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한꺼풀 벗기면 다 수학… 변화 패턴 찾아내 예측하는 힘 길러준다”[M 인터뷰]

박정경 기자 2023. 2.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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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AI 기반’ 깨봉수학 만든 조봉한 대표
수학, 세상변화 수·식으로 표현
언어처럼 이해 차원서 접근해야
개념·원리 확장해 깨우치는 것
기계적 문제풀이 내몰리다보니
학년 올라갈수록 ‘수포자’ 늘어
지금 수능, 바닷가 모래 세는 격
AI 시대, 문제해결·창의력 필요
외우는 습관땐 쓸모없는 존재돼
곱셈보고 직사각형 떠올려 봐라
원리알면 구구단 외울 필요없어
인공지능 수학 콘텐츠 플랫폼 ‘깨봉수학’의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가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등비수열의 합을 식으로 나타낸 등비급수 문제를 상징하는 ‘샌드위치 5등분 하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 대표는 공식을 외우지 말고 문제 핵심을 파악해서 쉬운 것들의 더하기·빼기를 통해 답을 쉽게 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김호웅 기자

챗GPT(Cha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인공지능 대화 서비스) 열풍이 거세지면서 신학기를 맞이하는 교육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지식 모음집을 넘어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대화하고 글쓰기·작곡 등 창작물을 내놓는 수준에 도달하자 당장 교육현장에선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난감해 하고 있다. 국내 1세대 AI연구자이자 금융계에서 맞춤형 금융 상품을 만드는 AI전문가로 일하다 온라인 수학 콘텐츠 플랫폼 ‘깨봉수학’을 만든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는 챗GPT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계산기나 휴대전화·자동차가 등장한 후 이것을 못 쓰게 만들지 못했듯 챗GPT의 사용을 막을 수는 없다”며 “이제는 AI를 잘 활용하고 더 나아가 AI가 할 수 없는 AI를 뛰어넘는 능력, 즉 사람의 ‘고유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AI시대에 무엇보다 ‘수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존 수학교육의 틀을 깨뜨리는 콘텐츠로 업계의 주목을 받는 그는 “인공지능은 한 꺼풀 벗기면 다 수학”이라며 “수학은 추상화된 학문으로 변화와 패턴을 파악해 예측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급변하는 AI 시대에 모든 영역에 걸쳐 필요한 능력의 기본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와 인터뷰는 지난 2월 13일 서울 강남구 ‘깨봉수학’ 본사에서 진행됐다.

―‘구구단을 외우지 말라’라는 주장은 무슨 뜻인가.

“외우는 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기계가 하는 일이다. 상상력·깨우침·논리력과 같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능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외우는 것이다. 외우면 똑똑해질 기회를 잃어버린다. 열심히 무작정 외운 사람보다 그냥 놀면서 생각하는 것이 낫다. 외우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는 순간 AI 시대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구구단을 절대 외우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구구단이 수학을 외우는 습관으로 만드는 첫 번째 독약이기 때문이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어떻게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나.

“‘9×7이 얼마니?’라고 물으면 구구단을 외운 사람들은 기계처럼 바로 답을 말한다. 물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은 같다. 그렇지만 외운 것을 답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사람과 기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이런 방식에서 사람이 기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외우지 않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까. 곱하기는 면적을 의미한다. 곱하기를 보고 직사각형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가르쳐보자. 또 9를 보면 가까운 숫자인 10을 떠올리도록 훈련시켜보자. ‘9×7’을 ‘10×7’로 바꾸면 훨씬 쉽고 이미지로 떠올리면 바로 그려진다. 9는 10보다 1개가 적은 수로 한 줄에 1개씩 총 7개가 부족하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면 구구단을 힘들게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다.”

―한 자리 숫자야 그렇다쳐도, 일례로 ‘259378×403212=?’와 같은 문제는 어떻게 풀어내나.

“구구단을 외운 사람은 하나하나 무조건 외워서 풀겠지. 하지만 사람은 이 문제를 보고 곧바로 어림잡을 수 있어야 한다. 앞의 수는 ‘25만’정도, 뒤의 수는 ‘40만’정도. 25와 4는 곱하면 백. 그럼 ‘십백만만’, 즉 ‘천억 정도 되겠구나’하고 어림하는 거다. 이건 기계가 못하는 능력이다. 사람이 똑똑한 이유는 이런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계산기에 일을 시키는 존재다. 목표 세팅이 잘못되면 헛고생만 하면서 기계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수학 시험의 가장 큰 문제가 기계적인 연산 문제를 출제하고 이를 통해 아이들의 수학 능력을 평가한다는 거다. 미국의 수능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나 호주 수학경시대회인 AMC(Australian Mathematics Competition), 프랑스의 대입 시험인 BAC(Baccalaureat)는 이런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 SAT는 아예 공식과 계산기를 주고 문제를 풀도록 한다.”

―그럼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하라는 건가? 요즘은 어린이집 유아도 구구단을 외운다.

“하나·둘·셋…. 개수를 세게 되면 수학이 시작된 거다. 재밌게 시작하고 호기심이 가득할 때다. 그런데 이때 부모가 개입하면서 수학을 망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왜?”라고 묻는 호기심도 없어지게 만들고 뇌 구조도 망가뜨린다. 일단 쉽고 재밌게 수학을 느낄 수 있도록 호기심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 ‘7+2’와 ‘2+7’은 어른 입장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7에 2를 더하는 것은 하나 더하고 또 하나 더하면 되는 거라 쉽지만 2에 7을 더하는 건 2부터 일곱 번을 더 세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여기서 작은 수를 더하는 게 쉽다는 것, 또 문제를 쉽게 풀기 위해 위치를 서로 바꾸는 ‘위치 무시’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 된다. 어릴 때 이런 능력을 키우면 나중에 함수·미분·적분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수학은 언어와 같아서 이해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며 쉬운 개념과 원리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려운 개념과 원리를 확장해 깨우쳐야 한다.”

조 대표가 지난 2018년 선보인 AI수학 플랫폼 ‘깨봉수학’은 그가 약 10년간 직접 분석하고 정리해 개발한 커리큘럼을 따라 학습이 진행된다. 기존의 수학 개념을 분절해 가르치던 방식이 아닌 3000여 개의 개념과 원리를 서로 연결해 확장하며 수학을 가르친다. 학생이 곱하기 문제를 잘 푼다 싶으면 바로 인수분해로 넘어가고 등비수열을 지나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공식까지 알려준다. 초·중·고 수학 내용을 모두 다루지만 주력 대상은 초등학생이다. 온라인 콘텐츠가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유튜브 채널도 수학 분야 구독 1등을 내리 달리고 있다.

―수학이 뭔가. 왜 공부해야 하나.

“챗GPT 같은 AI 탄생의 초석이 수학이다. 수학은 세상의 변화를 수와 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다. 수학은 변화를 관찰하고 변화의 요인 패턴을 찾아내 예측한다. 대상을 관찰할 때는 불필요한 것을 무시하고 핵심을 본다. 다른 말로 ‘추상화’라고도 한다. 그리고 파편화된 정보와 지식을 연결(관계맺음)해 새로운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무시(추상화)-변화-관계’의 능력을 길러주는 게 수학의 힘이며 비단 수학이란 과목에만 갇힌 능력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

―수학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이 연간 7조 원이 넘지만 고등학생 3명 중 1명 꼴로 스스로‘수학 포기자(수포자)’라 여긴다. 문제가 뭘까.

“먼저 수학 공부의 동기가 부족하다. ‘대학입시’라는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목표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수학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다른 학문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학문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없다. 두 번째로 교과과정 자체가 수학 개념 사이의 관계와 계층을 고려하지 않고 분절해 나열돼 있다.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개념·원리가 있지만, 교육과정이 어렵게 배우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이해할 시간조차 없이 기계적인 문제풀이에 내몰리다 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온다. ‘분수’는 소위 첫 번째 수포자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분수를 위(분자)와 아래(분모)로 나눠보면 각각은 자연수로 아주 쉬운데, ‘통분’과 같은 요령을 외워버리기에 어려워진다. 그래서 문제를 조금만 바꿔도 못 푼다. 고등학교에서 많이 좌절하는 게 미분·적분이다. 미분은 변화를 계산하는 것인데 그 시작인 초등학교 때부터 덧셈의 핵심을 이해해야 모든 수학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대입에서 수학 성적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입시에서 수학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학은 초등수학이 전부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충분한 시간 속에서 깊고 정확하게 꿰뚫어야 중·고등 수학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배우는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아이들이 선행 학습을 한들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이 교육계와 학부모의 무지와 그릇된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바닷가에서 모래알 개수를 세는 것과 똑같다. AI시대에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때다.”

―깨봉수학이 특별한 이유는.

“깨봉수학은 수학의 가장 기본 개념인 숫자 0·1과 ‘더하기’를 핵심으로 3000여 개의 다양한 개념·원리가 서로 연결·확장하면서 탄생했다. 저의 독창적인 수학적 관점과 생각법으로 풀어낸 600개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초·중·고 과정을 포함한 그 이상의 수학 개념과 원리를 배우게 된다. 구구단·소금물 농도·수열 규칙성 찾기 등 모두 기존처럼 공식에 바로 대입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도형을 직접 만져보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친다. 숫자와 기호, 개념과 원리들을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언어로 바꾸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하며 상상해보면 어렵다고 생각했던 수학 개념과 원리가 저절로 깨우쳐진다.”

―국내 AI 1세대 연구자이기도 한데, AI 시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구글·MS·애플·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오래 전 부터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CT)이라는 사고법을 강조하고 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CT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논리적 사고법으로 문제를 작은 단위의 여러 문제로 분해하고 그 문제들 속에서 패턴을 찾아낸 후 각 문제의 핵심 원인을 끄집어내 이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설계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CT와 같은 논리적 사고법을 통한 문제해결력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능력은 수학 공부와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다져야 한다.”

■ 조 대표는 …

미국서 ‘무인전투기 AI’로 박사학위… 세계로봇경진대회 초대 우승도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는 1987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현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무인 전투기를 움직이는 인공지능(AI)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에 생소했을 AI를 접하고 수학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조 대표는 “대학갈때 컴퓨터 사이언스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대학졸업 후 유학을 가서 석·박사 공부를 시작할 즈음 제2의 AI 붐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미국 필립스·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며 AI전문가로 명성을 쌓았고 로봇 박사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교수가 우승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로봇경진대회에서 초대(1997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 금융 온라인 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다. 하나은행에서 일할 당시엔 국내 최초로 모바일 뱅킹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이후 삼성화재 부사장직을 맡던 2016년, 만 50세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 수학 콘텐츠업체 ‘이쿠얼키’를 창업했다. AI를 통해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전했다. 2018년 AI수학 브랜드 ‘깨봉수학’을 선보였는데 ‘깨우치다’의 깨와 자신의 이름에서 봉을 따와 지었다.

조 대표는 깨봉수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배움이라는 경험을 즐겁고 새롭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잘 배울 수 있을지를 배우는 게 수학이다. 깨봉과 독서를 통해 수학적 능력을 기른다면 앞으로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5년 전북 김제 출생 △전주 신흥고 졸업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인공지능(AI) 석·박사 △ 국민은행 최고기술책임자(CTO) △ 하나금융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부사장 △삼성화재 부사장·경영혁신실장 △현 이쿠얼키 대표 △현 싱가포르 DBS은행 사외이사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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