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수사권 넘어가자, 드러나는 간첩 사건

1월18일 ‘국가정보원’이라고 적힌 점퍼를 입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서울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압수수색에는 경찰 700여 명이 동원됐다. 대규모 ‘간첩’ 수사도, 국정원 수사관들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공수사는 특성상 수사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비슷한 시기 제주·창원·전주 등 ‘간첩단’ 사건이 연달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보도에 등장하는 ‘간첩’들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2016~2019년이다. 국정원이 왜 지금 대규모 공개 ‘간첩’ 수사에 나선 걸까? 최근 국정원의 대공수사를 두고 나오는 정부·여당 관계자의 발언을 살펴보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간첩단 사건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간첩은 국정원이 잡는 게 맞다. 간첩단을 일망타진하려면 국정원 베테랑 대공수사 요원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에서 “해외 수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은 살펴볼 여지가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수사 권한)은 2020년 12월 국정원법이 개정되면서 경찰에 이관됐다. 곧바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3년 유예기간’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으면서, 2024년 1월1일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해당 업무는 경찰로 이관된다(〈시사IN〉 제697호 ‘국정원은 3년의 시간을 벌었다’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43768).
최근 국정원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두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이 대공수사권 이관을 1년 앞두고 조직적 반발에 나섰다고 본다. 민변의 조지훈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와 국정원은 수사권을 놓지 않기 위해 대대적 수사와 여론몰이를 더욱 거세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공수사권 이관 3년 유예’가 낳은 현실
애초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이 왜 경찰로 이관된 걸까? 국정원이 수사권을 남용하고 국내 정치에 개입해온 어두운 역사가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다.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 ‘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에서도 국정원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등에 연루됐다. 국정원 수뇌부가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시대적 요구’로 보고 출범 직후 개혁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2017년 국정원장 임기 시작과 함께 국내정보담당관(IO) 제도를 폐지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여지를 단절하겠다는 의도였다.
국정원은 같은 해 민간위원 8명과 서훈 전 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 5명으로 구성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를 발족했다. 개혁위 목표는 크게 국정원의 대공수사와 국내정보수집 기능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개혁위 활동 결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2024년 1월1일 시행)와 국내 보안정보수집 권한 폐지, 정치활동 관여 처벌 등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개혁의 불가역적 토대가 마련됐다”라고 평가했다(‘문재인 정부 국정백서’ 1권).
정권이 바뀐 뒤 국정원 개혁에 대한 기류가 달라졌다. 국정원은 공개적인 대공수사에 나섰고, 여당 지도부는 대공수사권 복원을 주장했다. 개혁위원으로 활동한 장유식 민변 사법센터 소장은 “우리는 계속 3년 유예기간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원법이 빨리 개정이 안 되고, 3년 유예기간을 두는 등 (반발의) 빌미를 준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왜 대공수사권 이관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뒀을까? 국정원법 개정 당시 정보위 간사였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여러 고민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6개월 유예안’도 주장했는데 국정원이 실질적으로 안 된다고 해서 3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계속 국정원과 경찰이 협조하고, 합동 근무를 해보라고 설득했다. 지금 반발하는 국정원 사람들도 당시에 ‘3년 동안 시행착오를 점검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구체적 얘기를 하는 건 국정원법 위반”이라면서 국정원법 개정 이후 국정원과 경찰이 대공수사 이관에 잘 협력해왔다고 평가했다. 박지원 전 원장과 달리 김병기 의원은 국정원의 비협조를 문제 삼았다. “국정감사 때 보면 경찰은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국정원이 협조를 안 했다.”
1월28일 대통령실 관계자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국정원 대공수사권 관련 검토 내용이 알려졌다. 국정원에 별도의 대공수사 지원 조직을 설치해 국정원·경찰 중심의 대공 합동수사단을 운영하고, 경찰이 방첩 경험이 있는 전직 국정원 요원을 특별 채용하는 내용이다.
장유식 민변 사법센터 소장은 이렇게 의심했다. “윤석열 정부의 조치는 애초에 국정원법 개정을 하며 요구했던 사안인데, 한참 동안 국정원이 협력을 안 하다가 이제야 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민주당이 국정원과 경찰을 강하게 추동해서 협력체제를 만들고 수사권 이관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못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지금에야 국정원법 개정 이후 조치에 나섰다. 장기적인 여론전을 펼쳐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국정원 개혁을 막고) 권한을 원상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2월1일 국정원감시네트워크가 주최한 토론회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도 국정원 개혁을 두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비판이 나왔다. 국정원법 개정 당시 대공수사권 이관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둔 점, 국정원의 예산·인력·정보수집 범위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점 등이 지적됐다. 역진 가능하게 개혁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감시네트워크 관계자들의 발제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문재인 정부 개혁의 불철저함에 대한 뼈아픈 이야기가 나왔다. 개혁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촘촘히 들여다보고 감시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느꼈다.”
국정원은 업무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대통령훈령)’을 개정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에 대해 신원조사가 필요할 경우,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원장에게 신원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국정원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고위공직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시행규칙 개정으로 신원조사 대상, 항목 등도 확대됐다.

신원조사 제도가 국정원의 ‘보안업무’?
2020년 국정원법이 개정되면서 국정원의 국내정보수집이 금지됐다. 같은 시기 개정된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에서도 신원조사 대상을 한정하고, 국정원장이 직권으로 신원조사에 나설 수 있던 권한을 폐지했다. 장동엽 참여연대 권력감시국 선임간사는 이번 조처로 “대통령실과 국정원이 인사 검증을 구실로 주요 인사 관련 정보를 수집 활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게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국내정보수집과 국내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 개혁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평가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한 신원조사’가 법률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원조사 제도의 법률상 근거는 국정원법에서 국정원의 업무를 ‘보안업무’라고 한 것뿐이다. 이 법률만으로는 보안업무에 신원조사가 포함돼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신원조사 제도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기본권 침해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입법부에서 만든 법률로 주체·대상·범위 등이 정해져야 한다.”
시민사회에 남은 과제는 뭘까. 장유식 소장은 “국정원 개혁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반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당장 내년 1월 대공수사권 이관이 어렵다고 주장하면, 민주당은 또다시 유예기간을 늘리는 데 합의할 수 있다. 그걸 잘 확인하고 감시해야 한다. 대공수사권 이관은 국정원을 국민과 국가로부터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하는지 계속 설명하면서, 60년 만에 만들어놓은 이 개혁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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