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위에 두둥실 겹겹이 쌓인 쪽빛…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가[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기자 2023. 3.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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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일기자의 여행 - 몽환의 섬 사이판
100년 전엔 일본이 위임통치
태평양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
美-日 3주간 피말리는 공방전
강제징용된 한국인들도 희생
다이빙 포인트 이름난 그로토
동굴 끝에 햇빛 새어들어오면
형광빛으로 빛나는 색감 황홀
만세절벽 수평선엔 별 쏟아져
국내기업 현지호텔 비교우위
‘관광영토’ 무한 확장 교두보
사이판 북부의 해안을 끼고 있는 켄싱턴 호텔 사이판. 흰 모래와 산호초가 빚어내는 옥빛 바다와 그 너머 남태평양 진청색 바다의 색 대비가 뚜렷하다. 켄싱턴 호텔의 모든 객실 테라스에서 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사이판(북마리아나제도)=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무거운 진청색 바다가 가벼운 하늘색으로 바뀌어 갔다. 푸른 산호초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사이판. 남국의 바다에서 보내는 휴가에 기대로 들뜬 관광객을 태운 비행기는 사이판국제공항에 사뿐하게 착륙했다.

# 사이판, 그리고 ‘사이한도(彩帆島)’

사이판국제공항은 100년 전쯤 거대한 사탕수수밭이었다. 일본인이 나라 밖에 세운 최초의 사탕수수농장이자 사이판(Saipan)의 첫 사탕수수 농장이기도 하고, 사이판에 있었던 다섯 개 사탕수수농장 중 가장 큰 농장이기도 했다.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마쓰에 하루지는 ‘설탕왕’으로 불렸다.

일본은 이미 100년 전쯤 사이판·티니안·로타·팔라우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북마리아나제도(남양 군도·Northern Mariana Islands)를 위임 통치하고 있었다. 남양 군도가 제국주의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게 막연히 ‘2차대전쯤’일 거라 짐작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은 이미 1914년에 독일의 속령이던 미크로네시아를 무단 점령했다. 독일과 전쟁 중이던 ‘영국의 동맹국’이란 명분을 앞세운 침략이었다. 이어 1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은 패전국 독일에 남양 군도를 공식적으로 넘겨받아 사이판을 위임 통치했다. 속된 말로 하자면 사이판을 ‘날로’ 먹은 셈이다.

위임 통치는 식민 지배와는 좀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위임 통치 국가가 통치령 상황을 국제 연맹에 매년 보고하고 심사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통치가 부적절하다 싶으면 국제 연맹은 통치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 일본이 사이판에서 식민 지배의 횡포를 마음껏 부릴 수 없었던 이유다. 잔인하고 폭압적인 우리의 식민지배 상황과 사이판의 상황은 이렇게 서로 달랐다.

위임 통치가 시작되자 일본인들은 남양 군도로 모여들었다. 1939년 12월 말에 조사한 남양 군도 인구통계를 보자. 총인구 12만9104명 중 일본인이 자그마치 7만7257명이다. 북마리아나제도 중 일본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사이판이었다. 당시 기록이 믿기지 않는다. 사이판 주민 10명 중 9명이 일본인이었다. 이쯤 되면 사이판은 일본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일본 주민들은 ‘사이판’을 발음만 빌려(음차) ‘사이한도(彩帆島)’라고 불렀다.

# 전쟁에서 관광으로… 일본과 사이판

사이판에서 뜻밖이라 느꼈던 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을 우리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이판 북부 ‘반자이(만세) 절벽’에 일본군 위령비가 줄줄이 늘어선 점도, 일본군 최후 사령부의 폐허가 이도 저도 아닌 무표정한 유적지처럼 남겨져 있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이판에서 원주민은 불평등한 노동조건과 임금을 받으며 일본인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지만 그다지 불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이판은 그 전까지만 해도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곳이었다. 워낙 좁은 섬이라 내수랄 것도 없고 내다 팔 것도 변변찮았다. 오죽 ‘수탈’할 게 없었으면 스페인과 독일이 차례로 남양 군도를 손아귀에 넣고도 ‘손 놓고’ 있었을까.

그나마 일본은 사탕수수 농장을 개척했는데 이게 사이판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던 셈이었으니 스페인·독일 식민지로 살아본 주민 입장에서 일본 지배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일제의 야욕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화로 끌려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 일본인들은 관광객이 돼서 사이판을 찾아왔다. 일본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먹고살던 사이판 주민들이 이제는 거품 성장기 일본 관광객의 흥청거리는 소비로 먹고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사이판은 한국인이 주인 격이다. 한국인들이 ‘관광으로 먹고사는’ 사이판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사이판을 찾는 관광객의 95% 이상이 한국인이다. 필리핀·베트남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이 외국인 관광객 중 단연 1위이지만 사이판만큼 압도적이지는 않다. 이걸 두고 한국인 관광객이 이른바 ‘봉’이라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켄싱턴 호텔 사이판의 해변에 펼쳐지는 저녁노을.
다이빙 명소인 동굴 그로토의 형광색 물빛.
사이판 북부 만세 절벽에서 진행되는 별빛 투어.

# 사이판, 한국의 ‘관광 영토’가 되다

사이판에는 한국 기업이 현지법인을 설립해 진출한 호텔이 여럿이다. 그것도 다 내로라하는 최상급 호텔이다. 사이판에서는 한국 자본의 호텔이 세계적인 명성의 다국적 체인 호텔쯤은 가볍게 압도한다. 입지와 객실 수준부터 부대시설, 서비스까지 아예 ‘비교 불가’다.

하나하나 꼽아보자. 이랜드 그룹의 해외법인 마이크로네시아 리조트법인(MRI)은 자타공인 사이판 최고 호텔인 켄싱턴 호텔 사이판·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로 이름난 PIC 사이판·18홀의 골프 코스를 가진 코럴 오션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의 모기업이 한 지역에 3개의 대형 리조트를 운영하는 드문 경우다. 3개 리조트의 객실 수를 다 더하면 711개. 북마리아나 호텔협회 소속 호텔 객실 총 2670개 중 4분의 1이 넘는 객실을 MRI가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사이판 월드리조트·라오라오베이 골프&리조트도 한국계 기업이다. 워터파크로 이름난 사이판 월드리조트는 월드건설과 한화리조트를 거쳐 설해원이 주인이 됐고 36홀 골프코스를 가진 라오라오베이는 대우건설이 갖고 있다가 최근 휴림로봇 소유가 됐다.

사이판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대부분 이들 리조트를 이용한다. 한국계 현지법인 리조트나 호텔에는 현지 직원들의 수가 압도적이지만 이른바 ‘한국형 서비스 마인드’가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켄싱턴 호텔 사이판이나 코럴 오션 리조트의 식음 부분은 내로라하는 서울의 특급호텔 출신의 셰프들이 이끌고 있어 수준급 한국 음식도 강점이다.

호텔이나 리조트의 인프라를 확보하면서 현지여행사나 가이드 시장도 한국 차지가 됐다. 국수주의적 시각이 아니냐 비난받을 수 있는 얘기지만 사이판 관광시장의 수요도 공급도 한국이 차지하고 있으니 사이판은 한국의 ‘관광 영토’인 셈이다.

한국 국적기를 타고 사이판으로 가서 한국 모기업의 현지법인 리조트에 묵는다면 우리 관광객이 해외에서 쓰는 돈을 한국 기업의 현지 법인이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런 개념이라면 우리의 관광 영토는 무한 확장이 가능하지 않은가. 관광 영토가 더 많아진다면 해외여행을 많이 나간다고,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오히려 더 많은 한국인의 사이판 여행을 장려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 ‘좋은 날씨’와 ‘더 좋은 날씨’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사이판 관광 이야기다. 사이판까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사이판의 강점 중의 하나가 ‘짧지도, 길지도 않은’ 비행시간이다. 가족여행지로 적합한 이유다.

사이판 섬은 남북으로 길다. 긴 쪽, 그러니까 남북은 21㎞쯤 되고, 동서 폭은 9㎞ 남짓이다. 제주도와 비교하면 16분의 1이고 거제도의 4분의 1 크기다. 사이판은 알파벳 ‘F’자를 뒤로 넘어뜨린 것과 똑같이 생겼다. 산호초의 바다는 뒤로 넘어뜨린 F자의 등 쪽, 그러니까 서쪽에 있다. 멀리까지 산호초가 펼쳐진 사이판 바다는 비현실적인 색감으로 빛난다. 사이판의 산호초 바다는 겹겹이 채도가 다른 푸른색으로 빛난다. ‘세상의 거의 모든 파란 색’이 그 바다에 있다.

사이판 날씨를 물으면 현지인들은 ‘둘 중 하나’라고 답한다. ‘좋은 날씨’와 ‘더 좋은 날씨’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행 내내 그런 날씨를 만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이런 것까지 기록인정을 해주나 싶긴 하지만 사이판은 ‘연중 온도변화가 가장 적은 지역’ 부문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다. 사이판의 평균 기온은 연중 28도 남짓이다.

사이판의 빼어난 자연경관은 북쪽에 몰려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장엄한 바다와 직벽이 어우러지는 만세 절벽과 자살 절벽이다. 산호초가 없는 북쪽의 시퍼런 바다를 끼고 만세 절벽이 있고 만세 절벽에서 뒤돌아보면 테이블처럼 보이는 내륙의 마피산 아찔한 수직 암벽이 자살 절벽이다. 두 곳 모두 1944년 6월 사이판 전투에서 미군에 패퇴해 섬 끝까지 몰린 일본인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떨어져 죽었다는 곳이다. 바다 쪽의 만세 절벽에서는 일본인 부녀자와 노인들이, 뒤쪽의 자살 절벽에서는 일본군이 뛰어내렸단다.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라판 시내의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에서 상영하는 짧은 기록영화에 일본인 여성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진짜 나온다.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인데도 충격적이다.

사이판은 태평양 전쟁 중 미·일 양쪽의 이해가 맞서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군에 사이판은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비행장의 최적 입지였고, 일본군 입장에서는 본토방어를 위해 정해놓은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3주가 넘게 계속된 전투에서 일본군 2만4000명이 전사했다. 이 중 자살자가 5000명에 달했다. 놀라운 건 민간인 사망자가 2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 민간인 사망자 대부분은 자살 혹은 일본군의 강요로 죽은 이들이다. 강제 징용돼 사이판까지 가야 했던 한국인의 억울한 희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골프장을 갖고 있는 코럴 오션 리조트의 수영장.
일본군 최후사령부 주변에 남아있는, 폐허가 된 일본군 전차.

# 그로토(Grotto) 동굴의 형광색 물빛

사이판에는 비극적 전쟁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고 그저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들도 많다. 만세 절벽에서 머지않은 새 섬(Bird Island)도 그런 곳이고, 섬 한복판의 도시와 어우러지는 마이크로 비치(Micro Beach)와 잘 알려지지 않은 섬 남쪽의 래더 비치(Ladder Beach)·오비안 비치(Obyan Beach)도 그렇다.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산호초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마나가하 섬(Managaha Island)’이고 다른 한 곳은 동굴 다이빙 포인트인 ‘그로토’다.

마나가하 섬은 섬 서쪽 환초(環礁) 위에 떠 있는 손바닥만 한 섬이다. 선착장에서 배로 불과 15분 남짓. 산호초로 둘러싸인 섬 주변의 맑은 바다는 바닥이 환히 비치며 백사장의 모래는 눈이 부실 만큼 희고 곱다. 산호초 사이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헤엄치고 야자나무 그늘 아래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지금 마나가하 섬은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붐비지 않는다. 일부 동남아 휴양지 해변의 지저분한 뒷모습도 없고 끈적한 습기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잡상인도 없다. 해양스포츠의 바가지 요금도 없다. 왕복 뱃삯과 섬에 들어갈 때 내는 환경세를 포함해 1인 50달러만 내면 된다. 사이판에서 마나가하 섬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이판에서 호핑 투어를 할 만한 곳은 마나가하 섬이 유일하니 사이판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모두 다 다녀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토는 볼거리가 몰려 있는 사이판 북쪽에 있다. 마나가하 섬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그로토는 다이빙 포인트로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다이빙 포인트라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건 아니다. 숲 속에 동굴처럼 푹 파인 지형 아래로 100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가면 거대한 바다 웅덩이가 숨어있다. 수직의 암벽이 둥글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바위 아래 동굴은 바다와 통해 있다.

그로토의 압권은 바닷속 동굴 저쪽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바다색이다. 동굴 깊숙한 쪽의 바다가 푸른 형광 불빛을 켜 놓은 듯 푸르게 빛나는 모습이라니…. 빛을 받은 바다의 푸른 색감은 황홀할 정도다. 그로토는 입장료 없이 개방 중이지만 파도가 세고 지형이 거칠어 개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위험하다. 여행사 가이드가 개별 출입을 제지하기도 한다. 왕복 차량편·수경·숨대롱·구명재킷을 제공하는 여행사 상품이 55달러 정도다.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는 스킨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니 가벼운 스노클링만으로는 황송하다 싶을 정도의 바다 속 풍경을 누릴 수 있다.

# 환한 햇살과 여유 있는 새 소리

사이판은 남국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고를 수 있는 많은 선택지 중 하나다. 남국 휴양지로 가는 여행을 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라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차이가 적잖다. 흥청거리는 휴양지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에게 적당한 여행지가 있고 다양한 쇼핑과 고급 스파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또 그들에게 맞는 여행지가 있다. 그렇다면 사이판 여행은 ‘가족끼리 자연에서 즐기는 여유 있는 휴식 여행’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딱 좋은 곳이다. 비슷한 환경으로 인근의 괌을 떠올리지만 고즈넉한 사이판에 비교하면 괌은 번잡할뿐더러 치안상황도 차이가 좀 있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바로 ‘별빛 투어’다. 괌에서도 최근 몇몇 여행사들이 산타 아규에다 요새의 아가냐 전망대나 리티디안 비치 등에서 별빛 투어를 진행하지만 사이판의 만세 절벽에서 거대한 수평선 위로 올려다보는 와르르 쏟아지는 별빛에는 감히 댈 수 없다. 대신 괌의 밤 시간에는 쇼핑을 즐길 수 있다. 괌의 리티디안 비치의 별빛이 사이판 만세 절벽에서 보는 별빛을 이길 수 없듯 조악한 기념품의 작은 쇼핑센터 ‘아이 러브 사이판’은 괌의 크고 화려한 쇼핑센터를 이길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다 좋은 건 없다. 여행은 늘 선택이니까. 사이판은 고즈넉하고 힐링 여행을 생각하는 이들이 선택하니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더 조용해진다. 고즈넉한 여행지는 더 고즈넉해지고 시끌벅적한 여행지는 더 시끌벅적해진다는 얘기다. 사이판 리조트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조식 레스토랑의 햇살이 유난히 더 환하고 새소리가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 돌아온 고객을 맞는 자세

사이판 여행의 성패는 리조트나 호텔 선택이 가른다. 볼 게 그다지 많지 않으니 ‘리조트 라이프’의 비중이 커서 그렇다. 그렇다면 한국 모회사의 현지법인 호텔을 택할 것을 권한다. 시대착오적인 ‘애국 소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시설부터 서비스까지 객관적으로 모든 게 훌륭해서다.

한국 모회사의 현지법인 호텔 몇몇은 코로나19의 악전고투 상황에서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 문을 닫아 지출을 줄이고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게 셈 빠른 대처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인 직원들은 한 집에 모여서 한솥밥을 지어 먹으며 견뎠다. 항공편 운항 전면 중단으로 손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놀 수는 없는 일. 코럴 오션 리조트 직원들은 손님 한 명 없는 골프장의 뙤약볕 아래서 풀을 뽑았고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호텔로 쓰였던 PIC 사이판 직원들은 한 달 혹은 두 달씩 확진자와 함께 격리를 견뎌야 했다. 켄싱턴 호텔 직원들은 백사장에 모여 토목공사용 ‘체’로 해변의 모래를 골라냈다. 해안으로 떠밀려오는 산호 부스러기를 걸러내기 위해 시작한 모래 고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이판의 다른 리조트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거의 끝나가고 고객들이 돌아오는 지금 상황을 두고 그들은 ‘그야말로 감격’이라고 했다. 이런 마음은 고객을 대하는 사소한 태도에서부터 드러난다. 팬데믹 내내 문을 닫아걸고 상황이 나아질 만하니 그제야 문을 연 다국적 자본의 다른 리조트와는 서비스의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리조트와 기부

사이판 현지법인 MRI의 호텔들은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화 노력의 일환이다. 태풍피해가 있으면 구호 기부와 봉사활동을 한다. 환경봉사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코로나 취약계층에 생필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PIC 사이판에서 ‘PIC 오리경주’가 열렸다. 참가번호가 매겨진 2500마리 오리 인형을 PIC 워터파크 유수 풀에 띄워놓고 가장 먼저 들어오는 오리 번호에 해당하는 티켓을 구매한 이에게 상금을 주는 식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행사 수익금 전액은 북마리아나 암협회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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