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 신성시했던 한우, 120가지 부위 요리 ‘모순’[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3. 2. 17.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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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고기를 부위별로 세분해 먹는 민족으로 알려졌다. 120여 개 부위로 도축해 버릴 것 없이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중국 서북부 간쑤성의 서기 3세기 무덤에서 출토된 벽돌. 소가 밭을 가는 모습이 담겼다(위 사진). 소의 도살을 엄금했던 조선시대 풍속도에 묘사된 불고기를 굽는 장면. 강인욱 교수·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국 사람이 소를 대하는 태도는 참 모순적이다.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가족처럼 대접을 받고 신성시되기까지 했지만, 정작 그 고기 요리법은 세계 최고여서 고기는 물론 꼬리에 발톱까지 버리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장 귀하지만 가장 다양한 요리법을 가지게 된 모순적인 소고기, 우리는 어쩌다가 소고기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숭배의 대상 겸 고단백 음식

소는 오록스라 불리는 야생소에서 기원했다. 오록스는 흔히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 초기의 벽화에서 보이는 뿔 달린 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야생의 오록스가 가축이 된 것은 근동지역이 처음이다. 그리고 약 6000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아시아에도 전래된다. 대체로 양쯔강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목에 혹이 달린 혹소를 주로 키웠고, 중국 북방에서부터 한국과 일본에서는 우리가 아는 황우를 키웠다. 한중일 동아시아에서 키우는 모든 소의 원형은 이미 3300년 전 상나라 유적의 소뼈에서 모두 발견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아시아 각지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맞게 소를 개량하며 키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고기를 좋아하면서도 소 자체를 가족이나 조상처럼 숭배하기도 한다. 영화 ‘워낭소리’나 조상님은 꿈에 소의 모습으로 나온다는 전통적인 해몽풀이처럼 소는 우리에겐 신령한 조상으로 동일시되었다. 사실 소를 숭배하는 전통은 전 지구적이며 그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야생소는 높이는 사람보다 큰 2m에 가깝고 무게는 1t에 달하여 매머드가 사라진 이후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초식동물이요 엄청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여기에 뿔도 거대하고 몸은 시커먼 털로 덮여 있으니 인간들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9000년 전 대표적인 근동의 신석기시대 유적인 차탈회위크에는 거대한 소(오록스)를 두고 사람들이 사냥하고 또 경외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식량인 동시에 경외의 대상인 셈이다. 지중해 크레타문명의 미노타우로스 신화와 근동 바알신의 숭배에서 보듯 뿔이 달린 소는 영원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소와 비슷한 숭배의 대상으로 유라시아 북반구에서는 곰이 있다. 흔히 퉁구스족이라고도 불렸던 극동과 만주지역의 원주민들은 곰을 사냥해서 먹으면서도 조상으로 숭배했다. 사할린에 사는 니브흐족이나 아이누족은 곰을 잡아 정성을 다해서 키운 다음 그 곰을 잡아 성대한 축제를 벌인다.

한국의 경우 남도의 기름진 옥토에서 농사를 짓던 마한 사람들의 유적에서 바로 소의 제사를 지낸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적 404호인 전남 나주 복암리 마한의 족장 무덤 근처의 늪에서 소뼈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무덤의 주변은 도랑에서는 사지를 묶은 채 머리가 잘린 소의 뼈가 통째로 발견되었다. 머리는 따로 어딘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몸통을 무덤 곁에 묻은 것이다.

조선시대 ‘불법 소고기 회식’

한국의 소고기는 버리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요리와 제조 방법의 다양함은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통적으로 요리하는 소고기 부위는 120여 가지로 소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3배 이상 다양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조선 600년 동안 엄격하게 소의 도축을 금했는데도 어쩌다 세계적인 다채로운 소고기 음식이 전해졌을까. 그 배경에는 몽골이나 말갈과 같은 유목민족과의 접촉, 그리고 백정으로 대표되는 소고기 도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나 몽골 침략기에 한국에 많은 소가 도입되었고, 그와 함께 목축 및 다양한 도살 기술도 함께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그 전통은 백정과 수척 등 특수 집단들에 의해 수백 년간 이어질 수 있었다.

소고기는 소의 도살을 엄금했던 조선시대에도 양반들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했다. 최근에 조선시대 서울의 한가운데로 관공서들이 몰려 있는 공평동에서는 집 안에서 소를 잡아 그 뼈를 가지런히 모아서 구덩이에 묻은 것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에서 비슷한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조선시대 한성에서는 소의 도살을 엄격히 금했고 필요한 것은 4대문 밖에서 도살을 해서 들여와야 했다. 그런데 ‘솔선수범’을 해야 할 관리들이 대놓고 자기들 관청에서 소를 잡고 회식을 한 흔적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를 대고 잡아먹는 일도 흔했다고 하니, 아마 거하게 잔치를 하고 뼈까지 우려먹고 그 뼈를 고이 묻은 듯하다. 사실 소를 잡고 묻은 흔적은 공평동뿐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에서 발견되니 아무리 힘들어도 고기를 구우며 회식을 하는 우리의 모습은 적어도 수백 년의 전통인 셈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유명한 소불고기 요리인 설하멱은 일종의 꼬치구이로 불에 구운 뒤 찬물이나 눈에 넣어 식혔다가 기름을 발라 다시 굽는 것이다. 그 방법이 낯설지 모르겠지만, 사실 물을 뿌려가면서 굽는 방법은 지금도 유라시아 일대에서 널리 유행하는 꼬치구이(샤실리크)를 하는 방법이다. 설렁탕도 그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난무하지만, 몽골과 카자흐스탄에서 말이나 양뼈를 고아 만든 슈르파(또는 소르포)는 곰탕이나 설렁탕과 맛이 거의 똑같다.

백정은 본래 삼국시대 이래로 백두대간을 따라 연해주와 간도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산악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흔히 말갈계라고 알려져 있는 이들은 농경민들이 잘하지 못하는 고기의 도축과 가공에 종사했다. 이질적인 사람들을 경원시하는 조선시대 이후로 극도로 천대받는 직업이 되었지만, 사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막대해서 우리가 지금도 즐기는 소고기는 전적으로 이들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멸시 속 꽃핀 한우 문화

소고기를 굽는 장면. 부위와 굽기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육식은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강인욱 교수 제공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20세기 한우의 역사는 획일화의 역사였고, 그 결과 전통적인 한우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한우이지만, 정작 최신 DNA 기법을 도입해도 그 기원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급격한 한우 표준화가 있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FAO) 한우는 크게 4종류로 지금 모두가 아는 황우, 칡소, 흑우, 그리고 제주흑우 등이다. 하지만 일제 때 황우만을 한우로 표준화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급격히 유전자풀이 고립되고 전통 소와 단절되었다. 기원이라는 것은 다양한 DNA 표본이 있어야 밝힐 수 있는데,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대부분의 소는 이미 멸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한 점은 사람의 입맛은 계속 변하고, 또 거기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한 것이다. 한우가 계속 사랑받으려면 다양한 품종과 요리법을 계속 발전·확대시킬 때만 가능할 것이다. 최근 전통 소를 복원하고 그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바로 한우의 미래인 것이다.

단일민족과 선민의식으로 살면서 우리는 실제 생산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천대해 왔다. 하지만 그들 덕에 세계적인 요리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불고기는 세계를 대표하는 맛이고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통적인 한우는 멸종되었고 그 발달된 한우의 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폄하되었으니, 그 무엇보다 모순된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귀하지만 세계적인 음식이 된 한우는 그러한 천대를 딛고 이어진 맛이라 더 귀한 것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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