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권력 사유화” 윤 대통령 문 정부 비판, 이제 자신을 겨눈다

성한용 2023. 3.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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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70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 평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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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 년이
너와 만든 기념일마다 슬픔은 나를 찾아와.”

바비킴의 ‘일 년을 하루같이’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일 년을 하루같이 아무것도 못 하고 너만 생각하고 있잖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들은 희망의 1년을 보냈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찍지 않은 유권자들은 절망의 1년을 보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행복해하거나 너무 불행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잘 뽑는 게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우리 개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대통령 잘 뽑기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어쩌다 대통령’의 1년

오늘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 1년을 평가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래야 남은 4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흐릿하게나마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개적인 멘토라고 할 만한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대선 뒤 3월22일치 신문에 “‘어쩌다’ 대통령 된 윤석열, 잃을 게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하지만 윤 당선인에게도 ‘무기’는 있다. 엄밀히 말해 윤석열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당인도 아니다. 체질이 다르다.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제도와 법이 허용하는 한, 소신대로 대통령 노릇 하고 물러가면 된다. 부담 없이 ‘윤석열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는 것이다.”

‘우리 석열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김대중 칼럼니스트의 주문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것 같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에 대통령실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만들었습니다. 학교 동문, 그리고 검사 시절 가깝던 사람들을 대거 정부 요직에 기용했습니다.

2022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자유’를 35차례나 외쳤습니다.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북한이 비핵화하면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담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2023년 신년사에서는 노동·교육·연금개혁을 다짐했습니다. 삼일절 경축사에서는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년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온통 시끄럽기만 했지 뭐 하나 제대로 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주가는 내려갔고 물가는 올라갔습니다. 실업률을 낮추지도 못했고 양극화를 해소하지도 못했습니다. 외교·안보를 잘한 것도 아닙니다.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국지전이라도 터지는 것 아닌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대통령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사고를 치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우리나라를 좀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언론과의 관계는 최악입니다.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이었던 대국민 소통, 대언론 소통은 꽉 막혔습니다. 출근길 약식회견 재개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인터뷰는 <조선일보>와만 하고, 새해 기자회견은 슬그머니 건너뛰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야당과의 대화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 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은 기간 신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습니다. 여야 관계는 말 그대로 파탄 상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여당도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를 무리하게 쫓아냈습니다. 만만한 김기현 의원을 대표로 만들기 위해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등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을 공공연하게 구박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된 것인지 의문입니다.

대통령의 타깃 ‘전 정부·야당·노조’

모든 분야를 엉망으로 만들면서도 딱 한가지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있습니다. 검찰을 시켜 전임 정부, 야당, 노조를 때려잡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뭔지 아십니까? ‘반드시’입니다. ‘반드시’는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강조하는 부사입니다. “악당을 반드시 때려잡아야 한다”, “불의를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고 사용할 때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도 검사 때와 마찬가지로 “악당을 반드시 때려잡아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악당’은 누구일까요?

‘종북 세력’입니다. ‘화물연대’입니다. ‘강성 기득권 노조’입니다. ‘민주당 정권’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입니다. 이재명 대표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을 ‘뇌피셜’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악당은 뇌피셜인 셈입니다.

<한겨레> 경제팀 이지혜 기자가 1월27일치 ‘슬기로운 기자생활’ 칼럼서 화물연대 파업을 힘으로 제압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고민도 딜레마도 없이 법에 적힌 대로 처벌할 사람만 찾으면 되는데, 대통령은 왜 필요하고 장관은 왜 필요할까. 이 세상은 영웅과 악당이 명확히 나뉘는 활극이 아니고, 활극이 끝나도 세상은 미련하게 이어진다. 짧다면 짧을 6년간 기자 생활 경험칙에 따르면 계속 악당만 찾아다니고 일침 놓기에 열 올리는 사람들은 대안 마련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들에게는 건설적 미래를 만드는 일보다 정의로움을 뽐내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어쩌면 악당을 무찌르는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에게나 악당 역할을 점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의 치명적 결함을 이처럼 통렬하고 정확하게 지적한 글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민심도 윤석열 대통령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성적을 한국갤럽 여론조사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2022년 5월10일에는 긍정 52%, 부정 37%로 출발했습니다. 두달도 안 된 7월 첫째 주에 부정 49%, 긍정 37%로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이뤄졌습니다. 인사 실패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3월3일 발표한 수치는 긍정 36%, 부정 55%였습니다.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 국정 평가로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앞으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다시 앞서는 이른바 ‘골든크로스’가 일어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대오각성하고 국정 철학과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면 될 것 같습니다. 가능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4년 동안 가장 중요한 기로는 2024년 4월10일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라고 다들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겨도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협력 없이는 국회에서 법안을 제대로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총선에서 져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소야대 상황이 이어질 뿐입니다. 총선 승패에 윤석열 대통령의 명운이 달렸다는 주장이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른바 보수 세력의 ‘뇌피셜’인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총선 승패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이 협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물론 협치의 성사 여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달려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협치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성공의 길이 열리고, 협치하지 않으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날 것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독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6월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2021년 6월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 의식과 윤리 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근무 인연이 있는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한 사건을 이 말에 한번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윤석열 정권에서는 검사들이라는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 의식과 윤리 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가히 검사의, 검사들에 의한, 검사들을 위한 정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향해 윤석열 대통령이 마구 퍼부었던 독설이 2년도 채 안 돼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정치를 비판하기는 쉬워도,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대통령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그래도 대통령 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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