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노조가 삼성·현대차 상대 파업 가능…'노란봉투법' 쟁점은
노조 상대 손배소송 제한, 사용자·노동자 개념 확장 등 쟁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국회 야당을 주도로 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입법 강행 추진 움직임에 정부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거나 노동조합의 '파업 만능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국회의 신중한 논의를 거듭 요청하고 나섰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파업에 대한 합법적인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 행위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언론사에 4만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내온 데서 유래했다.
◇추경호 "헌법 위배…근본적 재논의 필요", 이정식 "파업 만능주의 우려"
정부 경제부처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의 '노조법 개정안' 입법 추진에 대해 "헌법·민법 원칙에 위배되고, 노사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며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도 포함해 그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등 현재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쟁 대상조차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무리하게 포함시켜 노사갈등이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주무장관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직접 브리핑까지 자처해 "파업 만능주의가 우려되는 입법"이라며 국회의 신중한 결정을 요청했다.
이 장관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없는 노조법 개정안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며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사업주에게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모든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정안이 통과하면 노동쟁의 및 적법한 파업의 범위가 사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분까지 확대된다"면서 "이럴 경우 노조가 파업 등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돼 노사갈등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란봉투법' 쟁점은…기업의 노조 상대 손배소송 제한, 쟁의 대상 사용자 개념은 확장
정부여당과 야당, 재계와 노동계의 견해가 첨예하게 맞서는 노란봉투법의 쟁점은 크게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제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개념 확장'이다.
먼저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제한과 관련해 개정안은 폭력·파괴행위가 아니라면 불법적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거나, 나아가 폭력·파괴로 인한 경우라도 노조의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여당과 재계는 이에 대해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고, 외국의 경우에도 불법쟁의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근거가 미약하다고 반대한다.
사용자의 범위 확장도 논란거리다. 개정안에서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장해 '근로계약의 형식과 상관없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모두 사용자 개념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럴 경우 하청노조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없는 원청과 직접 단체교섭 및 협약을 체결하고 교섭이 결렬되면 적법하게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개정안을 토대로 삼성전자나 현대차 협력 업체 노조가 원청인 삼성전자나 현대차에 대해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력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라고 주장하면서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쟁의 개념에 대한 입장차도 크다. 현행 노조법에서는 쟁의행위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상태'로 규정한다. '주장의 불일치'에 대해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노동쟁의의 개념을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주장의 불일치'로 변경해 기존 그 범위에서 제외됐던 정치적 사안 등에 대해서도 노동쟁의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 이정식 고용장관은 "노조의 파업 만능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입법 저지' 경제계도 가세…경총 등 경제6단체 "심의 중단" 촉구
정부의 입법 저지 움직임에 재계도 즉각 가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 "노조법 개정안 심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단체는 "개정안은 사용자와 노동쟁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기업까지 쟁의대상으로 끌어들여 결국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개정안과 같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할 경우 '원청사업주'에게 하청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지위를 강제하게 하고, 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청 대기업을 노사관계 당사자로 끌어들여 쟁의대상을 확대해 민법상 당사자 관계 원칙을 무시하고 도급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정안이 노동쟁의 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해, 노동조합이 고도의 경영상 판단, 재판 중인 사건까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한다면, '파업만능주의'를 만연시켜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노사분규에 휩쓸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데 이어 17일 야당 단독 처리로 안건조정위원회 문턱도 넘었다.
야당은 21일 열릴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긴다는 계획이다. 환노위 전체 위원 구성 역시 국민의힘은 6명에 불과해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야당은 법사위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본회의에 안건을 직회부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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