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동이

김동규 김해대 강사 2023. 3.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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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김해대 강사

연구자이자 강사인 필자에게 방학은 딴청을 부리기에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논문과 논문 사이에 해찰을 부린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그 기간에 엔도 슈샤쿠의 ‘침묵’, 김훈의 ‘하얼빈’,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나의 해찰 거리였다. 그중 압권은 2010년에 방송된 사극 ‘동이’ 몰아보기를 한 것이다. 대략 회당 60분으로 계산해서 60회를 보았다면, 3600분에 달하는 시간을 밤을 낮으로 삼아 보았다.

숙종 때를 더듬어 가면 우리는 ‘희빈 장씨’ 장옥정을 쉬이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즐겨보는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최태성 선생은 장희빈(張禧嬪)을 ‘신데렐라’로 소개한다. 일개 궁녀에서 중전으로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 어찌 그러한 소개가 부당하겠는가. 그는 숙종실록의 기록을 인용한다.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며 그의 미모를 추켜세우고 실록 어디에도 이러한 기록이 없었음도 상기시킨다. 미국판 버전은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이 되어 나오는 ‘귀여운 여인(원제는 Pretty Woman)’쯤 된다고 할까. 대사 중 일부가 기억된다. ‘Cindefuckin’rella!(‘아놔 신데렐라!’로 일단 해석해 둔다. 하지만 독자마다 분분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장희빈에게 홀딱 빠진 숙종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어머니 명성황후의 출궁 명령이 떨어진다. 숙종실록은 이렇게 그의 됨됨이를 밝히고 있다. ‘그 사람은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다. 주상이 평일에도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 게 만약 꾐을 받게 되면 국가의 화가 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숙종의 두 번째 정실부인인 인현왕후는 다시금 장희빈을 불러들이고 명성황후의 예언은 적중한다. 그는 온갖 사술(邪術)과 악행을 일삼으며 권력을 앞세워 내명부(內命婦)는 물론 조정을 쥐락펴락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며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라 했던가. 숙종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던 장희빈은 끝내 ‘옥보(玉寶,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사용하던 도장인데 왕 왕비 세자 그리고 세자빈이 갖는다)를 깨뜨리고 자진(自盡)할 것’을 명받게 된다.

숙종은 암행에 나서 ‘천동이’를 만나게 된다. 동이는 천인 출신으로 검계(劍契, 조선 시대에 무뢰배(無賴輩)가 결성해서 사회를 어지럽혔던 폭력조직)의 수장인 오작인(仵作人, 지방 관아에 속하여 수령이 임검할 때에 시체를 주워 맞추는 일을 하던 하인) 최효원의 여식이다. 그의 아비와 오빠는 양반의 계략에 빠져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동이는 장악원(궁중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던 부서)의 노비로 입궁하게 되고, 감찰부 나인이 된다. 그러다 숙종의 승은(承恩)을 입게 되고, 드디어 숙종의 아들을 낳아 숙빈(淑嬪)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동이는 장희빈의 온갖 계략과 음해를 무릅쓰고 희빈 장씨의 비밀을 밝혀내고 마침내 장씨의 아들 세자를 경종의 자리에, 그리고 자기 아들을 영조의 자리에 앉게 한다. 신분이 드러난 숙빈 최동이는 병조참판 장무열의 계략을 무력화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 영감 같지 않다 했던 내 말을 기억하십니까? 눈앞에 놓인 이익만을 좇아 무엇이든 서슴지 않으면서 그런 것이 힘이고 그런 것이 정치다? 아니요, 영감. 그런 것을 벌하는 것이 진짜 정치입니다. 정치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구요? 천만에요. 정치야말로 가장 진심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영감께선 무엇이 진짜 힘인지를 보시게 될 겁니다.”

그는 모든 편한 삶을 뒤로하고 사가(私家)로 나가, 힘든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보살피며 아들 영조가 자신의 가르침대로 정치를 하길 기대한다.

최근 시중에서 ‘12시송’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12시에 만나요. 주가조작. 3300원에 8만주…도이치모터스.” 목탁, 아카펠라, 클럽, 메탈, 안철수의 한국어 버전에 이어 베트남어와 중국어, 일본어 버전까지 나와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과연 우리는 드라마에서만 ‘동이’를 만나야 할까? 그의 애잔한 해금 소리가 마음을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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