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슬의 B터뷰]"CPR받던 아빠와 그 옆 신생아"…19명 살린 '생명손'

이비슬 기자 조태형 기자 2023. 2. 28.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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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차' 신미애 구급대장…'골든타임' 잡아 하트세이버 19개
"일할 때 감정에 빠지면 안돼"…남몰래 삼킨 '트라우마'

[편집자주] 모두가 열광하는 주인공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분들이 B터뷰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조태형 기자 = 직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장이 멎는 듯 보여서다. 모니터 속 바이탈사인 가로선 끝에선 언제나 원치 않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손끝에 고요가 찾아오면 죄책감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손이 붓고 100m를 질주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와도 생사의 현장에는 종종 자비가 없다.

신미애 구급대장(47)은 "환자 가족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대처에서 누락한 것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며 "심폐소생술(CPR)로 심전도상에 멈춰있는 리듬이 돌아올 때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고 말했다.

◇ "갈비뼈가 부러져도 살아만 주기를"

신 구급대장은 올해로 24년 차다. 그동안 CPR했던 환자 중 19명이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해 새 삶을 산다. 전산 시스템을 몇 달이고 들여다보며 환자의 퇴원을 기다리는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 환자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늑골 위 심장을 압박하다 보면 '따다닥'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며 "골절 사실을 알면서도 구급대원은 심장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CPR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리고 받는 '하트세이버' 인증은 구급대원에게 최고의 영예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환자 호흡이 돌아와야 하며 후유증 없이 퇴원한 경우 소방재난본부가 의사 소견서와 심사를 종합해 매달 수여한다.

신미애 구급대장이 하트세이버 19회, 브레인세이버 8회, 트라우마 세이버 2회 경력의 배지를 보여주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그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며 "소방서 복귀 도중에도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원해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그가 한 해 만나는 CPR 환자만 20~30명에 달한다.

CPR은 구급대원이 사력을 환자의 심장에 실어 보내는 일이다. 5~6㎝ 깊이로 1초에 한 번씩, 2분만 압력을 지속하면 성인 남성도 땀범벅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신 구급대장은 "혈액이 4분만 돌지 않아도 뇌가 멈추기 시작하기 때문에 현장에 최대한 일찍 도착해야 한다"며 "20분 가까이 CPR을 해도 호흡이 돌아오지 않으면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설명했다.

◇ 골든타임과 불청객

"출동이에요"

건물에 불을 지르려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였다. 신 구급대장과 대화 도중 서울 송파소방서 종합운동장119안전센터에 출동 신호가 울렸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모두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신속하고 침착한 대원들의 움직임은 긴박한 사이렌 소리를 조용히 압도했다.

처음 타본 구급차는 차선을 좌우로 오가며 쏜살같이 달렸다. 파도 위에 올라탄 듯 넘실댔다. 뱃멀미 비슷했다. 신 구급대장은 "병원 도착 전까지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CPR 환자에게서 손을 뗄 수 없다"며 "몸을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 구급대원이 어깨를 부딪히거나 다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싱글 사이즈 침대 크기의 내부 공간엔 수액, 분만세트, 산소 소생기, 심전도 장치가 테트리스처럼 끼워맞춰져 있었다. 아이들의 사진이나 메모지가 붙어있을 거라 상상했던 신 구급대장의 공간이 이곳이었다.

신미애 구급대장이 21일 서울 송파소방서 종합운동장119안전센터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1000만명 가까운 인구가 사는 서울에는 이같은 소방 구급차가 약 150대뿐이다. 병원까지 태워달라거나 타박상 수준에도 신고하는 경우 구급차가 필요한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친다.

실제 그를 만난 날 서울 시내 구급차가 모두 1544번 출동했지만 이 가운데 674건(44%)은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지 않은 신고였다. 신 구급대장은 "반창고를 붙일 정도의 상처였는데 신고를 하셔서 이송 거절을 했던 적도 있다"며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현장 도착 전 사고 없이 상황이 종료됐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8년 차 정다정 소방교는 신 구급대장을 두고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무거운 환자 이송에 거리낌이 없으시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선배"라고 귀띔했다.

◇ "삼킨 감정 무너질까 두렵기도"

신 구급대장은 지난 24년간 하트세이버 19개 외에 뇌졸중과 중증외상환자들을 신속하게 응급처치한 성과로 브레인세이버 8개와 트라우마세이버 2개를 받았다. 그의 연차와 경력은 전국 구급대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도다.

그는 대화 내내 입버릇처럼 "일할 때 감정에 빠지면 안 된다"고 했다. 촌각을 다투는 현장에서 매번 유가족을 따라 울어버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현장을 잊기 위해 일부러 애쓴다고도 했다. 이겨내지 못하는 구급대원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다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신 구급대장의 말과 기억은 종종 뿌옇게 낀 안개 같았다. 한 가정집에서 CPR을 받는 아빠와 그 옆에 있던 신생아를 봤을 때 울컥했다는 설명도 첫 만남 며칠이 지난 뒤 서너 번의 질문 끝에 조심스럽게 끄집어 올렸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묻어둔 것이었다.

신미애 구급대장이 21일 서울 송파소방서 종합운동장119안전센터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신 구급대장은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면 구급활동을 할 수 없다"며 "주변에선 '독하다'고 하는데 일부러 기피한 감정들이 저도 모르게 쌓이다가 한 번에 터질까 봐 무서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바닷가에 살았던 그는 잔잔한 바다보다 굽이치는 산능선이 항상 더 좋았다. 일렁이며 파도치는 바다가 안심이 됐다. 신 구급대장이 올라탄 구급차는 오늘도 넘실대는 파도 위를 달린다. 직선을 끊으러.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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