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탐탐] ④ 제주 최고 흑돼지 '난축맛돈' 탄생 비밀을 찾아서
전문가들 "비선호 부위도 구이용으로 활용 가능…공급량 부족 단점"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제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제주맛돈 29,000원(180g)'
난축맛돈을 찾아 나서는 원정기는 한 돼지고기 식당의 메뉴판에서부터 시작됐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핫한' 강남의 한 돼지고기 식당에 지인 몇몇과 찾았다가 메뉴판에 적힌 금액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웬만한 한우정육식당의 소고기보다 비싼 값에 눈을 비비고 메뉴판을 다시 연신 훑어봤지만, '29,000원'이란 가격은 틀림없이 그 자리에 적혀 있었다.
일행들이 또 한 번 놀란 건 주문한 고기 맛을 보고 나서였다.
돼지고기 등심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기름기가 적절히 껴 있는 육질에 단단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지는 지방까지 여느 돼지고기와는 맛이 확연히 달랐다.
"돈이 아깝지 않다"는 감상평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참을 집중해 식사를 하다 보니 문득 이 돼지고기가 어디서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식당의 메인 셰프인 김인복 셰프를 찾아가 돼지고기의 출처에 관해 물었다.
모두의 혀를 놀라게 한 돼지고기는 이름도 생소한 제주도에서 온 '난축맛돈'이라는 흑돼지 품종이었다.
맛만큼이나 특이한 품종명이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축맛돈은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 개발한 맛있는 돼지'라는 뜻으로 지은 품종명이었다.
난축맛돈이 특별한 것은 무엇보다 삼겹살과 목살 외에도 지방기가 거의 없는 등심 같은 비선호 부위의 근내지방 함량(마블링)이 높아 구이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돼지고기를 구이용으로 가장 많이 즐기는 국내 시장에서 비선호 부위를 구이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장점이다.
김인복 셰프의 설명에도 난축맛돈에 대한 궁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호식탐탐 취재팀은 난축맛돈이 어떻게 개발됐고, 어떻게 사육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 시간 남짓이 지나자 제주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한라산 방향으로 40분을 더 달렸을 때쯤 '난지축산연구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질병 감염 등에 민감한 축산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어서인지 출입절차부터 상당히 까다로웠다.
취재팀 전원은 입구에 있는 경비 초소 앞에서 내려 인적사항과 방문목적, 신분증 스캔 등 복잡한 출입절차를 밟았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에 빨간색으로 '가축 사육구역'이라고 적힌 방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연구소 건물로 들어서자 27년간 난지축산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난축맛돈을 개발한 조인철 농업연구관과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신문철 농업연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난축맛돈 맛의 비결은 제주 재래흑돼지 유전자를 외국품종인 랜드레이스를 교배한 데 있었다.
조 연구관은 "난축맛돈의 비선호 부위 마블링은 제주 재래흑돼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주 재래흑돼지는 덩치가 작고, 새끼도 적게 낳지만, 등심 등 부위에 마블링이 좋고, 육질이 붉은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라며 "그러나 제주 재래흑돼지는 양돈농가의 수입측면에서 사육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나오고, 성장 속도도 빠른 랜드레이스 품종을 교배해 개량 품종인 난축맛돈을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지축산연구소는 지난 2005년부터 국내 최초로 유전체선발 기술을 활용해 8년간 연구 끝에 난축맛돈을 개발해 냈다.
유전체선발 기술은 다량의 참조축군을 확보해 특정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규명해 내는 것으로 난축맛돈은 흑모(흑돼지) 모색형질과 마블링이 좋은 육질형질을 선발해 만든 품종이다.
난지축산연구소는 1천273두의 참조축군에서 표현형 데이터를 조사한 뒤 흑모 모색형질이 돼지 8번 염색체와 관련이 있고, 근내지방 함량은 12번 염색체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육질이 좋은 돼지를 선발하기 위한 진단방법은 일본에서 특허 등록을 마쳤고, 현재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에서도 특허 등록을 진행 중이다.
신 연구사는 "난축맛돈은 근내지방 함량이 12.65%로 일반돼지(2.58%)와 비교해 4배가량 향상됐다"면서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삼겹살과 목살 외 저지방 부위도 구이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난축맛돈을 실제로 보기 위해 연구소 내 축사로 발길을 향했다.
축사로 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철문과 철문 옆에 사우나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혹시나 모를 감염병 예방을 위해 취재진 전원은 촬영 장비를 들고 섭씨 75도의 건식 사우나에서 10분간 열소독을 받았다.
열소독 이후에도 축사 전용 방역복과 축사 내에서만 착용하는 장화를 신은 뒤에야 축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역복을 입고 차로 1㎞ 정도를 더 달리자 난축맛돈 축사가 보였다.
축사 문을 열어젖히자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이고, 우람한 덩치의 난축맛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제주재래흑돼지보다는 크기가 1.5배가량 커 우람한 덩치를 자랑했다.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난축맛돈 600마리가 사육되고 있고, 농가 보급도 겸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해 140두를 보급한 데 이어 올해 200두를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2013년 야심 차게 농가 보급을 시작한 난축맛돈은 안타깝게도 초기에는 농가의 외면을 받았다.
가장 큰 이유는 성장 속도가 더디고, 산자수(1회 분만으로 출산한 새끼 수)가 일반돼지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난축맛돈을 지속해서 개량해 나갔다.
신 연구사는 "2013년 개발 초기에는 140일령 체중이 75㎏으로 국내에서 사육되는 일반돼지(90㎏)와 비교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현재 육종된 14세대 난축맛돈은 지난해 기준 140일령 체중이 90㎏까지 올라와 일반돼지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산자수 역시 평균 10.9두까지 올라오면서 일반돼지(평균 13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며 "지속적인 개량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성도 역시 점차 개선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보급을 시작한 난축맛돈은 제주 전용사육장 8곳과 종돈장 1곳에서 사육되고 있다.
제주에서 1년에 사육되는 돼지 수는 총 55만두로 이 중 흑돼지가 15만∼17만두를 차지한다. 난축맛돈은 현재 6천두 가량 사육되고 있으며, 제주 전체로 따지면 약 2% 수준이다.
양돈장을 나와 연구소 본관에 돌아오니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불판 위에 일반돼지와 난축맛돈 등심부위가 나란히 구워지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난축맛돈의 육질은 색이 선홍빛을 띠고, 일반돼지와 달리 살코기인 등심에도 마블링이 촘촘히 껴 있었다.
실제 제주의 난축맛돈 전문 식당에서는 등심과 가브리살, 갈비가 섞인 이 부위를 '돈마호크'라는 구이용 메뉴로 판매하고 있다.
고기 맛이 소문나면서 난축맛돈을 취급하는 식당 역시 전국 20곳으로 늘어났다.
김인복 셰프는 "손님들이 난축맛돈의 등심 부위를 특히 좋아한다"면서 "일반돼지의 등심은 퍽퍽해서 구워 먹기 좋지 않지만, 난축맛돈은 등심 지방이 맛있어 구이용 메뉴로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직 물량 수급이 어려워 가격이 높은 것이 단점"이라며 "비선호 부위인 전지와 후지를 이용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 중이다. 메뉴 개발에 성공한다면 손님들이 지금보다 저렴하게 난축맛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찬일 셰프도 "난축맛돈은 구이용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엉덩이살과 안심까지도 구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지방 분포와 깊은 감칠맛이 뛰어나다"며 "육질도 선홍색을 띠면서 소고기 등심처럼 보기에도 좋다. 이런 특징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했다.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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