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안 된다는 말, 답답했다”…‘국산 위스키’ 만든 이 남자 [인터뷰]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3. 3. 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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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자아낸 ‘韓 위스키 1호 장인’
영국, 일본 증류소 수백곳 돌며 도전
재료까지 모두 ‘국산’ 사용한 위스키
지난달 27일 경기도 김포 소재 증류소에서 만난 한국 위스키 1호 장인 김창수 대표. [이상현 기자]
“인생에서 10년을 갈아 넣었죠. 애증의 술입니다.”

경기도 김포에서 국산 위스키를 빚어내 잇따라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김창수 대표는 위스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위스키에 매력에 한 번 빠져든 뒤 국산화에 성공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과 가늠조차 안 갈 정도로 깊은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설명이다.

“일 시켜달라” 수백 번 요청 끝에 온 기회
지난달 27일 경기도 김포 외곽에 있는 김 대표의 증류소에서 그를 만났다. 1986년생. ‘장인(匠人)’이라고 불리기엔 어색하리만큼 젊은 나이지만, 세간은 그를 엄연한 ‘한국 위스키 1호 장인’으로 부른다.

김 대표는 국산 맥아(보리)와 효모, 오크통을 활용한 최초의 국산 위스키(김창수위스키 2호)를 제조·출시한 이다. 이전에도 국내에서 위스키를 생산한 이들은 물론 있었지만, 재료까지 모두 국산을 사용해 ‘정통성’을 인정받은 건 김 대표가 최초다.

각종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도 실패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위스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집념 덕분이었다. 위스키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스코틀랜드와 일본에서만 120여곳의 증류소를 돌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회사 그만두고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뛰어든 게 2013년”이라며 “국내에서는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스코틀랜드 양조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현지 증류소들을 무작정 찾아다니며 일을 시켜달라 그랬다”고 말했다.

김창수 대표가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GS25 DX랩점에서 열린 ‘김창수위스키 스페셜에디션 오픈런 행사’에서 사인회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의 말마따나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만 102곳의 증류소를 돌아보고 “이제 끝났다”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들어간 한 현지 술집에서 그는 우연히 일본 지치부 증류소 직원을 만났다.

‘벤처 위스키’로 유명한 지치부 증류소는 2008년 일본 사이타마현에 설립된 증류소다. 당시 이 증류소의 직원이 한 행사에 참석하고자 스코틀랜드를 찾았었고, 마침 김 대표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것. 그렇게 그는 지치부 증류소에서 위스키 양조를 배울 기회를 얻었다.

기적처럼 찾아온 일이었다. 김 대표는 “평소엔 안 그러는데 그냥 술김에 한 번 말을 걸어봤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스코틀랜드 증류소 102곳에 일을 시켜달라고 했을 때 전부 실패했었다. 모든 게 끝나서 포기하자고 결심했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산화 가능 ‘신호탄’…“넘어야 할 산 많다”
그렇게 익힌 기술로 김 대표는 지금까지 3종의 위스키를 생산했다. 지난해 4월 1호, 9월 2호, 올해 2월 3호가 각각 출시됐다. 3종 모두 국내 생산이지만, 두 번째 위스키는 재료까지 모두 국산을 활용한 것이다. 주류업계와 마니아들이 가장 의미를 부여하는 게 바로 이 제품이다.

어떻게 직접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김 대표는 자신이 위스키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도 양질의 위스키를 생산하는데 우리나라가 못 할 이유가 있었겠냐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세금이 비싸서, 돈이 많이 들어가서 등 부차적인 이유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외국에서도 위스키 만드는 게 쉬운 건 아니다”라며 “(여러 이유로) 안 만들고, 못 만들고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어 “개척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도전해서 만드는 건데 그런 핑계로 우리나라가 위스키가 없다는 데 화가 났다”며 “상황이 열악하지만, 국산 위스키라는 걸 꼭 만들고 싶었다. 국산 중에서도 또 국산 재료로 만드는 위스키를 꼭 내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김창수위스키 3호 캐스크’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행사 당일인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GS25 매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현 기자]
김 대표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국산 재료를 쓴 것에)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위스키의 100%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신호탄이었을 뿐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양조용 보리와 오크통을 만들 나무 등 적합한 재료를 확보하는 것부터 난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위스키 종주국인 영국과 다른 날씨도 까다로운 환경요인이다. 연중 평균 기온은 더 높은데다 연교차까지 심해 위스키 숙성이 빨리 이뤄지기 때문이다. 숙성이 빨리 이뤄지는 건 원액에서 증발하는 양이 많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스코틀랜드에서 10년을 숙성해 제품화할 게 우리나라에서는 3년 정도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점”이라면서 “다만 고숙성을 하게 되면 다 증발해서 아마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조건이지만…“우리나라도 위스키 만든다”
김 대표가 3호 캐스크 출시를 기념해 팬 사인회를 진행한 지난달 10일 행사장 앞에는 2030 소비자들 수십명이 줄지어 있었다. 그의 제품을 구매하고 사인을 받으려 이틀 전부터 행사장 앞에서 기다린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김 대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위스키가 인기를 끌 것을 진작 예상했다고 말했다. 국내 식음료 시장의 흐름을 보면 세계적인 추세보다 10년 정도 늦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위스키 열풍 역시 꼭 10년 차이라는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는 2012~2013년께 인기가 시작돼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최소 10~20년은 위스키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주 등처럼 금방 제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입 장벽도 높아 인기가 더 오래갈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제품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주세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시장 성장이 더딜 것이라고 우려했다. 술의 양이나 도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에 따라 세율이 적용되기에 소비자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창수 대표는 올해 안에 4호 캐스크 제품을 출시하고자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더 숙성된 원액을 제품화한 뒤 해외에 수출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이상현 기자]
내외적으로 여러 악조건이 있지만, 그는 이 순간에도 꿋꿋이 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장은 4호 캐스크 출시를 준비 중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좀 더 숙성된 원액을 제품화해 해외에 수출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그는 “국내 위스키 시장은 정말 작고, 이제 막 시작한 수준”이라며 “(위스키는)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술이기에 저도 추후 스코틀랜드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 짓는 그의 뒤에서는 크고 작은 오크통 수백개가 원액을 품은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증류소 안에는 한기가 가득했고, 동시에 거칠면서도 달고 녹진한 알코올 향이 계속 맴돌았다. 잘 말린 자두를 꿀에 담그고 끓였을 때 날 것만 같은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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