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맨, 극장가 덩크… 일본 애니, 다음은 뭐니? [S스토리]

엄형준 2023. 2. 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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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메이션 新바람
슬램덩크 누적관객 300만명 돌파
‘만화책 세대’ 아빠들 자녀와 관람
입소문 타며 10∼20대 여성팬 몰려
“농구 운동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
3월 ‘스즈메의 문단속’ 등 잇단 개봉
현지에서 누적관객 1000만… 큰 인기
日 콘텐츠 거부감 사라지는 추세 속
‘너의 이름은’ 기록 뛰어넘을지 주목
일본 애니메이션 특징은
동화 주요 소재 삼는 미국 애니와 차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 국내서 유명

“생각보다 재미있던데, 옆에 아저씨는 훌쩍거리더라.”

“아저씨들 아니면 여자들이던데.”
20대로 보이는 여성 관객 3명이 일본 애니메이션(애니) ‘더 퍼스트 슬램덩크’(슬램덩크)를 관람한 뒤 상영관을 나서며 키득거렸다.

“처음엔 아빠가 보러 갔고, 그 다음엔 제가 친구랑 같이 봤어요. 언니도 봤고, 엄마는 이모랑 같이 볼까 고민 중이래요.”

김지희(16·가명)양은 ‘슬램덩크’를 본 후 팬이 됐다. 애니 주인공들의 사진을 집 책상 앞에 붙여놨다는 김양은 같은 애니를 더빙판으로 다시 볼 계획이다.

중년 남성의 ‘추억 감성’을 자극한 슬램덩크가 10·2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누적 관객 300만명을 돌파했다. 슬램덩크는 영화 자체의 인기를 넘어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업계도 놀란 300만 돌파… 10·20대로 관심 확장

슬램덩크의 인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이후 침체했던 극장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의 17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4일 개봉한 이 영화의 총 관객 수는 16일까지 301만2000명을 기록했다. 현재 상영작 중 지난해 12월14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에 이은 박스오피스 2위고,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1위다. 이날 오전 예매 관객이 10만명을 넘긴 것을 감안하면, 이미 역대 일본 애니 국내 개봉작 중 2위의 흥행 성적이다.

처음 영화를 들여올 때만 해도 수입사도, 극장도 이만한 성공을 거둘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극장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처음엔 50만 관객 정도를 예상했다”면서 “그런데 100만을 넘어 놀랐고, 그다음엔 200만, 300만 목표치를 세웠지만 이 역시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처음 이 영화에 주로 관심을 보인 건 만화 잡지인 ‘소년챔프’에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된 만화 ‘슬램덩크’를 보며 자란 당시의 청소년·대학생들이다.
개봉 초기 ‘MZ세대’는 ‘아저씨’ 냄새나는 이 영화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저씨’와 함께 영화를 본 딸, 아들, 직장 동료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내며, 관람층은 20대 이하로 빠르게 확장됐다.

특히 10∼20대 여성이 대거 신생 슬램덩크 팬으로 합류하는 분위기다.

CGV 관계자는 “개봉 초기에는 남성 관객 비율이 64%였는데 지금은 47% 수준으로, 오히려 여성 관객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20대의 예매율은 1일 18.7%에서 16일엔 23.8%로 올랐고, 10대 관객도 상당하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는 김예빈(16)양은 “SNS에 계속 슬램덩크 얘기가 나와서,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졌다”면서 “농구를 잘 몰라서 이해될까 걱정했지만 별 문제가 되질 않았고,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슬램덩크의 열기는 겨울왕국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주로 접하며 자란 10대의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친한 친구가 슬램덩크를 극찬하며 네 번이나 봤다고 해서 극장을 찾았다”는 이정윤(18)양은 “북산고 선수들 모두가 목표를 향해 모든 걸 걸고 노력하는 모습이 내 인생에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며 “전에는 일본 애니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게 없어진 거 같다”고 덧붙였다.

아빠의 권유로 슬램덩크를 봤다는 오지영(18·가명)양은 “농구에 대한 관심도 늘었고, 일본 애니에도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성인 중에서도 실사 영화 이상의 재미를 느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직장인 정진욱(29)씨는 “원작을 보진 않아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때 완성도가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일본 애니는 잘 안 봤는데, 앞으로 괜찮은 작품이 있다면 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역대 최고 기록 달성 & 새 애니 흥행 관심

영화 업계의 관심은 이제 자연스럽게 슬램덩크에 이어 3월 개봉을 앞둔 ‘스즈메의 문단속’과 ‘귀멸의 칼날’이 재패니메이션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쏠린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들’ 등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으로 일본에서는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앞서 2017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국내에서 애니를 포함, 일본 영화를 통틀어 최고치인 379만명의 관람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영화의 배급을 맡은 쇼박스 관계자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며 “신카이 마코토의 국내 팬이 적지 않고 일본 콘텐츠에 대한 대중 반응도 좋아지고 있어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3월 초 개봉하는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를 기다리는 팬들도 적지 않다.

앞서 2021년 국내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21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해 흥행 순위 7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귀멸의 칼날은 특히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이번 상영작은 종전 시즌 방영분과 차기 시즌 일부를 고화질로 가공한 것으로 무한열차만큼의 파급력은 없겠지만, 기대감은 작지 않다.
수입사인 애니맥스 관계자는 “슬램덩크와 귀멸의 칼날은 영화 성격이나 팬이 다르긴 하지만, (슬램덩크의 성공은)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300만 관객을 돌파한 슬램덩크 수입·배급사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피치를 올리고 있다. 종전 국내 일본 애니 흥행 2위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301만5000명)은 17일 제쳤고, 넘어설 건 ‘너의 이름은’뿐이다.

슬램덩크를 홍보하는 이노기획 관계자는 “재관람 수요도 있고, 4월엔 IMAX 상영도 확정됐다”며 “‘너의 이름은’이 세운 일본 애니 흥행 1위의 기록도 깰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간이 스토리의 중심… 살인·죽음 등 거침없이 표현

‘슬램덩크’의 추억에 젖은 중년의 ‘X세대’에게는 일본 애니메이션(애니)이 친숙한 편이다. ‘은하철도 999’, ‘독수리 5형제’ 등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일본 애니를 TV로 접했고, 1990년대 후반엔 큰 인기를 누린 ‘만가’(일본 만화)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접했다. 이후 극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관람한 세대다.
지금의 ‘MZ세대’나 ‘알파세대’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며 재패니메이션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위화감이 상존한다. 반면 ‘겨울왕국’ 등 디즈니와 드림웍스로 대표되는 미국 애니는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슬램덩크를 관람한 한 고등학생은 “일본 애니를 좋아하면 친구들이 ‘오타쿠’냐고 묻기도 한다”면서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 좀 그렇다”고 했다.

오타쿠는 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다소 비하의 느낌이 있다. 그런 젊은 세대에게 슬램덩크는 일본 애니를 좀 더 일반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본 애니는 일본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재패니메이션’ 또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줄여 부르는 표현인 ‘아니메’로도 불리며, 미국의 애니와는 결을 달리한다.
미국 애니는 옛날 동화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부드러운 그림체와 따뜻한 색채로 그려지곤 한다. 동물이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의 단짝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디즈니가 스티브 잡스의 픽사와 합병하고, 드림웍스와 경쟁하면서부터는 대부분의 극장용 애니에 3D 기술이 적용됐다.

반면 일본 애니는 인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갈등, 성장, 야욕, 성욕 등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도라에몽’이나 ‘포켓몬스터’같은 아동물도 있지만, ‘공각기동대’, ‘진격의 거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처럼 사회 문제와 인간의 고뇌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살인과 죽음, 성행위 등을 거침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기술 발달에도 3D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여전히 2D 방식에 세밀한 묘사를 통해 감정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도 특징이다.

일본 애니 작가·감독 중에서는 ‘일본 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우주소년 아톰’, ‘리본의 기사’(한국에서 ‘사파이어 왕자’로 방영) 등을 제작한 데즈카 오사무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미래소년 코난’ 등을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 애니를 세계에 각인시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환경·전쟁 등의 문제의식을 애니에 담곤 한다.
‘너의 이름은’의 감독이자 소설가인 신카이 마코토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소년·소녀의 얘기를 주로 다루며, 미야자키 이후 가장 성공한 극장용 애니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인 만화 ‘슬램덩크’를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 각본을 맡았다. 이노우에는 애니보다는 ‘배가본드’ 등 만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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