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원고 쓴 책상, 손때 묻은 안경…시대의 스승이 남긴 흔적

김예나 2023. 2. 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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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 내일 개막
'동갑' 미키마우스 좋아하기도…대표 저서 초판본 포함 여러 유품 선보여
고 이어령 추모 특별전 '이어령의 서'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 故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3.2.24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책상 위에는 탁상용 달력, 메모지, 필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진 게 없다.

벽면에 새겨진 한 문장.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한 발 한 발 가보는 것, 그 재미로 살았어요."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세상과 이별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1월까지 이 책상 위에서 글을 썼다. 몸이 쇠약해지며 컴퓨터를 쓰는 게 힘들어지자 다시 연필과 펜을 잡은 것이다.

마지막 원고인 '눈물 한 방울'에 실린 글을 비롯해 총 147편이 이 책상 위에서 완성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이 24일 공개한 이 전 장관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序)'는 문학 평론가, 작가, 언론인, 문화 기획자, 교수 등 경계 없는 삶을 살아온 고인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책이나 논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서문'(序文)에서 따온 전시 제목 '서'는 시작을 뜻한다.

갈윤주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가운데 '끝이 없어, 이어지고 펼쳐질 뿐'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전시에서는 영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고 이어령 선생의 생전 물품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故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序)'가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에서 개막했다. 사진은 선생이 생전 사용했던 물품들. 가운데는 이화여대 재직시절 들었던 가방. 2023.2.24 mjkang@yna.co.kr

전시 공간 가운데 '창조의 서재'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최고 명장면인 '굴렁쇠'를 모티브로 해 꾸며졌다.

큰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소년이 굴렀던 굴렁쇠는 당시 전 세계에 큰 인상을 남겼다. 당시 총괄 기획을 맡아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뽐냈던 이가 이 전 장관이다.

굴렁쇠처럼 둥근 원 3개로 구획된 전시 공간에는 고인이 평소 쓰던 물건이 놓였다.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사용한 명패부터 이화여대 재직 시절 들고 다닌 가방, '이화10년 발전후원회' 회원증 카드, 안경 등까지 모두 이 전 장관이 손때가 묻은 물건이다.

생전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듯 각기 다른 소속과 직책의 명함도 눈에 띈다.

시대의 탁월한 지성이자 스승으로 불리던 그의 평소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도 많다.

이 전 장관은 손이 닿는 곳에 필기구를 뒀다고 한다. 집안 어디에나 '글 쓸 준비'가 돼 있던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층 방과 거실 등에 있던 필통 5개를 볼 수 있다.

고 이어령 육필원고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 故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에서 관람객들이 육필원고 등을 살펴보고 있다. 2023.2.24 mjkang@yna.co.kr

이동식저장장치(USB)에는 '22분 52초 출연' 등이 적혀 있어 평소 꼼꼼했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시대 정신을 논하던 고인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미키마우스 캐릭터 물품도 있다. 도서관 관계자는 "선생님은 당신과 출생연도가 같은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를 좋아하셨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굴렁쇠를 채운 건 고인이 마지막으로 쓴 책상과 의자, 각종 소품이다.

부인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더는 컴퓨터를 쓸 수 없어 책상을 가져다 놓고 '눈물 한 방울'을 쓰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책상에 있던 메모지도 그대로"라며 한참 동안 책상을 바라봤다.

어린이 책 66권을 포함해 단독 저서 185권을 빼곡히 채운 공간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곳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저항의 문학'(1959),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공간의 기호학'(2000), '너 어디에서 왔니'(2020) 등 5권의 초판본도 볼 수 있다.

고 이어령 1주기 추모 '이어령의 서'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막한 故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에서 관람객들이 저서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3.2.24 mjkang@yna.co.kr

갈 사서는 "20대부터 따지면 한 해 평균 2.7권의 책을 쓰신 셈인데, 한 사람이 이 정도의 책을 썼다는 게 대단하다"며 이 전 장관이 남긴 말과 글, 책의 '힘'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날 열린 개막식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어느 공간, 어느 분야에서도 독보적이었고 탁월한 면모를 보였던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이 전 장관을 추모했다.

박 장관은 "고인의 삶은 상상력의 서사시였다"고 언급하며 "오늘날 K-컬처, K-아트 등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 기반을 만들어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전시는 25일부터 4월 23일까지 열린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저서 초판본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강인숙 영인문학관장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故 이어령 1주기 추모 특별전시 '이어령의 서'를 찾아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대표저서 초판본을 살펴보고 있다. 2023.2.24 mj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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