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비밀문건' "2030년까지 벨라루스 연방국가로 흡수"(종합)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다방면 러시아화 구체적 계획 담겨"
"루카셴코의 러 의존도 커지면 현실화 가능성↑…유럽 안보 위협"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러시아가 2030년까지 우방이자 이웃 나라인 벨라루스를 흡수 통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자사를 비롯해 미국 야후뉴스, 독일 WDR 방송 등 미국과 유럽의 언론사들이 공동 취재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러시아 비밀문서를 입수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7쪽 분량의 이 문서에는 러시아가 2030년까지 '연방국가'(Union State) 형식으로 벨라루스를 복속시키고, 벨라루스의 독립 지위를 해체하기 위한 구상이 구체적으로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이때까지 벨라루스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부문을 전면 통제한다는 계획에 따라 정교한 통합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2030년까지 정치, 외교, 사법 체계 등 국가 시스템은 물론 경제, 문화, 교육, 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서 벨라루스를 자국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설명했다.
이때까지 벨라루스의 통화와 과세, 언론 체계를 자국과 통일하고 벨라루스 군대에 러시아의 규제를 준수하게 만드는가 하면, 모든 핵심 군수 생산을 러시아로 이관토록 하는 식이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다만 이 문건의 출처를 밝힐 수 없다며 해당 문건 자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서방 정보기관 관계자는 두 부분으로 이뤄진 이 문건은 러시아의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작업해 2021년 작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문서를 입수한 이들 언론사는 여러 나라의 정보기관들을 통해 유출된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려 시도한 결과 진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밝혔다.
실제로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0년대 말부터 궁극적으로 한 나라로의 통합을 지향하는 연방국가 창설을 추진하며 동맹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연방국가라는 초국가적인 개념은 벨라루스의 내부 저항 등으로 실패한 듯 보이다가 2018년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할인해 달라는 벨라루스의 요청을 러시아가 정치적인 양보를 조건으로 수락하면서 재점화했다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설명했다.
당시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법규를 러시아에 맞추고 공동 에너지 시장을 창설하며, 통화 정책을 통일하는 방안 등을 담은 '통합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하지만, 벨라루스 내부에서 러시아와의 정치적 통합에 대한 반발이 일며 통합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합의에는 실패했다.
2021년 11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광범위한 부정선거 논란과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지지에 힘입어 권좌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자 이에 대한 대가로 정치 통합 등을 제외한 28개에 이르는 러시아와의 통합 프로그램에 서명한 바 있다.
벨라루스의 주권 상실이 연방국가 개념을 통해 서서히 이행돼야 한다고 명시된 이번 입수 문서의 첫 부분에는 러시아의 벨라루스 흡수계획을 단기(2022년), 중기(2025년), 장기(2030)로 나눠 기술하고 있으며, 두 번째 장에는 이런 계획에 수반되는 위험 등 점검 사항이 열거됐다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마이클 카펜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미국 대사는 이 문건에 대해 "벨라루스에 대한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것과 동일하다"며 "다른 점은 벨라루스에서는 전쟁보다는 '강압'(coercion)에 의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역시 전면적인 통합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계획처럼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통합이 현실화하면 이는 이 지역 전체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독일 외교관계위원회의 안드라스 라츠 선임 연구원은 전망했다.
그는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일부가 된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의 사이에는 1천250㎞의 국경선이 추가되는 것"이라며 "양국의 통합은 군사적·안보적 차원에서 중부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푸틴 성향임에도 루카셴코 대통령이 국내 반발 등을 의식해 정치적 통합을 밀어붙이는 러시아의 압박에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은 것에서 보이듯 러시아의 계획이 생각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스웨덴 스톡홀름 동유럽연구소의 마르틴 크라흐 부소장은 "푸틴의 계획이 성공할지를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도 "루카셴코의 (푸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그가 재정적인 면 등에서 더 약해지면 이런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벨라루스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엔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 북부로 진격하는 전진기지를 제공하는 등 간접 지원을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우크라이나·폴란드 접경의 정세 악화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군과 연합지역군을 창설했다. 이후 약 9천 명의 러시아군이 참여한 연합지역군이 벨라루스에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일각에선 벨라루스가 러시아 측의 요청으로 우크라이나전에 직접 참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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