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영광의 시대는 강백호 다시 맡은 지금"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3. 2. 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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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백호 연기한 강수진 성우
韓日 성우 전부 교체될때
26년 만에 다시 배역 맡아
특유의 젊은 청년 목소리로
남도일·이누야샤·루피 연기
출연 작품 총 3000편 달해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강백호의 이 대사를 우리말로 듣고 싶어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빙판을 관람했다는 관객들이 있다. 과거 TV로 슬램덩크를 봤던 세대는 1990년대의 완전 현지화된 슬램덩크를 기억하기에 자막보다는 더빙에 익숙한 편이다.

인기에 힘입어 추억의 목소리로 향수를 자극하며 '영광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성우가 있다. 1988년 KBS 성우극회 21기로 입사한 강수진 씨(58·사진)는 199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강씨는 1997년 애니원 채널에서 방영된 슬램덩크 만화와 비디오에서 강백호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극장판에선 26년 만에 다시 강백호로 돌아왔다. 지난 16일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한 흥행에 힘입어 그는 개봉 후에도 무대 인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강백호로 발탁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과거 TV만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일본은 물론 한국 성우들까지 전면 교체하기를 원했다. 일본 성우진은 전면 교체됐는데, 현지에선 팬들이 생소한 목소리에 불만을 표출한 일도 있었다. 일본과 한국을 통틀어 강백호만큼은 또다시 강씨가 맡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거머쥐었다. 강씨는 "이노우에 감독은 영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원했다"며 "내가 다시 뽑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큰 영광을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 강백호의 연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다시 고민해봐도 그는 강백호의 매력이 특유의 과장됨,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 단순하고 무모해 보이는 혈기 넘치는 열정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그는 그것들이 관객들에게 통한다고 생각했다. 강씨는 "과거와 달리 과장하는 톤을 자제한 것은 분명히 맞지만, 강백호는 다른 인물들보다 개성이 더 뚜렷한 인물"이라며 "향수를 기억하는 팬들을 외면하지는 말기로 했다"고 술회했다.

그가 성우로 입사한 후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기들과 비교해 출발은 뒤처졌다. 그는 동기 20명 중에 남자 최연소로 입사했지만 점차 경쟁에서 밀리면서 일감을 받지 못했다. 지금이야 중견 성우로 자리 잡은 그이지만 전속 시절엔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일명 울림통이 큰 동굴 목소리가 대접받던 시기에 미성에 젊고 창창한 음색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그는 전속 말기에는 성우 생활을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했다. 강씨는 "제가 좀 반골 기질이 있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게 많아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일본 문화 개방으로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SBS라는 공중파 방송이 개국했고, 그곳에서 수입 만화 영상물을 틀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엔 케이블 채널도 생기며 만화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에 그의 맑고 창창한 청년 목소리가 주목받아 한때 그는 틀면 나온다는 평을 받았다.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이누야샤'의 이누야샤, '원피스' 루피 등 연기했던 캐릭터 면면이 쟁쟁하다. '타이타닉' 더빙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목소리도 그가 연기했다. 심지어 2014년 5월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 극장판이 개봉했는데, 국내판에서는 남도일과 루팡을 모두 강 성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그가 지금까지 연기한 애니메이션은 3000편에 달한다.

그가 생각하는 성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자유로운 연기 폭이다. 강씨는 "영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성우의 영역이 점점 위축되는 듯해 위기감이 드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성우는 시각적 이미지가 감춰지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석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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