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1위 스위스]③ ‘문화 수도’ 바젤이 바이오헬스 허브로 성장 가능했던 5가지 이유

바젤(스위스)=이용성 국제부장 2023. 3.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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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3국 국경에 위치
세계 3위, 5위 제약사 로슈·노바티스 본사 위치
법인세율 韓 절반, 전문가 수 파리·런던 능가”
아트바젤 열리는 ‘스위스 문화예술 수도’

“스위스에서 아침식사 후 차를 몰고 프랑스로 이동해 친구와 와인을 곁들여 점심을 먹고 독일로 가서 사업 파트너와 슈바인학센(독일식 족발)에 맥주를 한잔 걸치고 다시 스위스 숙소로 돌아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위스 숙소가 있는 곳이 바젤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구 약 17만명으로 취리히와 제네바에 이어 스위스 제3의 도시인 바젤은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의 3국 국경이 접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BAK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바젤 지역에 근무 중인 관련 분야 전문가는 3만2500명으로 파리(2만650명)와 뮌헨(1만7250명), 런던(4250명)보다 많았다. /디자인 김윤

바젤 공항은 인근 프랑스 영토(뮐루즈)에 위치해 뮐루즈와 공동으로 운영한다. 바젤의 바디셔(Basel Badischer) 철도역은 독일 국영 철도회사인 도이치반 직영으로 독일의 간선상에 위치한다.

은퇴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고향이기도 한 바젤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구시가가 있는 도시 중 하나이며, 각각 ‘세계 최대’ 타이틀을 단 보석·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와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이 열리는 예술과 전시의 도시다.

바젤에는 1661년에 개관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미술관으로 알려진 바젤 시립 미술관과 독창적인 현대미술 기획전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바이엘러재단 미술관 등 수준 높은 미술관과 박물관도 많이 있다. 바젤이 ‘스위스의 문화 수도’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달 14일 취리히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이동해 바젤에 도착했다. 취리히에서는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터널 몇 개 통과했다고 거짓말처럼 맑게 갰다.

‘문화예술의 도시’ 이미지에 가려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바젤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바이오헬스 산업의 글로벌 허브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 “바이오헬스의 세계 시장 규모가 2600조원에 달하고 성장 잠재력이 크다”며 “의료·건강·돌봄 서비스 등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시장 규모가 2600조원에 달하는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흔히 ‘바젤 에어리어(Basel Area)’로 불리는 바젤과 인근 지역은 미국 동부의 ‘보스턴 클러스터’와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스턴과 인근 지역에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과 연구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하버드대학 등 주요 대학과 벤처기업 등이 몰려 있다.

스위스의 문화수도 바젤은 어떻게 유럽을 대표하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유를 정리했다.

노란 전차가 다니는 바젤의 거리 풍경. /이용성 기자

1. 엎어지면 獨·佛, 최고의 입지

‘바젤 에어리어’는 바젤-슈타트, 바젤-란트샤프트, 쥐라의 3개 자치주(캔톤)을 포함하는 1393㎢ 면적의 지역을 뜻한다. 인구는 약 56만명이다. 유럽의 양대 경제대국인 독일·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건 이 지역의 최대 강점이다.

핵심 시장과 가깝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국경을 초월한 인재 유치 경쟁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바젤 에어리어에 있는 직장으로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이들의 수는 2021년 기준으로 각각 약 4만800명, 2만5900명이나 됐다. 바젤 중앙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는 기차로 3시간 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는 2시간 50분이면 닿는다.

2. 둘이 합쳐 매출 155조원, 로슈·노바티스의 존재감

바젤 에어리어는 세계적인 제약기업인 노바티스(Novartis)와 로슈(Roche)의 본사 소재지이며, 200개 이상의 연구기관, 3만2000명 이상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중심지다.

1896년에 창업해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슈는 진단기기 분야 세계 1위다.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로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H1N1)의 공포를 잠재우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은 628억 스위스프랑(약 88조5600억원)에 달했다.

노바티스는 세계 최초의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 항암제인 킴리아,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 등을 개발했다.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세계 최초로 혈액암 분야에 도입한 것도 노바티스다. 노바티스의 지난해 매출은 505억4000만 달러(약 66조7600억원)이다.

27일 글로벌 제약 전문지 피어스파마가 조사한 2021년 전 세계 제약업체 순위(매출 기준)에서 로슈와 노바티스는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1위와 2위는 미국 존슨앤존슨(J&J)과 화이자가, 4위는 미국 애브비가 차지했다. 글로벌 제약업계 톱5를 미국과 스위스가 양분하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 바젤 라인강변에 있는 로슈의 본사 건물.

3. 전문가 수 런던의 8배, 밀도 있는 바이오헬스 생태계

바젤 에어리어에는 700개가 넘는 바이오헬스 기업과 1000여 개의 연구조직이 둥지를 틀고 있다. 바젤에 기반을 둔 경제연구소 BAK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바젤 지역에 근무 중인 관련 분야 전문가는 3만2500명으로 파리(2만650명)와 뮌헨(1만7250명), 런던(4250명)보다 많았다.

바젤투자청이 조성한 바젤 바이오 클러스터는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와 벤처 투자자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 바이오벤처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바젤런치(Basel Launch)’를 통해 최대 50만 스위스프랑(약 6억 8340만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고, 제약사 벤처투자자 로펌 등을 연계한다. 2018년 첫 스타트업 선별 이후, 2021년까지 3년간 18개의 혁신 스타트업이 발굴됐고, 8개 기업이 대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4. 낮은 법인세율과 경쟁력 있는 임대료

바젤의 경우 법인세 실효세율은 13.04% 정도로 독일(약 30%)의 절반 수준이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으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최대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스위스의 평균 법인세율은 지난해 기준 약 14.7%다. 참고로 한국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2%)보다 높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서비스 회사 존스랑라살(JLL)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바젤의 연평균 임대료는 평당 190스위스프랑(약 88만6500원)~450스위스프랑(약 210만원)에 형성돼 있다.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취리히와 제네바에 비하면 상위 가격 기준으로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바젤 시청사. /이용성 기자

5. ‘문화예술의 도시’의 매력

어떤 도시의 문화예술 수준은 그곳의 매력과 직결된다. 매력적인 도시에는 인재가 몰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본다면 연중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바젤의 이미지가 세계적인 바이오헬스 허브로의 성장을 도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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