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 푸는 초등생" 학원가 의대반까지…'의대 쏠림' 처방책은

김인한 기자, 유효송 기자 2023. 3. 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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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下)

[편집자주]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 최근 5년간 1000명 넘는 학생이 중도 이탈했다. SKY로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공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의대에 지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공계와 의료계의 처우 차이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이에 이공계 엑소더스 실태와 목소리를 담고, 현재 카이스트 등에서 대책으로 마련 중인 의사과학자 육성 계획을 소개한다. 그리고 의대 입시를 대해부하고, 의료계의 상황도 알아본다.

"의대 쏠림 어제오늘 일 아니다"…KAIST가 내놓은 반전 처방책
④ "학생 선택 비난 못해, 의사과학자 길 보여줘야"…바이오헬스 산업, 반도체보다 시장 규모 4배 커
김하일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학과장은 최근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사회적 인식 변화와 미래 인재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선택지 중 하나가 카이스트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김인한 기자


"의과대학 쏠림 현상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겪는 문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고연봉 안정적 직업을 선택한다. 학생들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사회가 이들에게 '성장의 장'을 제대로 못 만들어준 잘못도 크다. 의사과학자라는 새로운 길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김하일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학과장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의사과학자 육성 필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김 학과장은 "우리나라 의대 쏠림 현상이 지나친 이유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한 문제 더 맞춰 의대에 가려고 재수·삼수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라며 "'의사와 과학자'의 접점 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이공계 이탈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카이스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 규모는 1조7000억 달러(약 2040조원)로, 반도체(4400억 달러·약 528조원)보다 4배 크다. 반도체 시장은 이미 개화해 추가 성장 가능성이 제한적이지만, 바이오헬스 분야는 아직 개척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다. 경제·산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신종 감염병에 대응할 기술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카이스트는 2021년부터 과학기술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을 추진해왔다. 2004년부터 의과학대학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총 250명 육성해왔지만, 한계가 있어 이를 과기 의전원으로 추가 대처한다는 것이다. 과기 의전원은 총 8년 프로그램으로, 초기 석사 3년은 의학을 배우고 1년은 과학을 배우는 계획이다. 박사 학위 4년간 의학 현장에 필요한 과학·공학 연구를 융합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김 학과장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의대 가는 경우를 보면 본인 뜻이거나 직업적 안정성과 고연봉을 중시하는 부모 영향이 크다"며 "과기 의전원이 생기더라도 이런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과학기술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총 8년 프로그램으로 의학 현장에 필요한 과학·공학 연구가 주목적이다. / 사진=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사과학자 교육, 국가 미래 먹여 살릴 실용 학문

김 학과장은 "의사과학자 교육은 기초과학이라기보단 실용 과학에 가깝다"며 "의학 현장에 필요한 과학·공학 연구를 하기 때문에 바이오헬스 시장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바이오헬스 분야는 시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연구하고 창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삼성전자·애플급 회사가 나올 수 있다"며 "미래에는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 대신 연구하는 의사과학자가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의대를 가는 경우를 보면, 직업적 안정성과 고연봉을 중시하는 부모 세대 영향이 크다"며 "부모의 영향이 있더라도 학생들이 진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도록 의사과학자 구조를 만들어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학과장은 의사과학자 육성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의학과 과학·공학을 융합하는 시도 자체가 없던 길인 만큼 이를 학생들이 견딜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했다. 병역특례 문제와 학생 연구원 처우와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학과장은 "과거 히딩크가 축구 대표팀이 최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급 환경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바이오헬스 분야도 최고급 인재들에게 최고급 환경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삼성전자급 회사가 나온다면 국가 성장 동력이 만들어지고 경제·산업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2004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해 관련 인재를 육성해왔다. / 사진=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공부는 똑같이 하는데…KAIST 박사 초봉 5000만원, 의사는 억대
⑤ 억대 연봉 받으려면 연구 커리어만 최소 20년…과학 연구기관 연구자 최근 5년간 1048명 이탈
정부출연연구기관 평균연봉. /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수십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과학자에 대한 낮은 처우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4대 과학기술원 석·박사들도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입사할 경우 초임 연봉은 평균 4000만~5000만원 수준이다. 낮은 연봉에 더해 연구 자율성마저 훼손돼 최근 5년간 1000명 넘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기업 등으로 떠났다.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25개 출연연 초임 평균연봉은 2021년 기준 4260만원으로 추산됐다. 출연연 정규직 평균연봉은 9178만원이다. 연구 수당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억대 연봉을 받으려면 평균 10~15년 이상의 중견급 연구자는 돼야 한다.

학위 과정을 포함해 최소 20년 이상의 연구 커리어를 쌓아야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기술료 등 별도 수입이 없어 급여가 오르기 더 어렵다. 같은 기준으로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를 거치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의사 평균연봉은 2억3070만원(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으로 집계됐다.

학업에 투자한 시간은 거의 같지만, 연봉 차이는 최소 2~3배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최고 인재들이 쏠리고 높은 연봉이 뒤따라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의학 기술에 기반이 되는 과학·공학 연구를 소홀히 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장비나 의약품 등이 모두 기초과학 연구 토대 위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최근 5년간 자발적 퇴사자 현황.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출연연 인재 이탈 현상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출연연을 자발적으로 떠난 인력은 1048명에 달한다. 2017년 한 해 떠난 출연연 연구자는 179명이었다가 매년 증가해 2021년에는 250명에 달했다. 대다수가 대학이나 기업 등 안정적이거나 도전적 연구 환경이 있는 곳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연별로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5년간 가장 많은 147명이 이탈했고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105명, 한국원자력연구원이 88명,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86명, 한국화학연구원이 53명이었다. 특히 우수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출연연 경쟁력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김복철 NST 이사장은 이와 관련 "우수 연구자 육성과 영입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출연연이 기술료 수입으로 쌓아둔 적립금 등을 인센티브 형태로 활용하는 방안과 정년을 65세로 환원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의대생 과외쌤 月100만원 드려요"…학원가엔 '초등생 의대반'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사진=뉴스1

#서울권 의학계열 대학에 다니고 있는 A씨는 최근 솔깃한 과외 제안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주 2회 2시간씩 수학을 가르치면 월 100만원, 시급 6만원 이상을 준다는 것이다. A씨는 "의대생이면 일반 대학생들의 과외비 두배 가량을 준다는 집들이 있다"며 "과외 경험에 따라 달라지지만 약대나 치대 친구들도 비슷한 수준에서 과외 제안을 받는다"고 밝혔다.

의대와 치대, 한의대 등 의학계열 학과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사교육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 지원을 위해 중학생 대상 학원이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최근에는 의대를 목표로 한 초등학생 대상 반이 생겨나고 있다. 직접 의대생을 과외 선생님으로 붙이는 경우도 적잖다. 학습 뿐 아니라 직접 의대 입시를 거치며 쌓은 학습 경험과 스트레스 관리 방법, 경시대회 팁까지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학교 의대반이 들어선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학부모들의 요구는 하나다. 자식이 평생 의사로 살 수 있도록 의대, 못해도 약대와 한의대 정도는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의대 갈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판가름 난다"는 학원가의 문구에 위협을 느끼며 너도나도 입시 전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대치동 A 학원은 초등 의대 수학을 학원 홍보물에 큼지막하게 게시했다. 집에서 잠만 재우면 대형학원의 10배 진도로 선행 학습을 시킬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의대 입시로 유명한 다른 B 학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미적분·확률 등을 익히게 한다. 더 빠른 경우도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초등학교 때 수학을 잡지 못하면 의대는 승산이 없다고 조언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이같은 열풍은 이어지고 있다. 경상북도의 한 학원도 초6 의대반을 상시 모집한다. 올해 지방대학은 의대 정원의 최소 40%(강원, 제주는 20%)를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해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맞벌이 아들 부부 대신 초등학교 6학년 손자를 키우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 의대 출신 조카에게 학년별 필요한 선행학습 단계가 빼곡히 써진 노트를 받았다"며 "이미 시작이 늦은 것 같아 학원을 더 늘려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초등 의대반'이 생겨난 이유는 문·이과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영어 절대평가가 시행된 이후 대입에서 수학이 당락을 결정짓는 과목이 됐기 때문이다. 수능에서 미적분과 기하 등 높은 난이도의 수학 과목 '초고득점'을 해야 승산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영재고·과학고 학생이 의대로 진학하면 교육비를 전액 환수한다는 정부 방침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학교를 통해 의대로 진학하려던 학생들은 수능 정시 입학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특목고를 준비하던 입시학원 수업 방향이 '수능'으로 바뀌며 덩달아 학원가도 '의대 진학'으로 바뀐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학원에선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 유아도 의대 준비를 미리 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 때문에 임신과 함께 교육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는 자조적 목소리까지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키우고 있는 조모씨는 "무리를 해서라도 대치동에 전세를 얻어 들어갈지 고민 중"이라며 "서울대와 의대를 잘 보낸다는 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적응시키기 위해 미리 영어유치원 때부터 그룹을 형성해줘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20년째 대치동에서 의대 입시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강봉성 GL의대입시연구소 원장은 "최근 수시 입시에서는 교과 활동이 중요해져 영어유치원이나 유학을 통해 초등 저학년 때 영어를 수능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며 "의대를 갈 수 있는 친구들은 이를 바탕으로 수학을 초등학교 6학년 때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놓기 때문에 뒤늦게 이를 따라잡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뿐 아니라 성인들의 의대 준비 열기도 뜨겁다. 강 원장은"최근 대치동에는 30대 수험생들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AI(인공지능) 등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성인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안정적인 의사를 목표로 다시 수능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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