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퍼지자… 소련 당국, 금지령까지 내렸다

정지섭 기자 2023. 3. 1.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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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엔지니어 파지트노프
1984년 게임 만들자 세계적 인기
공산당에 실망… 美 이주해 창업
이달 말 탄생비화 담은 영화 나와
2023년 3월 31일 애플TV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테트리스'의 한 장면. /애플TV

1980~1990년대 전자오락실을 벗삼았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테트리스는 인생 게임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의 이치를 몸소 체득했다. ‘잘못된 판단이 순식간에 일을 그르친다’ ‘쉬워보인다고 속도 내지 말라’ ‘무작정 기다리는 게 방법은 아니다’처럼 당연한 진리를 가르쳐준 게임이었다. 철의 장막이 걷히기 전부터 접한 러시아의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대다수 한국인에겐 막연히 ‘소련제 전자오락’으로만 알려졌던 테트리스 발명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68)의 삶과 게임 탄생 비화가 영화로 나왔다. 31일 OTT 플랫폼 애플TV에 공개되는 영화 ‘테트리스’다. 파지트노프가 네덜란드의 게임 디자이너 헹크 로저스(70)와 함께 1996년 설립한 테트리스 컴퍼니는 최근 영화 공개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비디오게임이 되기까지 여정을 그려낸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테트리스의 판권을 둘러싸고 구소련 정권 수뇌부와 서구 사업가들 사이에서 치밀하게 전개되던 물밑싸움을 그린다. 러시아 출신 니키타 예프레모프(35)와 영국 출신 태런 에저턴(34)이 각각 파지트노프와 로저스를 연기했다. 더 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이 이번 작품 공개를 계기로 테트리스 탄생의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1984년 소련 과학원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던 파지트노프는 자신이 즐기던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서로 다른 모양의 퍼즐 조각을 맞춰 없애는 방식의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다. 퍼즐 조각이 사각형으로 이뤄져서 그리스어로 넷이라는 뜻의 ‘테트라’와 자신이 즐겨하던 운동인 ‘테니스’를 합성해 테트리스로 명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동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플로피디스크에 저장돼 급속도로 확산됐다. 근로자들이 게임에 정신이 팔려 나태해지자 공산당 당국이 테트리스 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서방에도 암암리에 이 게임의 존재가 알려졌고, 흥행 대박을 예감한 서방 게임 유통 업자들이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소련 측과 접촉에 나섰다. 하지만, 공산당이 모든 걸 쥐락펴락하던 소련 체제에 제대로 된 저작권 개념은 없었다. 1988년 2월 헝가리 출신 컴퓨터 프로그램 유통업자인 로버트 슈타인이 소련의 국영 수출입 기업 엘로그와 10년간 판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지만, 정작 파지트노프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테트리스의 인기가 치솟고, 판권과 저작권을 두고 혼선이 가중되면서 글로벌 판권 경쟁은 가열됐다. 로저스도 모스크바로 날아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과 극비리 협상을 벌여 정식 판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파지트노프는 자신이 애써 개발한 콘텐츠가 국유재산으로 취급되며 공산당 정권 돈벌이에 활용되는 데 큰 회의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1월 게임회사 홀로그램 바이트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그는 이듬해 소련이 붕괴되자 미국으로 이주했고, 로저스와 테트리스 컴퍼니를 공동 창업했다. 그는 2002년이 돼서야 테트리스에 대한 저작자로서 권리를 완전히 회복했다.

좀처럼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파지트노프는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는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영혼 없는 미친 독재자’라 부르면서 “푸틴과 그의 혐오스러운 체제는 무너지고 우크라이나와, 바라건대 러시아에도 일상적 평화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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