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못 데려가 미안해, 한결아”···‘고물가 폭풍’ 견디는 비혼모들[고물가 속 비수도권 쉼터의 겨울나기①]

윤기은 기자 2023. 2. 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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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충북 청주시에 있는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 있는 식탁에 기저귀와 턱받침, 치즈가 놓여 있다. 윤기은 기자

“한결아 빵 먹어!”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유보라씨(33)가 ‘포켓몬빵’을 건네자 유한결군(3)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주황색 내의를 입은 한결이는 빵을 받자마자 뽀로로 매트 위를 콩콩 뛰어다녔다. 다시 엄마에게 다가간 한결이는 말했다. “젤리두….” “젤리는 없어”라는 답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결이는 이내 입가에 팥을 뭍히며 오물오물 빵을 먹었다.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서 유한결군(3)이 빵을 들고 있다. 윤기은 기자

한결이를 콩콩 뛰게한 ‘2000원의 행복’이 앞으로는 줄게 됐다. 공공요금을 비롯해 전방위에서 오른 물가의 여파가 유씨 모자에게도 미쳤다. 유씨는 충북에 있는 3개 모자가족복지시설 중 유일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 머물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9일 엄마 6명과 아이 4명이 살고 있는 청주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상상날개를 찾았다. 육아로 경제활동에 제약이 있고, 가족이나 아이의 친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인 이곳 엄마들은 월 20만원이 안되는 생활비로 살며 지출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더이상 줄일 것을 찾지 못한 엄마들은 자립을 위해 모아둔 돈에 손을 대야할지 고민 중이다.

유씨와 한결이 두 명 가족의 월 수입은 생계급여 120여만원, 아동수당 10여만원, 양육수당 10여만원 등 정부지원금 약 140만원이다. 이 중 통신비와 보험비 각 10만원, 보호 종료시 독립을 위한 적금 110만원을 제외하고 남는 생활비는 20만원이 채 안 된다. 숙소 방세와 기본적인 식비는 시설에서 지원하고, 기저귀나 생리대 등 생필품은 후원받고 있다. 다른 생활용품은 사비로 충당한다.

한결이는 일주일에 두 번 엄마 손을 잡고 나서던 ‘마트 구경’을 못하게 됐다. 유씨는 “아이가 과자·음료수 집고 ‘이거 살래’라고 떼를 쓰면 10분은 실랑이해야 한다. 1500원짜리 간식도 못사줄 때면 ‘힘들다’는 마음보다 ‘미안하다’는 마음이 커 요즘은 마트에 잘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유씨는 “주먹만한 감자가 4개에 8000원이어서 깜짝 놀랐다”며 “감자볶음 요리할 때 양이 많게 보이게 하려고 감자를 얇게 썬다”고 했다.

임산부들이 머무는 2층 숙소로 올라갔다. 유씨가 보일러 온도조절기 앞에서 10초가량 서성였다. ‘올림’ 버튼을 누르자니 ‘난방비 폭탄’이 두렵고, ‘내림’ 버튼을 누르자니 산모와 아기들의 건강이 걱정됐다. 지난달 쉼터 난방비는 47만8250원. 1년 전(34만5710원)보다 38% 올랐다.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쉼터에서 엄마 6명이 보일러 올림 버튼 앞에서 서성대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지난주 유씨는 쉼터 운영자인 최명주 대표로부터 “잔고가 없어서 전기세, 난방비가 못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2년 넘게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처음 들은 말이었다. 엄마들은 적금액이나 식비를 줄여 부족한 금액을 채우려 했다. 다행히 최 대표가 다른 곳에서 얻은 돈으로 밀린 요금을 메웠다.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서 김혜진씨(왼쪽)와 유보라씨(오른쪽)가 출산을 앞둔 비혼모와 입원시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윤기은 기자

온도조절기 옆에 앉아있던 김혜진씨(31)는 출산 예정일이 3일 남은 비혼모의 입원 준비를 돕고 있었다. 김씨는 가방에 배냇저고리를 넣으면서 17개월 아들 김도윤군을 떠올렸다. 옷값이라도 아끼려 최근 아들의 몸집보다 한 치수 큰 120 사이즈의 옷을 샀다. 후원받은 옷을 합쳐 도윤군이 가진 외출복은 4~5벌이다.

김씨는 “아이가 자라며 점점 돈이 많이 든다”며 “최근엔 도윤이가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일단 장난감은 (정부 지원) 문화누리카드로 샀지만, 앞으로 들 어린이집 비용이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놓여 있다. 윤기은 기자

9개월 후 쉼터를 나서야하는 유씨는 독립 후 ‘브런치 카페’를 차리기 위해 제과·제빵 학원에 다닌다. 유씨가 한결이를 아이돌봄서비스 선생님한테 맡기는 시간은 오전 9시, 학원 수업은 오전 9시30분이다.

시설 밖 약 100m 떨어진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전광판에 찍힌 버스 번호는 하나, 배차간격은 27분이었다. 버스를 타면 수업시간을 맞출 수 없고, 택시를 타면 편도 8000원이 든다. 현재 3300원인 충청북도 택시 기본요금은 수도권 택시 기본요금에 맞춰 상반기 중 인상된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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