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고향 친구들 연락 끊겨 걱정…전쟁 하루빨리 끝나서 뛰어놀고 싶어요”
한글로 쓴 동요 가사엔 희망 가득
친구들과 까르르 웃다가도 ‘숙연’
포탄 장면 목격 트라우마에 불안
죽음 공포보다 그리움을 더 느껴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고려인 5세 황드미트리군(9)은 한글 연습장에 동요 ‘문어의 꿈’ 가사를 빼곡하게 적어놨다. ‘문어의 꿈’은 황군이 한국에서 처음 배운 동요이자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황군은 지난해 12월7일 한국에 왔다. 3남매 중 막내인 황군은 아버지 박에쁘게니(52), 어머니 황나탈리아(48)와 함께였다. 결혼해 분가한 형(26)과 누나(24)는 지난해 4월, 7월 먼저 입국했다. 이들은 모두 광주고려인마을의 항공권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황군은 우크라이나 셰브첸코 지역의 한 외곽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국적은 우즈베키스탄이다. 황군 부모가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황군은 마음껏 뛰어놀며 자랐다. 평온했던 일상이 바뀐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였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하나둘 떠났다. 황군 가족도 피란길에 올랐다.
지난 17일 광산구 고려인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황군은 피란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황군 가족은 고려인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황군은 원룸에서 부모와 살고 있다. 다음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황군은 한글 공부에 열심이다. 황군은 고려인종합지원센터에서 한글 수업을 같이 받는 친구들과 친하다고 했다. 이날 까르르 웃고 떠들던 황군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고향 친구들이랑 연락이 갑자기 끊겼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서 친구들, 강아지들과 뛰어놀고 싶어요.”
고향이 그리운 것은 고려인 5세 최즐라타양(11)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지역에 살던 최양은 지난해 4월 입국했다. 최양은 다섯 살 무렵 한국으로 돈 벌러 온 부모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한국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국에 온 지 약 5개월 만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갔지만 최양은 부모가 있는 고려인마을에 남았다.
우크라이나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최양은 아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듯했다.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최양은 좀처럼 늘지 않는 한국어 실력을 제외하면 이곳 생활도 좋다고 했다. 최양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걱정되고 그립다. 그럴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7일과 20일 고려인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고려인 자녀 10여명은 대부분 전쟁이 불러온 비극과 한국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 정착하려는 부모와 달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기억과 추억이 생생해 그리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머지않아 새로운 터전과 문화에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고향을 떠난 아이들이 전쟁 트라우마 등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심리치료 지원 등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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