭포를 상상한다.

길가에 놓인 작은 눈사람과 승천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지친 몸을 택시에 욱여넣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본다. 따뜻한 히터 바람에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진다.

"저녁으론 시원한 막걸리와 닭갈비가 좋겠군…."

혼잣말을 삼키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산행길잡이

연인-명지 연계산행은 백둔리에서 출발해 익근리로 내려오거나 그 역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터넷 지도에 표시된 명지 2봉에서 백둔봉을 거쳐 백둔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길은 등로가 희미하고 위험해 추천하지 않는다.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초반 코스는 경사로 시작해 경사로 끝난다.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헤맬 염려는 없으나 분기점마다 이정표를 잘 봐두면 좋다. 연인산장에 가기 위해선 능선에서 벗어나 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연인산과 명지산 중간에 아재비고개가 있다. 체력이 부족하다면 아재비고개에서 백둔리로 하산해도 좋다.

명지 3봉부터 명지 1봉까지는 낙타등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명지 1봉에서는 명지계곡이나 사향봉을 통해 익근리로 하산한다. 명지폭포-익근리 구간은 임도길이라 편하다. 현재 명지계곡 데크길이 공사 중이다. 2023년 상반기 중으로 준공될 예정이다. 겨울은 눈발자국 덕분에 길찾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여름엔 잡목과 풀 때문에 길 잃을 확률이 높다. GPX 트랙 파일을 참고해 산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교통

자차를 이용해 백둔리 혹은 익근리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대중교통의 경우 경춘선 가평역에서 하차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가평역에서 백둔리행 버스는 1일 3회(6:50, 10:20, 17:00) 운행한다. 가평역에서 익근리행 버스는 1일 3회(6:15, 11:50, 17:05) 운행한다. 익근리에서 백둔리까지 복귀할 때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택시비는 2만4,000원 정도다. 가평콜택시 031-581-1882, 031-582-3141. 2대의 차를 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숙식 (지역번호 031)

백둔리 마을에는 펜션을 비롯한 숙박 시설이 여러 곳 있다. 솔낭구펜션(010-2250-6833), 노팅힐 계곡애견펜션(010-6436-2339), 탑클라우드 스파펜션(070-4376-6421)

하산 후 익근리 주차장에 위치한 명지산아래촌 (582-0506)에서 식사할 수 있다. 차를 끌고 목동시외버스터미널로 나오면 선택지가 더 넓어진다. 골짜구니엄낭구(010-3557-0264), 화악리닭갈비막국수(582-5507) 등이 있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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