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과 위엄 당당… 조선백자에 투영된 ‘군자의 기개’

김신성 2023. 3.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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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展
국보·보물 등 185점 한자리
가벽 없앤 전시장 백자 매력 발산
유리 쇼케이스 통해 다각도 감상
리움 DID 영상물 감상 재미 배가
시대별 형태·의미 오롯이
궁중 화원 솜씨 보여준 ‘매죽문 호’
조선도자사연구 표준작 ‘송죽문 호’
‘달항아리’선 고결한 인품 느껴져
‘군자는 자기수양을 지극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자기수양 후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굳세지만, 소인은 궁하면 멋대로 군다.’ ‘군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행하고, 그 후에는 자신이 행함에 따라 말하느니라.’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성인군자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있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단번에 압도되고 만다. 관람객들은 경외로운 광경에 스스로 몸가짐을 살피며 전대미문의 전시와 마주한다.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 모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59점(국보 18점, 보물 41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 소재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한 총 185점을 만날 수 있다. 교과서나 각종 자료집에서 보던 작품들을 가까이서 맨눈으로 보는 것이다. 일본 소재 수준급이란 해외에 소장되어 있어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수 없었을 뿐, 국보급이란 말이다.

전시는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하여 소개하면서도 그 안에 투영된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사람들이 유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이상적인 인간상’ 군자를 닮는 것이었다. 매일 독서와 마음을 닦는 수양은 개인의 정신을 넘어 조선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되었고, 이는 백자에 그대로 투영됐다. ‘청화백자’에서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를, ‘철화·동화백자’에서는 곤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굳센 마음을, ‘순백자’에서는 바름과 선함을 찾는 등 조선백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한다.
백자청화 매죽문 호. 조선 초기 청화백자 가운데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최고의 명품. 페르시아산 청화안료는 무척 비쌌기 때문에 왕실용 백자에만 사용하도록 규제했다. 명 초기의 청화백자 제작기술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조선백자의 과정을 보여주는 예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리움미술관 제공
고갱이만 추려놓은 1부 전시장의 경우 관람객들이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가벽을 모두 없앴다.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 속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작품을 고정하는 지지대도 간소화해 가려지는 부분이 거의 없다.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 설치된 영상물(리움 DID)은 한눈에 보기 어려운 백자의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평면으로 펼쳐 보여 감상의 재미를 배가한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절정, 조선백자’라는 주제를 내건 1부는 명품 왕중왕 42점을 한 공간에 모아 놓았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는 궁중 화원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최고의 명품이다. 매화와 대나무의 활달한 표현뿐 아니라 상부와 하부의 꽃잎과 같은 보조문양, 단정한 형태와 깨끗한 흰 바탕이 조화를 이룬다.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
고려의 매병에서 조선의 호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국보)는 1489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시기가 표기되어 있어 조선 전기 도자사 연구의 표준이 되는 작품이다.
‘백자철화 포도문 호’(국보)는 특유의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으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포도와 포도잎에 응축된 색은 사대부가 즐기던 수묵화를 연상시켜 그 격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선 중기 철화백자가 가진 풍성한 매력을 잘 보여준다.
백자철화 포도문 호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은 조선백자에 쓰였던 모든 안료가 사용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양각 기법을 이용하여 도드라진 문양들 위에 청화(산화코발트가 섞인 푸른색 안료), 철화(산화철이 섞인 붉은색 안료), 동화(산화동이 섞인 갈색 안료) 등을 곁들여 채색 장식한 백자로 학술적 가치도 높다. 한 기물에 세 안료를 쓴 예는 극히 드물다. 이 안료들은 각기 성질이 달라 가마 환경 영향을 크게 받는 등 제작 과정에서 몹시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당시 도자 장식 기법 중 가장 고난도 기술이 적용된 셈이다.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
백자 개호
‘백자 개호’(국보)는 고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한 성리학자들의 안목에 어울리는 엄정한 기품이 서려 있다. 조선 전기 새 왕조의 활기찬 기풍을 반영하듯 기운 넘치고 당당한 자태를 자랑한다.
18세기를 대표하는 ‘백자 달항아리’(보물)는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듯 티 없이 깨끗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백자 달항아리
2부 ‘청화백자’는 하얀 바탕에 푸른색 안료로 장식한 문양의 변화를 통해 위엄과 품격, 그리고 새로운 영향에 의해 변모해가는 혁신을 보여준다. 높이 60㎝가 넘는 크기로 용이 그려진 항아리 중 가장 큰 ‘백자청화 운룡문 호’, 상상의 꽃인 보상화를 백자의 형태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한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 소나무와 매화의 세부 표현과 안료의 농담 활용이 뛰어난 ‘백자청화 송매문 호’ 등을 소개한다.
청화 바탕에 동 안료를 더한 ‘백자청화동채 모란문 호’는 화려함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모습이고, 민화의 대표 소재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백자청화 송하호작문 호’, 각진 병을 차례로 포갠 듯 특이한 형태의 ‘백자청화 서수문 각병’ 등은 새로운 문양 소재와 형태가 도입되던 당시의 변화를 알린다.
백자청화 운룡문 호
3부 ‘철화·동화백자’에서는 조선 중기 일본, 중국과의 큰 전란 탓에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등장한 철화백자 특유의 강렬함과 변화무쌍한 색 변화를 다룬다. 힘찬 용과 박력 있는 구름이 인상적인 ‘백자철화 운룡문 호’, 꽃 모양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리고 뒷면에 가지와 너른 잎들을 여백을 두고 묘사한 ‘백자철화 초화문 호’ 등은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품격을 드러내 보인다.
4부 ‘순백자’는 흰 눈같이 맑고 청명하다가 우윳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색을 띠는 등 순백자의 고요하게 응축된 색을 들여다보는 코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호’는 눈처럼 흰 빛깔로 단정하고 산뜻한 순백을 보여준다. 후기의 ‘백자양각 연판문 병’은 몸체를 깎아 표현한 3중의 연꽃 잎과 음각선으로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잎맥이 청초한 색과 하나가 된다.
백자철화 초화문 호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조선백자의 최고 명품부터 수수한 서민의 그릇까지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며 “백자의 진정한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해 놓았다”고 밝혔다.

전시장을 돌아보고 나면 마치 수백 년쯤 거뜬히 살 것만 같은 힘을 얻는다.

5월 28일까지 서울 이태원 리움미술관에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관람 2주 전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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