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이 꼴이지?”... 이생망이 나오게 된 이유 3가지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sayno@korea.com 2023. 2. 14. 08: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독점 연재] 세이노의 가르침

‘노오력’은 정말 개소리일까?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부잣집 자녀들과 비교하면 그럴 수 있다. 가난한 집 자녀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잠깐만! 어느 시대이건 빈민층, 서민층, 부유층은 동시에 존재해 왔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70년대 말 가난했던 내가 겪었던 절망감이다. 실업률이니 취업률이니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절망의 골짜기는 있었고, 골짜기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런데 왜 유독 작금의 MZ세대에서는 ‘이생망(이번 생(生)은 망했다’의 준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까?

첫째, SNS 때문이다. 돈 자랑하는 바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보니 그들을 자기 자신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박탈감의 크기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도 커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이 멍청한 바보들아!

둘째, 그 놈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때문이다. 아무리 근로 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시켜 놓으면 뭐 하나. 8시간 밖의 시간을 자기에게 재미있는 것들을 하는 데에만 사용하는데, 무슨 변화가 생기겠는가.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워라밸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쟁취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당신의 인생을 불균형하게 만들기 마련”이라고 했다(알랭드 보통이 만든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영상 교재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는 어느 강의에선 ‘’워라밸은 허튼 소리이며 그딴 거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셋째, 잘못된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누울 만한 공간을 미래에 소유할 것이란 기대를 갖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내 나이 30~50대 시절, 집값이 뛰면 돈 벌었다고 좋아하기보다는 집 없는 직원들 때문에 걱정이 되곤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주택으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집값이 급등해도 갖고 있던 집을 팔아서 크기를 줄이거나 외곽으로 가지 않는 한, 자산 증식의 의미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새로 이사 가려는 집도 다 같이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원들이었다. 내가 주는 보수로 알뜰살뜰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집값이 오르면 그렇게 하는 게 어려워진다. 그러면 결국 직원들은 우울해질 테고, 일하는 재미도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말이다. 부동산은 앙드레 코스톨라니(’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의 저자)가 말하듯이 사이클을 탄다. 상승기가 있으면 하강기가 있다는 말이다. 10년 주기설도 있지 않은가. 이미 2022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가까운 10여년 전하고 비교하여 보자.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이었고 실업률도 낮았던 그때는 희망이 넘쳐 났었을까? 한겨레21이 지난 2010년 3월 발표했던 탐사기획 <영구 빈곤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은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고 자식 교육을 잘 시켜 나중에는, 혹은 내 자식들은 잘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희망의 절대 빈곤’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중에도, 혹은 내 자식들도 남들처럼 잘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절망의 상대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 …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23.1%가 ‘그렇다’고 답했다. …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58.5%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응답을 한 ‘노인 가구’는 48.8%였다. … 부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묻는 질문에서도 노인+성인 자녀 가구는 노인 가구보다 강렬하게 응답했다.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38.5%는 부자들이 불법·편법으로 돈을 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010년 3월, 한겨레21)

이러한 내용이 과연 2023년인 지금하고 크게 다른 게 있을까? 시대와 상관없이 절망의 골짜기는 언제나 깊었고, 그 골짜기 위 하늘은 언제나 회색빛이었다.

거주 공간에 대해서도 남과 비교하지 말아라. 20대 중순, 나는 약 4년 동안 약수동 언덕 위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개인주택 차고를 월세 몇 만원에 빌려서 살았다(서울 중구 신당동 xxx-xx인데, 현재 그 곳에는 94년에 세워진 작은 연립주택이 있다. 아래 사진에 ‘예전 차고 위치’라고 표시한 곳이 내가 살던 곳이다).

물은 주인집 화장실에서 받아다 썼다. 전기는 주인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정원등(차고 위가 정원이었다)에서 전선을 끌어와 콘센트를 연결했다. 처음 해 본 작업이었다.

밥은 전기 곤로(음식이나 물을 끓이는 취사용 도구)로 해먹었고, 설거지한 물은 셔터 밑에 PVC 파이프를 설치해 언덕길에 내보냈다. 때로 설거지 물에 섞인 라면 건더기가 도로에 그대로 노출돼 싫은 소리도 종종 들었다. 어느 날은 후라이팬에 뭔가를 볶은 후 종이로 덮어놨는데, 다음 날 먹으려고 살펴보니 아주 작은 새끼 쥐가 놀고 있었다.

겨울엔 너무 추웠기에 친구 집에서 버리는 소파를 얻어와 그 위에 전기 장판을 깔고 잤다. 비가 많이 오면 셔터 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왔다. 셔터 외부 바닥에 시멘트로 둔덕을 만들었지만, 언제나 바닥은 눅눅했다.

벽에는 ‘3분 이상 잡담을 하려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크게 써 놓았다. 시간을 금쪽같이 사용해야 하는데, 친구들이 술병을 들고 불쑥 나타나 잡담이나 하다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비교 심리나 주변 인식 같은 것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차고에 살던 그 4년 동안, 나는 ‘이생망’을 얘기하고 있었을까? 나는 내 몸이 편히 누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교통이 불편하고 작고 허름해도 행복했다. 정말이다. 처지에 맞는 공간을 찾아라.

아, 물론 내 말이 ‘라떼(늙은 사람의 충고를 비꼬는 용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당신이 그런 허름한 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이다.

💥내 대답: “그렇다. 개뿔도 내세울 것이 없다면 당연히 거지 수준으로 살면서 시간을 아끼고 능력을 키워나가며 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탈출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그렇다면 평생 그 모양 그 꼴로 계속 살아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