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우리 동네 아이가 태어났어요”
예전에는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면 집 대문이나 길 어귀에 ‘금줄’을 내걸었다. 대개 삼칠일(21일) 동안 걸어두었다. 금줄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과 반대인 왼쪽 방향으로 볏짚을 비벼 꼰 새끼줄인데, 금지를 의미하고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한 것이다. 신생아의 건강에 자칫 해가 될 수 있는 외부인이나 부정한 기운을 막고자 한 풍습이었다. 집에서 아이를 낳던 옛 시절의 열악한 위생 환경을 감안한 의례였다. 아이를 낳은 지 이레(7일)째 되는 날에 수수떡을 많이 만들어 앞뒷문에 놓고 길 가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왕가나 부잣집의 풍습도 있기는 했지만, 삼칠일이 지난 뒤 금기가 철폐되면서 일가친척이 모여 출생을 공식 축하하는 것이 상례였다.
삶의 제례인 통과의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출생이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 상징적으로 온전한 날수인 100일을 채웠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백일잔치를 치르고, 아이가 무탈하게 1년을 보낸 첫 생일을 백일보다 큰 집안의 경사로 여기며 성대한 돌잔치를 여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충북 단양군에서 아이 출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지난해 12명 출생한 매포읍에서는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455일 만에 아이가 태어난 대강면에서는 “2023년 첫 출생, 정말로 축하해!”라는 문구가 나붙었다. ‘읍민·주민 일동’ 이름으로 내걸었으니, 아이 출생을 온 동네가 축하한 셈이다. 매포읍은 올해부터 신생아 출생신고 때 부모가 원하면 마을 중심가에 축하 현수막을 걸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두 곳 모두 지역 기관장들이 십시일반 모은 출생 축하금을 전한 것은 물론이다.
충북 보은군은 전광판을 동원한다. 올해부터 지역 신생아 이름과 사진을 유동인구가 많은 읍내 전광판에 띄우고 지자체의 월간 소식지에도 게재하기로 했다. 소중한 아이의 출생 소식을 지역 공동체 전체에 알리고 함께 축하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이렇게라도 해서 출생률을 높이려는 지자체의 고충도 함께 느껴진다. 누구네 집 자식 누가 대학에 붙고, 고시에 합격하고, 금메달을 땄다는 식의 과거 시골 마을의 정겨운 현수막이 이젠 출생 축하로 채워질 참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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