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박승민 스탠퍼드대 비뇨기의학과 박사] “대소변 보면 건강한지 안다…스마트 변기 상용화 추진”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3. 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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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박사. 사진 박승민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는 부자들이 나중에 병에 걸리면 장기를 교체하려고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키우는 모습을 그렸다. 복제 인간이 건강해야 교체할 장기도 제공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복제 인간이 볼일을 보면 바로 ‘나트륨 과다 섭취’ ‘영양분 조절 권장’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변기가 복제 인간의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자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에서 강사로 있는 박승민 박사다. 그는 2월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스마트 변기(smart toilet)’의 가능성과 해결 과제를 제시한 논평 논문을 발표했다. 박 박사는 인터뷰에서 “스마트 변기로 대소변 영상을 분석하면 변비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장 질환은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마트 변기는 어떻게 작동하나.
“2020년 발표한 스마트 변기는 대소변 사진을 찍어 1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이 정보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에 저장된다. 소변에 피가 섞인 위급 상황이면 바로 의료진에게 통보할 수도 있다. 12명을 대상으로 소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 효능을 확인했다.”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폰도 맥박이나 체온을 잴 수 있는데.
“나도 스마트 워치가 있지만 늘 갖고 다니지 않고 기능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화장실은 매일 쓸 수밖에 없다. 그냥 볼일만 보면 알아서 건강 정보를 파악해주니 더 편리하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대소변 상태를 말해도 되지 않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볼일을 봤는지, 상태가 어땠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소변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스스로 기억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변기는 사용자 대신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스마트 변기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했나.
“지난해 스마트 변기로 무증상 감염자를 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를 추적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극미량의 대변을 채취해 변기에 내장된 진단 키트로 바이러스 유무를 판정하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시청, 군대의 공중화장실에 설치하면 코로나19 감염자를 추적할 수 있다.”

우주에도 스마트 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2021년에 미 나사(NASA·항공우주국)와 심우주에서도 스마트 변기가 필요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화성에 가서 1년 반 있다가 지구로 오면 900일 이상 우주에 머무는 셈이 된다. 우주에는 인체에 해로운 방사선이 쏟아지고 중력도 거의 작용하지 않아 뼈와 근육이 손상된다. 스마트 변기는 우주인의 건강 상태를 미리 점검해 병에 걸리지 않게 도울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도움 되나.
“우리 몸에 사는 세균이 인체 세포 수보다 더 많다. 특히 장내 세균은 소화기 질환은 물론, 관절염·비만·위염과 뇌 질환까지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앞으로 스마트 변기는 대변 속의 세균까지 분석해 건강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아낼 것이다.”

기술이 거의 다 완성됐는데,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지 않나.
“이번 ‘사이언스 중개의학’ 논문에서 스마트 변기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가장 큰 난관은 문화적 거부감이다. 의사 출신이 아닌 교수와 함께 연구한 적이 있는데, 대변 사진을 넣어 보고서를 냈더니 노발대발하더라.”

병을 예방하는 기술인데 왜 그리 싫어하나.
“공중화장실에 스마트 변기를 설치하자고 했더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은밀한 개인 공간이 감시당한다는 것이다. 스마트 워치가 감시용인가. 스마트 변기의 카메라는 대소변 사진만 찍지 다른 곳은 절대 찍을 수 없다.”

그 점에서 한국이 상용화에 더 나은 조건으로 보인다.
“비데 보급률만 봐도 그렇다. 일본이 80%, 한국이 60%인데 미국은 3%에 불과하다. 그러니 미국에서 스마트 변기를 보급하기가 더 어렵다. 현재 한국 비데 업체와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처음엔 대소변 사진으로 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가전제품으로 상용화하고, 나중에 극미량의 대변 시료까지 분석해 장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까지 알아내는 의료 기기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국내 병원과도 협력하고 있나.
“2017년 스탠퍼드대 의대에 방문교수로 온 가톨릭의대 원대연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 교수 전공이 대장항문외과다. 지금은 서울송도병원에서 우리와 협력하고 있다.”

원래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의대로 갔나.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2002년 코넬대로 유학하러 갔다. 박사학위는 미세유체 연구로 받았다. 임신 진단 키트나 코로나19 진단 키트에 소변이나 타액을 조금 떨어뜨리면 위로 빨려가면서 색이 변하는 것이 미세유체 원리다. 자연스럽게 의학 연구로 길을 잡았다.”

스마트 변기는 언제부터 연구한 것인가.
“2013년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의 산지브 샘 감비어 교수 연구실에 방문연구자로 갔다가 이듬해 강사로 자리 잡았다.

감비어 교수는 평생 ‘정밀 건강(precision health)’을 주장한 과학자다. 그는 ‘비행기 제트엔진에 감시센서 수백 개를 달아 엔진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고장을 예방하듯, 의료에도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 변기는 정밀 건강의 핵심 도구다.”

스탠퍼드대의 분위기가 스마트 변기 연구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스탠퍼드대에는 ‘미친 짓을 해봐라’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 미친 생각 같아도 그런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국도 미친 아이디어를 계속 내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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