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요정의 기묘한 모험] 곤충을 좀비로 만드는 '이 버섯'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2023. 2.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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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균에게 지배당한 사마귀 사체. 박상영 제공

지난 여름 장마철, 버섯 촬영을 위해 포천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길에 도착했어요. 촬영을 위해 땅바닥을 정리하던 중, 낙엽 사이로 한 마리의 죽은 사마귀가 보였습니다. 외피 사이로 부푼 하얀 솜뭉치가 드러났어요. 곤충에 기생하는 버섯인 ‘백강균’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죠.

※전문가 없이 혼자서 절대로 야생 버섯을 채취하거나 섭취하지 마세요.

● 곤충을 조종하는 버섯

동충하초(冬蟲夏草)는 한자어로 겨울엔 벌레, 여름엔 풀(버섯)이라는 뜻이에요. 이름처럼 동충하초는 월동 중인 번데기나 곤충에 기생하며 자라는 버섯이에요. 기생하며 자란다니, 곤충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죠. 동충하초의 포자는 산성 성분인 효소로 곤충의 딱딱한 껍데기를 녹이고 파고들어, 곤충 몸속을 균사로 꽉 채우며 서서히 곤충을 소화합니다.

동충하초는 기생하는 곤충의 팔과 다리를 움직여 자기 생존에 유리한 환경으로 가도록 조종합니다. 그야말로 좀비가 되는 거예요. 축축한 낙엽 사이, 또는 나뭇가지 위 같이 기생균이 좋아하는 장소에 다다르면 곤충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됩니다.

좌: 유충긴목구형동충하초(동충하초는 하얀 곰팡이 같은 모습의 백강균과는 달리 뚜렷한 자실체가 드러난다), 우: 죽은 장수말벌에 기생 중인 백강균 (필자가 포천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길에서 발견한 백강균의 모습. 장수말벌에 기생하였다.) 박상영 제공

곤충 내부에 가득 찬 동충하초의 균사들은 곤충의 외피 사이로 포자를 형성하는 기관인 자실체(버섯의 몸체)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바로 동충하초죠. ‘자좌’라고 부르는 동충하초의 자실체는 곤충 외피 밖으로 뻗어나와 셀 수 없는 포자들을 바람에 뿌리며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사진 속 사마귀를 지배한 백강균 또한 동충하초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백강균의 하얀 곰팡이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동충하초는 눈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버섯 몸체를 형성합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동충하초는 오로지 한 종만 특정해서 감염시킬 수 있는 ‘기주특이성’을 나타내요. 저에게는 곤충들의 모습이 비슷하기만 한데, 버섯은 이렇게나 잘 구별하다니. 신기할 따름이지요.

● 나무를 지배하는 버섯

뽕나무버섯부치 : 아밀라리아 뿌리썩음병을 일으키는 나무 기생성 버섯 중 하나. 나무에겐 끔찍한 병원균이지만 사람에게는 그저 맛있는 식용버섯일 뿐이다. 박상영 제공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뽕나무버섯부치’를 비롯한 뽕나무버섯속이 있죠. 이들은 나무에게 ‘아밀라리아 뿌리썩음병’이라는 골치 아픈 병원균이자, 우리에겐 ‘가다바리버섯’, ‘글쿠버섯’ 같은 방언으로 불리며 맛있는 식용 버섯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파상땅해파리버섯’은 ‘리지나 뿌리썩음병’이라고 불리는 기생버섯인데, 침엽수림의 불탄 자리에 발생하는 버섯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버섯을 얻으려 해변가의 소나무림을 초토화시킨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해변가에서 불 피우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죠.

좌 - 덧부치버섯 (절구버섯을 비롯한 무당버섯류에 기생하는 기생성버섯. 갓 표면 조직이 갈색의 포자분말로 변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 - 붉은점박이광대버섯 (나무와 공생하는 공생성 버섯. 독버섯인 마귀광대버섯과 흡사하게 생겼으나 식용할 수 있는 버섯이다.) 박상영 제공

심지어는 같은 버섯류에 기생하는 버섯도 있습니다. 버섯을 찾으러 등산길을 오르다 보면 간혹 썩은 것처럼 보이는 거무잡잡한 버섯 위에 흰색 버섯이 돋아난 것을 볼 수 있어요. ‘덧부치버섯’의 모습입니다. 덧부치버섯은 무당버섯류에 기생하는데, 갓의 조직이 갈색 분말 형태의 포자로 바람에 휘날리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 열매를 잡아먹는 버섯

오디양주잔버섯 : 뽕나무의 암꽃을 감염시키는 기생성 버섯. 이 버섯에 감염된 암꽃은 후에 흰색의 단단한 기형 오디를 만들어낸다. 박상영 제공

나무뿐만 아니라, 열매에 기생하는 버섯도 있습니다. ‘오디균핵병’으로 불리는 ‘오디양주잔버섯’이죠. 이 버섯은 뽕나무 암꽃이 피면 포자를 안착시켜 꽃을 감염시키고, 감염된 꽃은 흰색의 딱딱한 감염된 오디를 만들어 냅니다. 감염된 오디는 땅에 떨어지고, 이듬해 뽕나무 암꽃이 필 시기가 되면 감염된 오디에서 또 다른 오디양주잔버섯이 발생해요. 이 때문에 오디 재배 농가에서는 오디양주잔버섯이 악몽 같은 존재로 취급받고 있어요.

4화에 걸쳐 부생균, 공생균, 기생균을 소개하며 생태계에서 버섯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 드렸습니다. 버섯을 쉽게 발견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종인지 제대로 동정하기 위해선 버섯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주로 어떤 영양분을 섭취하며 사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다음 화에서 또 만나요!

점질버섯 : 썩은 나뭇가지나 고사목에서 발생하는 목재 부후성 버섯. 대가 미끈거리는 점액으로 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상영 제공

※필자소개

박상영(생태사진작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버섯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청년 생태사진작가. 한국농수산대학 버섯학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2월 15일, [버섯요정의 기묘한 모험] 곤충을 좀비로 만든다?! 기생균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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