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로 막혔던 日 소재·부품·장비… 한국과 교류 ‘숨통’
지난달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코리아 2023′에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들이 대거 등장했다. 반도체 주요 공정인 노광 장비를 만드는 니콘을 비롯해 일본 수출 규제의 핵심이었던 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를 제조하는 JSR, 도쿄오카공업(TOK), 스미토모화학도 부스를 차렸다. 박람회에 참가한 일본 기업만 30곳.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 제재까지 풀리면서 한·일 왕래가 편해져 인적 교류가 더욱 많아졌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9년, 한·일 양국 정치 갈등의 불똥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튀며 한때 양국 기업 관계가 냉랭해졌지만 최근엔 완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 시장이 막히고, 대만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한국행 러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문재인 정부 시절 보복성으로 단행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실리(實利)를 찾아 한국 고객사와 손잡는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규제 이후 3년여간 일본 소부장 기업들은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뿐 아니라 생산 기지도 속속 짓고 있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 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은 올해 완공을 목표로 2000억원을 투자해 경기 화성의 R&D 센터를 증축하고 있다. 스미토모화학, TOK 등도 국내에서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제조 설비를 갖춰 양산을 시작했다. 후지필름은 작년 말 경기도 평택에 반도체 이미지센서용 컬러필터 재료 공장을 착공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자국 내 여론을 감안해 조용한 투자를 지속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일 기업이 손잡고 미국 공략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반도체 특수가스 분야 기술력을 갖춘 SK머티리얼즈는 일본 쇼와덴코와 지난해 ‘반도체 소재 북미 동반 진출 검토’ 업무 협약을 체결했고, 현재 공동 진출을 추진 중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 시장이 차단된 이후 갈 곳을 잃은 일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을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로 계속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는 친일이 아닌 용일(用日)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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