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비확정성’(undecidable)을 공간으로 풀어내다-박희찬(上) [효효 아키텍트]
경북 문경 산양 양조장(2020년)은 1944년 지어진 목조 건물을 시가 매입하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꾼 곳이다. 건축가 박희찬이 처음 마주친 양조장 건물은 전통
목구조와 달리 가늘고 정교한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적산가옥(敵産家屋)이었다.
양조장이 갖추어야 하는 독특한 건축적 특성도 있었다. 한국 전통 주거 양식과
시간의 흔적이 뒤섞인 건물에서 20세기 초의 모더니티(modernity)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평면 구성은 가구식(filigree construction)과 벽식·고형식(solid construction)의 방식이 섞였다. 가늘고 정교한 목재 프레임과 약 1m 두께의 왕겨가 채워진 두꺼운 벽식 구조가 공존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히치는 남길 수 있는 기둥은 그대로 남기고, 썩은 기둥은 하부를 잘라낸 뒤 T자 금속 디테일로 신재를 연결했다. 일본식 목구조 기둥과 조적벽 사이에 얹힌 지붕 트러스(truss)는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공장으로 옮겨져 일반 구조재보다 강도가 높고 변형이 적은 구조용 집성목 글루램(glulam)으로 보수한 뒤 현장으로 옮겨 재결합했다. 유리 바깥으로 나무 루버를 두었다. 박희찬은 허물어져 가는 공간이었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공간을 고려한 스툴 등 가구도 직접 디자인하였다.
어둡고 낮은 층고 2미터의 사입실(누룩 배양, 술 숙성시키는 공간)을 약 3.5m로 높여 이벤트와 전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오픈된 다목적 공간으로 바꾸었다.
박희찬과 스튜디오히치 직원들은 설계 6개월과 시공 4개월 기간 동안 총 50여 회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산양 양조장은 건축 공간이 명소가 되면서 지역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점차 공동화되어 가는 지역에서 문화시설로 탈바꿈되면서 산양 양조장은 현재 ‘산양 정행소’라는 이름으로 청년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2020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박희찬 건축가는 가구, 조명 등 디자인과 새로운 재료를 전형적인 건축설계와 접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어반 핀볼 머신’(Seoul Urban Pinball Machine, 2021년)은 서울시 도시건축전시관 지명 공모전에 당선된 설치 프로젝트이다. 전시관 상부에 4개월여 설치하였고, 이후 경기도 송추 100여만평 부지의 크라운해태 조각 공원내로 옮겨 설치되었다.
박희찬은 처음부터 재활용, 재사용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초고강도 콘크리트 바닥은 분리하기 쉽게 모듈로 만드는 등 변수들을 고려했다.
어릴적부터 매커니즘이 있는 게임을 좋아했던 건축가는 ‘서울마루’의 물리적인 경사면을 보고 자연스럽게 실내용 게임기구인 핀볼 머신을 생각하였다. 경사면 위로 쏘아 올린 공이 내려오면서 독특한 오브제와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와 건물 이미지 도상들을 거치면서 움직임을 만드는 게 흥미롭다. 핀볼 머신의 볼을 발사하는 플레이어는 핀볼 여행의 퍼포머(performer)가 되고, 지켜보는 이들은 관중(audience)이 되어 놀이에 참여하게 된다.
게임의 필드와 실제 현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이 튕기고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볼라드(bollard), 점수를 내는 스코어(score), 공의 움직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범퍼(bumper)도 있는 식인데 ‘서울 어반 핀볼 머신’도 같은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게임과 다른건 각 요소들이 좀 더 큰 스케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설치(installation)는 미술의 한 장르이다. 설치는 장소적 개념이 강해 공간 및 현장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한다. ‘서울 어반 핀볼 머신’은 작품으로 컬렉터에게 매각되어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유리블럭집(2022년)은 30년 전 이 곳에 집을 지어 살고있는 노부부와 출가했던 자녀 가족들이 다시 돌아와 함께 살수 있는 주택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였다. 자녀 가족을 위한 1층 주거공간 개선이 주된 목적이 되었다.
공간은 반지하, 1층, 2층으로 각 세대별로 구분되어 있다. 가운데를 ㄷ자로 비워 온실 개념의 공용 공간인 거실을 만들었다. 반투명 유리블럭은 가족사를 상징하는 기존 건물의 벽돌 외벽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향후 신축보다 리노베이션이 더 많아지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박희찬 건축의 특징은 원래 건물이 갖고 있던 캐릭터를 더 드러나게 하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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