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칼 갈아봐" 한 마디에 53년 세월… '장인'이 되기까지
14살 때부터 일 시작… 53년째 평생직업
칼을 척 보면 고객의 성격 습관까지 알아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게 숨가쁘게 빨리 돌아가는 21세기에 옛기술을 가진 '장이'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기술과 솜씨를 배우기도 힘들거니와 전통방식의 수작업으로 질 놓은 상품을 만들어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물건과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전만배(67).
도심에서 좀 떨어진 대전시 서구 용계동의 한밭대장간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온갖 칼을 만들고 다듬고 벼리는 곳이다. 그는 대한민국 '칼갈이'의 최고 장인이다.
"대장간에 칼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함마, 연마, 대장 3분야 전문가가 따로 없다. 요즘 대장장이는 이 모든 일(공정)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함마(해머 hammer)'는 쇠붙이를 두드려 연장의 형태를 만드는 일을, '연마'는 칼을 갈아 쓰기 좋게 만드는 일, '대장'은 이런 과정을 모두 총괄하는 분야를 말한다.
◇자타가 인정하는 칼갈이 최고 전문가=전만배 장인은 대장장이 중에 자타가 인정하는 '칼갈이' 전문가이다. 전국의 횟집, 고깃집, 도축장 등에서 칼을 갈러 그의 공장을 찾아온다. 칼이 잘 들고 손에 잘 맞아야 일을 쉽게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하던 날 마침 대전에서 큰 횟집을 하는 고객이 여러 자루의 칼과 가위를 갖고 찾아왔다. 그 고객은 "사시미칼(생선회칼)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을 찾기 마련이다. 고객의 손에 딱 맞게 칼을 갈아준다."며 "회를 잘 떠야 맛이 나는 데 전 장인이 갈아준 칼로 회를 떠보면 확실히 더 맛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 장인의 실력 덕분에 한밭대장간은 전국적으로 날리 알려졌다. 대전이나 청주, 천안, 청주, 군산을 물론 부산과 광주, 인천에서도 칼을 갈러 온다. 택배로 칼을 보내오기도 하지만 직접 갖고 오는 손님이 더 많다. 현장에서 장인에게 직접 이야기하며 다듬고, 고치고, 잘라내고, 연마하는 게 정확하기 때문이다.
"14살 때 서울 마장동에서 대장간을 하던 아버지가 '칼 좀 한번 갈아봐라'고 해서 처음 칼을 갈았다. 올해 67살이니까 53년 3개월 대장장이 일을 해온 셈이다."
전 장인은 4대를 이어 100년 넘게 대장간을 운영하는 대장장이 집안이다. 할아버지 전종식이 1916년 부여군 세도면에서 처음 대장간을 시작했고, 아버지에 이어 자신이, 그리고 아들인 전종렬까지 4대째 대장간을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 장인의 아버지는 고향(태어난 곳은 충남 논산)을 떠나 경상도와 경기도 등 전국을 돌며 대장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서울 마장동에서 대장간을 운영할 때 칼 만들기와 칼 가는 기술을 익혔다. 워낙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있어 금세 어른들을 따라 잡았다. 너무 일을 잘해서 중학교에 가는 것도 그만뒀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전 장인은 한동안 꽤 많은 돌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시장 개방과 현대식 공장의 대량생산 체제에 밀려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장에서는 기계를 돌려 칼이나 호미, 괭이, 낫 등을 산더미처럼 찍어냈고,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상품 가격이 30%, 나중에는 10%, 5% 이하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인력들이 다 빠져나갔다. 공사판에서 철근 일을 해도 훨씬 벌이가 나았으니까…."
◇53년째 대장장이… 전국에서 고객 찾아와=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전국의 대장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나둘 문을 닫았고, 남아있는 대장간마저 겨우 한 두 명이 일하는, 영세한 공장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칼 가는 일을 시작했다. 일식집이나 한식집, 중국집, 고깃집 어디서나 칼은 사용하지 않는가? 요리사는 칼이 제일 중요한데, 요리사에게 딱 맞고 잘 드는 칼을 만들고 갈아주면 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칼을 가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50년 넘게 공부하며 일을 해온 전 장인은 칼을 자유자재로 다듬고 벼리고 수리도 해준다. 칼을 사용하는 직종과 고기 및 생선의 종류, 더 나아가 칼을 사용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칼의 모양과 날을 잡아준다. 말 그대로 맞춤형 칼갈이를 해주는 것이다.
"도축장이나 정육점의 칼은 고기를 자르거나 뼈를 가르고 기름기를 제거하는 칼, 포를 뜨는 칼 등 매우 다양하다. 일식집의 생선회칼도 회를 뜨고 다지고 자르는 칼이 다르다. 요리사의 습관이나 일하는 방식에 따라 칼의 모양과 두께, 길이가 제각각이다. 어떤 요리사는 칼이 두꺼운 것을, 어떤 사람은 얇은 것을 선호한다."
전 장인의 실력은 이처럼 다양한 요구에 딱 맞춰 맞춤형 칼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유명한 셰프나 일식집 요리사가 직접 칼을 들고 찾아오는 경우가 줄을 잇는다.
칼의 모양새와 사용한 흔적을 보면 성격과 습관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의 칼은 이빨이 빠진 경우가 많고, 느긋한 사람은 칼을 너무 오래 사용하여 날이 무디다고 한다. 차분한 사람의 칼은 날이 거의 그대로이고 손볼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우리처럼 칼을 갈아주는 전문가가 없다. 문화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명한 쌍둥이 칼(헨켈)이나 드라이작(우스토프), 미국의 컷코 등 유명 브랜드 칼이 있지만 간단한 설명과 함께 파는데 그치고 있다. 칼은 잘 만들지만 정육점이나 일식집, 음식점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갈아주고 관리해주는 문화가 없다. 우리나라는 고기나 생선을 도마에 놓고 '썰고' '다지는' 게 많아 칼날이 쉽게 무뎌지지만, 유럽은 갈고리에 고기를 꿰어 걸어놓고 '잘라내는' 경우가 많아 칼날이 오래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숫돌에 꼼꼼하게 칼을 갈아 사용했지만, 유럽은 간단하게 칼을 연마봉(야스리)에 벼리어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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