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싶은 대로 들리나요 당신의 뇌가 범인입니다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3. 2. 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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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하는 뇌 다이애나 도이치 지음, 박정미·박종화 옮김 에이도스 펴냄, 2만2000원

흔히 자신이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사람을 두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고 한다. 신념이 확고해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곡해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 같은 확증편향은 나약한 감정 상태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흔히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신체 구조를 따져보면 우리에게 듣는 행위는 굉장히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시각과 비교하면 청각의 부실함은 극명해진다. 눈에는 한쪽에만 1억2600만개의 광수용체가 있다. 또 대뇌피질의 3분의 1 정도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여한다. 이에 비해 청각 수용체는 1만5000개 정도에 불과하고, 그중 뇌와 연결된 수용체는 3500개 정도에 그친다. 또한 소리는 물리적 특성으로 인해 수많은 물체에 반사돼 복잡한 파형을 그리며 귀에 전달되는 만큼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행위가 단지 지적 능력이나 감정적 상태에 좌우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곡하는 뇌'의 저자이자 음악심리학자인 다이애나 도이치는 이 같은 현상이 청각적 착각 현상인 '착청(錯聽)'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착청은 말 그대로 '청각의 착각'이라는 뜻으로, 귀와 뇌가 소리를 인식하는 방식 때문에 실제로 나지 않은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착청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8년 미국에서 논란이 된 '팅키 윙키'라는 인형이 있다. 한국에서는 '보라돌이'로 잘 알려진 이 인형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아온 캐릭터다. 문제는 인형에서 나는 소리였다. 인형의 왼쪽 팔을 잡아당기면 "나는 총을 갖고 있어, 도망가(I got a gun, run away)"라고 말한다는 증언이 속출한 것이다. 아이들이 이런 장난감을 갖고 놀게 할 수 없다며 부모들은 무리를 지어 제조사에 판매 중단을 요구했다. 사실 인형이 말하고 있는 것이 TV 프로그램에서 따온 "어게인, 어게인(Again, Again)"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다르게 들은 사람들에게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나문희의 첫사랑'이라는 노래 가사가 사실 '너무 휘어졌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놀라는 이들이 많은 것도 착청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

도이치는 이 현상들이 뇌가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평소 신념이나 정서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는 무질서한 음에서 의미를 찾고 질서를 찾아 인식하기도 한다. 저자는 독자가 이 현상을 공감할 수 있게 책 곳곳에 음원 파일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심었다.

그것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음을 만들어서 듣고, 끊어진 음들을 연속하는 것으로 듣고, 이미 경험하고 학습한 것에 비추어 현실을 재조직하고 왜곡하면서 듣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 인간의 뇌가 소리를 어떻게 지각하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로 삼게 만든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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