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로 클래식 대중화 이끈 ‘국민 테너’ 박인수 별세

김성현 기자 2023. 3.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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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박인수 前 서울대 음대 교수 별세
제자 사랑 각별해… 무료 레슨도

가수 이동원(1951~2021)과 함께 ‘향수’를 불러서 ‘국민 테너’로 불렸던 성악가 박인수(85) 전 서울대 교수가 1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시구(詩句)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 발매 이후 13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지금도 클래식 성악가와 대중 가수의 협업인 크로스오버의 대표적 명곡으로 꼽힌다.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생 때부터 과일 행상, 신문 배달을 하면서 고학했다.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뒤 대학 4학년 때인 1962년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전곡을 부르며 성악가로 데뷔했다. 당시 피아노를 연주했던 동기인 신수정(81)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학창 시절부터 미성(美聲)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독일 가곡을 연주할 때면 생각나는 목소리”라고 말했다. 1967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대 오디션에 합격한 건 지금도 한국 음악계에서 회자되는 일화다.

198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클래식 음악은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때문에 ‘향수’를 발표한 뒤인 1991년 국립오페라단 단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90~2000년 전국에서 2000회 이상 공연했고,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주역만 100여 차례 맡았다. 1990년대 ‘열린 음악회’(KBS)에도 단골 출연해서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데뷔 50주년이었던 2012년까지도 매년 50여 회씩 무대에 섰던 ‘영원한 현역’이었다.

각별한 제자 사랑으로도 유명해서 대학생과 강사들에게도 무료 개인 지도를 했다. 2003년 서울대에서 퇴임한 뒤 백석대 석좌교수로 옮긴 뒤에도 매주 두 차례씩 공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현역 가수와 대학 교수들도 그의 앞에서는 ‘계급장’을 떼고서 노래하는 제자로 돌아왔다. 그렇게 가르친 테너 이용훈·신동원·정호윤 등은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로 성장했다. 유족은 부인 안희복 전 한세대 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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