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쿨, 그것밖에 연주 기회 없을 수도" 작심 발언한 조성진…실상은?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김문영 2023. 2. 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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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악 분야 졸업생만 9천 명"…예술계의 공통적인 문제
국립기관 영재 발굴, 한국의 장점…'국내 평가에 야박한 인정', 문화적 한계
조성진, 지난 4일 화상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MBN]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쿨 한국인 최초 우승자'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가진 피아니스트 조성진.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성진은 한국인들의 연이은 콩쿨 수상 소식과 관련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제가 콩쿨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편이어서 콩쿨 자체는 싫어하지만, 그것밖에 기회가 없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이어 "콩쿨에 나가면 인지도가 쌓여 연주 기회가 생기고 그 연주를 잘하면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할 수 있고 (연주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말했습니다.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연주자들에게 '제한적인 공연 기회'를 화두로 던진 것입니다.

실제로 콩쿨 이력이 없는 클래식 연주자들의 공연 기회는 얼마나 제한될까요?

'신예 연주자들 공연 기회', 객관적인 비교 데이터 제한돼

취재 결과, 콩쿨 경력이 없는 신예 클래식 연주자들의 공연 횟수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얼마나 부족한지 데이터로 비교하는 시도는 아직 치밀하게 이뤄진 바가 없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공동 구축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서 장르별 티켓 판매액과 공연 건수를, 통계청은 지역별 인구 대비 전체 공연 횟수를 정리해뒀지만, 신예 연주자들의 공연 횟수 데이터와 정책 비교 사례집은 갖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클래식 관련 대표 기관인 예술의전당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금호문화재단도 다른 나라의 기관과 비교해볼 때 해당 기관이 신예 연주자들에게 공연 기회를 얼마나 제공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통계 또는 벤치마킹 사례집 등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연주 성과 입증해야"…해외에서 인정받아야 인지도 쌓이기도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수치 비교가 어렵더라도, '클래식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유럽과 국내가 크게 다르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예종 음악원 부원장 이예린 교수는 MBN 취재에 "우리나라는 귀국 독주회를 포함해 각종 독주회가 많지 않느냐"며 "'연주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개인 돈을 들여서라도 연주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습니다.
포탈 사이트에서 '독주회'로 검색되는 공연 정보 [사진=MBN]

알려지지 않은 국내 젊은 연주자들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직업'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반대로 유럽은 동네 교회에서의 연주가 쉽고,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문화적으로 다르다보니 표를 사서 보러 온다"고 차이점을 말했습니다.

결국, 국민 정서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설명입니다. 국내 뮤지컬은 최저가 십만 원을 육박하는 티켓값에도 전 회차가 '광클(빠른 클릭)'로 매진되고 K-POP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장르의 연주자들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란 겁니다.

'유럽의 정통 음악'인 클래식이기 때문에 국내 관객이 제한적인 것이라 마냥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콩쿨로 인지도를 쌓은 조성진, 임윤찬의 표만큼은 지난해 광범위하게 팔렸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 전통 음악인 국악과 전통 무용은 클래식보다도 외면받았습니다.

한예종 영재교육원 원장인 이강호 교수는 "해외 콩쿨에서 입상한 클래식 연주자만 국내에서 인정받는 것은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내 평가에 대한 국내의 인정 부족, 그리고 자신감 부족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극소수 높은 가격의 클래식 공연에 관람 인원이 더 편중되고 질 좋은 신예 연주자들의 클래식 공연은 즐길 줄 모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사라 장·힐러리 한처럼…"우리 평가에 대한 자신감 필요"

해외에서 주요 국제 콩쿨에 나서지 않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연주자들도 있습니다. 사라장과 힐러리 한이 대표적입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국계 미국인 사라 장은 6살에 미국 줄리어드 예비학교(일종의 영재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콩쿨에 나갈 필요 없이 8살에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데를 가졌으며 이듬해 데뷔 음반을 냈습니다.

미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도 10살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며 일찍이 신동으로 알려진 뒤 음악원을 졸업하고는 16살쯤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등 유명 악단과 협연하고 이듬해 데뷔 음반을 냈습니다.
힐러리 한, 2018년 '아트센터 인천' 바흐 무반주 독주회 당시 포스터 [사진=연합]

미국 학교 수준이 세계적인 영향도 크지만, 이강호 교수는 "유럽의 유명인이 인정하지 않아도 그 나라에서 자신들이 보았을 때 좋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면 자체적으로 발굴해 유명해진 것이 특징"이라며 "우리도 우리 평가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 등 뉴미디어 채널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유튜브 '또모(구독자 62만)'와 '레이어스(LAYERS) 클래식(구독자 49만)' 등 채널이 자체적으로 연주자를 홍보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아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콩쿨 장점 여전히 '명확'…국제 활약의 발판

국제 콩쿨은 장점이 명확합니다. 위의 소수 해외 사례와 달리, 세계 무대에 자신을 드러내고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장점입니다.

이예린 교수는 "한국에는 국제적인 매니지먼트사도 없지 않느냐"며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보니 콩쿨이 '자격증' 같다"이라 말했습니다.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역시 헝가리의 '젊은 재능을 발굴하는 콩쿨'에서 우승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지만 국제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4위, 리즈 국제 콩쿨 3위 입상 경험을 쌓으면서부터였습니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도 5살에 중국 선양 콩쿨에서 입상한 뒤 13살에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청소년 부문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날렸고, 미국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인터네셔널 스트링 컴페티션 국제 콩쿨 출신입니다.

일본의 스미노 하야토는 어린 시절 각종 콩쿨을 휩쓸고 도쿄대 공대 대학원까지 마친 피아니스트로서 유튜브(구독자 113만)에서 인지도를 키우고도, 지난 2021년 쇼팽 콩쿨에 도전해 3라운드인 세미 파이널까지 진출하며 연주의 깊이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스미노 하야토, 지난해 12월 피아노 리사이틀 당시 포스터 [사진=문화포털]

우리는 음악 영재 발굴의 중요한 축을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금호문화재단이 맡고 있습니다. 한예종은 줄리어드, 예일의 음악원과 다르게 '국립기관'으로서 어린 영재를 발굴하며 매해 재시험을 쳐 성실성을 테스트합니다.

금호영재콘서트 출신은 김선욱(피아노), 선우예권(피아노), 손열음(피아노), 조성진(피아노), 임지영(바이올린), 문태국(첼로), 김한(클라리넷) 등이며, 음악영재아카데미 출신은 양인모(바이올린/초1~초3), 조성진(피아노/초3~초6), 임윤찬(피아노/초2~초6) 등.

음악영재아카데미는 올해부터 정원을 기존 92명에서 170명으로 늘리고, 모집 부문을 4개에서 8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매년 배출되는 음악 분야 졸업생만 9천 명"…국내 음악가 지원은?

그럼에도 콩쿨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 국내 음악가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문체부 공연예술전통과 김미라 과장은 "매년 배출되는 음악 분야 졸업생만 9천 명"이라며 "일자리에 비해 졸업생이 많은 것이 예술계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라 짚었습니다.

때문에 일자리 지원을 위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원하고, 지자체별로 서울시가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을, 성남시가 성남시립교향악단(성남시향)을 지원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특정 장르별은 아니지만 일반 창작 지원을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문체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올해 예술인 2만 3천 명에게 창작준비금을 지원하고, 그외 활동비 등을 지급합니다.

지역대표공연예술제인 윤이상국제음악콩쿨과 평창대관령음악제 등을 평가해 지원하며 키워나가는 것도 문체부의 몫입니다.

아울러, 앞서 언급된 국민 의식 제고가 음악가의 삶에 있어 가장 절실한 부분일 것입니다. 이강호 교수는 "연주가들이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며 "국민의 예술적, 문화적 수준이 같이 성숙해져야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보다 문화적으로 융성하려면 '중산층'을 몇 평의 아파트와 연 소득, 특정 종류의 차가 아닌, 악기를 연주할 줄 알고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지로 정의하는 등, '소비 위주 문화'에서 '경험 위주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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