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함 대신 아련함으로 사랑을 쓰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 2023. 2.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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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1] 김멜라 ‘제 꿈 꾸세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 추천작은 2권. ‘제 꿈 꾸세요’(김멜라) ‘남겨진 이름들’(안윤)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김멜라. /온점

김멜라의 단편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 실린 작품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모두 단편의 분량을 조금씩 넘긴다는 점에서는 같다. 책이 도톰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할 말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이야기들이 도무지 아련해서 쉽게 마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르듯 마쳐서는 안 되는 사랑의 사연들을 김멜라의 손길은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고 끝까지 다독이며 어루만진다. 더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과 말 사이, 혹은 인물과 인물 사이에 숨어 있는 미세한 기포랄까 공백들이 이야기를 크루아상처럼 부드럽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멜라의 오랜 손반죽이 다름 아닌 이 매혹의 공기층을 빚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어떻게 그 사랑을 지켜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작가가 육성으로 한 번 더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고 적듯이 ‘제 꿈 꾸세요’의 이야기들은 사랑에 대한 작가의 단호한 믿음에서 탄생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가가 사랑을 그려내는 방식은 단호함이 아니라 아련함이다. 아련함이란 심리적 공간과 시간에 거리라는 이격이 개입함으로써 형성되는 인력(引力) 작용인 바 김멜라는 이 기포의 공백을 자신의 소설에서는 사랑을 지키는, 즉 사랑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강력한 요소로 다룬다. 밀접하여 틈 없이 핍진해진 사랑보다는 아직 더 가까워져야 할 거리가 두 사람 사이에 애꿎게도 완연하기만 한 안타까운 사랑.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만의 남다른 사랑을 애틋하게 지켜가는 할머니(‘설탕, 더블 더블’), 같은 반 같은 이름의 친구를 바라보며 여성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깊고 절실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영주(‘링고링’), 신체와 언어장애 너머로 서로를 마주하는 체와 앙헬(‘나뭇잎이 마르고’), 손으로 서로의 입을 틀어막아 사랑의 탄성마저 극구 감추어야 하는 눈점과 먹점(‘저녁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두고도 그리움을 한시도 놓지 않는 인물들(‘논리’ ‘제 꿈 꾸세요’). 이 모든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멀고 가까운 것 사이에 아련함이라는 사랑의 섬을 발견한 작가가 있어 가능한 것 같다.

☞김멜라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21년 문지문학상, 2022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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